'역대급' 인파, 더위, 음향…'한여름 록페' 미래에도 가능할까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8. 1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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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글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2010년대 이후 세계 페스티벌 산업은 급성장해 왔다. 모바일 기반의 앱과 SNS가 생활화되면서 지리적 접근성이 좋아지고 정보의 실시간 유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은 2010년대 초반부터 유튜브로 행사를 실시간 중계하면서 급격히 지명도를 올렸고 후지록, 서머소닉 등 일본 페스티벌 또한 한국 관객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음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공연이란 형태가 역으로 첨단 기술의 혜택을 받은 셈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6년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이 개최될 당시만 해도 ‘록 마니아'들을 위한 것이었던 여름 록 페스티벌은 2009년 하반기 아이폰 국내 출시, 2010년 트위터 유행과 함께 전환기를 맞았다. 집에서 트위터를 들여다보다 타임라인이 지산밸리 록페스티벌, 펜타포트 록페스티벌로 도배되는 걸 보며 시장은 ‘마니아'에서 ‘소비자'로 넓어졌다.

오래전부터 대중문화시장의 주축인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그랜드민트 페스티벌은 자라섬 재즈페스티벌과 더불어 ‘매진'이란 단어와 함께하는 행사가 됐고, 이런 현상에 주목한 여러 지자체와 기업이 뛰어들며 2010년대 초반에는 겨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말에 어디선가 페스티벌이 열렸다. 특히 일본 페스티벌에 오는 라인업을 수급해야 하는 여름의 경우, 한 달 남짓한 기간에 4개 이상의 페스티벌이 열리는 제살 깎아먹기의 단계에 이르렀다.

그 결과, 대부분의 페스티벌이 단명했다. 페스티벌이란 이름이 주는 특별함도 사라졌고, 라인업도 그 나물에 그 밥인 상황이었으니 필연이었다. 

한국 페스티벌 시장의 도화선 역할을 한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이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렸다. 첫해부터 빠짐없이 이 행사를 지켜봐 온 나에게 올해는 ‘역대급'이란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잔나비와 데이식스가 메인스테이지의 헤드와 서브를 장식한 일요일은 사상 처음으로 티켓이 매진될 만큼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미 흥행 가도에 올랐던 지난해보다도 사흘 내내 더 많은 인파가 체감됐다.

코로나19 이후 공연 시장이 커지기도 했지만 QWER과 데이식스가 출연한 점도 있다. 처음으로 아이돌 그룹이 펜타포트에 출연하면서 페스티벌 문화와 아이돌 팬덤 문화가 충돌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록페스티벌에 익숙한 층과 드림 콘서트 같은 아이돌 행사에 익숙한 계층이 섞이는 초유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려할 만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고, 역대급 관객 동원이라는 숫자만 남겼다. 

역대급 더위기도 했다. 무대 앞은 물론이거니와 행사장 곳곳에서 소방차가 동원되어 물을 뿌렸다. 그럼에도 온열질환 환자가 속출했다. 첫 해 이래 펜타포트의 상징과 같았던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역대급 음향이었다. 올림픽공원, 한강 난지공원에서 열리는 페스티벌과 달리, 펜타포트는 라이브의 쾌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송도신도시가 다 개발되기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던 행사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타워 크레인이 행사장 주변의 미장센을 차지하더니 어느덧 고층아파트가 이를 대체했다. 소음 민원이 증가했다. 결국 체감 데시벨이 확 줄었다.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하던 음악가들도 작년까지는 여기서도 소리가 잘 들렸는데 올해는 작은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헤드라이너급 팀을 제외하면 단순 볼륨만 줄어든 게 아니라 중저음을 담당하는 우퍼 사운드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민원 발생을 예방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이를 반영하듯 행사장 주변에선 소음측정기를 들고 실시간 데시벨을 기록하는 인원들도 배치됐다. ‘역대급'이란 단어가 결국 좋은 쪽으로만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역대급 상황'들은 펜타포트, 나아가 향후 여름 페스티벌의 방향성을 고민할 때가 왔음을 시사한다. 펜타포트가 표방하는 록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음악 시장의 비주류 장르가 됐다. 스트리밍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글로벌 스타의 출현은 힘들어졌다. ‘대중’의 시대는 ‘다중'의 시대로 전환됐고 저널이 주도하는 장르의 카테고리를 다중이 주도하는 해시태그가 대체했다. 이렇게 변한 환경에서 헤드라이너급, 즉 지명도와 시장성을 담보하는 스타들의 몸값은 계속 치솟고 있다. 페스티벌이 관이나 기업의 예산으로 열리는 ‘비즈니스'임을 떠올린다면 일본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스타급 뮤지션들을 섭외하기는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하여 아이돌과 트로트가 장악하는 한국 음악 시장에서 주목받는 신예 밴드와 싱어송라이터의 등장도 드물다. 실리카겔, 잔나비, 새소년이 몇 년째 사실상 고정 출연인 상황이다, 이런 현상은 펜타포트뿐만 아니라 다른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밴드 라이브가 가능한 케이팝 아이돌 섭외는 지속 가능한 행사를 위해 고민 대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돌 팬덤 문화와 페스티벌 문화의 충돌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기존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펜타포트의 소프트웨어, 즉 라인업을 둘러싼 숙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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