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충무로 상권, 외국인 귀환으로 활황
올해 상반기 유통업계 매출 동향이 발표됐다. 백화점 3사와 대형마트 3사뿐 아니라, 편의점과 준(準)대규모 점포 등 국내 유통업계의 오프라인 매출 성적표는 나쁘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계 매출 증감률은 3.4%로 지난해 동기(2.1%)보다 증가폭을 키웠다. 특히 2월에는 전월 대비 11%라는 높은 매출 증가율을 보였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상권도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 유통업 매출·외국인 관광객 모두 증가
오프라인 상권 회복은 유동 인구 증가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하루 평균 245만 명까지 내려간 전국 상업 지역 유동 인구는 올해 상반기 하루 평균 345만 명으로 100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게다가 서울 주요 상권의 든든한 지원군인 외국인 관광객도 2021년 97만 명에서 지난해 1103만 명으로 11배나 늘어났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 관광객 수는 2019년 대비 91%까지 회복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각 분야에서 '뉴노멀' 현상을 낳았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질적 변화를 겪은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뉴노멀 현상이 강하게 작용했다. 오프라인 매출과 유동 인구 회복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상권을 이끌 뉴노멀 트렌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데이터가 쌓였다는 방증이다.
통상적인 부동산 회복 사이클에선 핵심 상품과 입지가 가장 먼저 반응하고, 그 후 등급 순으로 회복세가 시작된다. 국내 부동산 핵심 상품인 아파트의 경우 서울 강남을 시작으로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과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으로 회복세가 이어졌다. 아파트 시장의 회복세는 부동산 차상위 카테고리인 상업용 부동산으로 번질 것이다. 마침 정기예금금리가 3% 초반대로 매력이 떨어지고 있고, 대출금리도 4% 중반대로 인하돼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촉발될 전망이다.
유통업 매출 및 유동 인구 등에서 축적되는 상권 데이터는 뉴노멀 트렌드가 무엇인지 답을 주려 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진정되고 있는 고금리 국면은 이제 상업용 부동산의 시간이 돌아왔음을 알리고 있다. 올해 하반기 상권 빅데이터에 관심을 두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빅데이터로 상권 흐름을 읽고 예측하기 위해선 두 가지 데이터만 기억하면 된다. 전년 동기 대비 임대료가 얼마나 상승(혹은 하락)했고, 공실률이 얼마나 증가(혹은 감소)했는지 여부다(그래프 참조). 이를 바탕으로 불황→회복→활황→둔화 등 4개 국면을 포착할 수 있다. 가령 임대료가 상승하고 공실까지 감소하는 상권이라면 단연 활황 상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도심 상권
명동·충무로 활황, 을지로 둔화
서울 도심에서 활황 시그널을 보내는 상권으로는 명동과 충무로가 있다. 명동 상권은 외국인 관광객의 귀환이 활황세를 이끌고 있다. 특히 과거와는 다른 관광 형태가 상권 트렌드를 주도하는 상황이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 '유커(游客)'의 빈자리를 중국인 개인 관광객 '산커(散客)'가 대신하면서 한국인의 '찐 라이프' 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상권이 뜨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외국인 특화 매장으로 리모델링한 올리브영과 다이소가 명동 상권을 이끄는 대표주자로 꼽힌다. 가성비 좋고 다양한 품목의 K-뷰티·K-푸드를 경험하려는 외국인 수요가 몰리면서 매출이 급성장했다.
강남북 모두 K-뷰티 쇼핑 트렌드
충무로 상권의 활황을 이끈 건 남산이다. 충무로 상권과 이어지는 남산골한옥마을, 남산 N서울타워에 중국인·일본인 2030세대가 몰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K-라이프스타일 관광이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음이 확인됐다. 에어비앤비와 한국관광공사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중국인 방한(訪韓) 여행의 주된 동기 중 하나가 야경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야경 맛집 TOP100'에는 남산 N서울타워와 광화문, 덕수궁, 한양도성 낙산구간 등 서울 도심을 대표하는 상권이 꼽혔다. 한국의 숨겨진 매력을 경험하려는 외국인 MZ세대 관광객들에 의해 서울 도심 밤 풍경까지 상권의 활력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서울 도심 상권 중에서도 임대료 상승 부담으로 공실률이 높아져 둔화 국면에 접어든 곳이 있다. '힙지로'라는 명성을 얻으며 MZ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을지로 상권이다. 이 일대는 오피스 시장 부흥으로 인한 대기업 입주와 도심 대개조 사업에 따른 개발 압력이 임대료 상승을 부추겼다. 그 결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남 상권
압구정·양재 활황
서울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강남 주요 상권은 대체로 활황 국면이다. 한국관광 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인·일본인·대만인 2030세대 관광객의 국내 뷰티·의료 소비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100% 가까이 증가했다. 이들의 화장품 쇼핑 성지로 명동에 이어 강남이, 미용실 성지로는 홍대 앞에 이어 압구정이 꼽혔다고 한다. 강남 상권 활황도 외국인 관광객이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K-의료 쇼핑에서 특히 성형외과와 피부과 이용이 급증했으며, 이를 일본인 여성 관광객이 주도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압구정 상권의 임대료가 6%가량 치솟은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양재와 말죽거리 상권은 임대료 상승에도 눈에 띄는 공실률 감소를 기록했다. 이들 상권의 활황을 주도하는 것은 바로 인공지능(AI) 산업 일자리다. 올해 초 서울시는 개포4동을 'ICT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했다. 인근 양재2동을 중심으로 이미 ICT특정개발진흥지구와 AI지역특화발전특구 조성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향후 개포동에서 양재동에 이르는 대규모 생활권이 AI 일자리 천국이 될 전망이다. 삼성, LG, KT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연구소가 밀집한 양재 상권은 AI 로드맵을 등에 업고 더 탄탄한 일자리 배후 수요를 확보할 것이다.
그 외 서울 상권
용산·당산·청량리·잠실새내 활황
서울에서 활황인 다른 상권은 용산과 당산 상권이다. 두 곳도 유망 일자리가 많아 탄탄한 배후 수요가 뒷받침하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과 용산전자상가 개발에 따라 용산은 앞으로도 고급 일자리가 넘쳐날 전망이다.
오피스 시장 부흥을 이끄는 여의도는 고소득 직장인이 많지만 그만큼 임대료가 높아 중소상인에겐 버거운 입지다. 그런 점에서 당산 상권은 경쟁력 있는 임대료와 여의도 직장인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지리적 장점을 동시에 갖췄다. 향후 중소상인 중심의 개성 있는 상권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크다. 당산에선 여의도 마천루도 조망할 수 있는데, 뉴노멀 상권 트렌드인 '야경 매력'과 맞아떨어져 상권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노량진 상권, 공시 열기 꺼지자 활력 잃어
청량리 상권은 재개발 완료에 따른 주민의 복귀와 높은 용적률에 힘입은 정주 인구 유입이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인근 경동시장의 부활이 신축 복합상가와 시너지 효과를 내며 유망 상권으로 떠오르고 있다.
‘야구 경기 뒤풀이 상권'으로 불리는 잠실새내 상권은 프로야구 인기 덕에 한창 활황이다. 잠실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모두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데다, 한국 프로야구가 역대 최고 관중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잠실야구장 개발로 두 구단은 수년간 잠실주경기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쓸 예정이다. 당분간 잠실새내 상권의 지속가능한 활황을 기대해볼 수 있다.
서울에서도 임대료 하락뿐 아니라, 공실이 늘어나는 불황 상권이 있다. 노량진과 건대입구 상권이다. 노량진 상권은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공무원시험 열기도 꺼지면서 활력을 잃고 있다. 수험생 대신 노량진 주거공간을 채우던 직장인마저 인근 여의도 상권으로 흡수돼 회복이 요원해 보인다. 건대입구 상권은 인근 압구정·청담 상권과 성수동 상권으로 수요를 빼앗기며 회복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과거 전성기를 누린 상권이라도 △고급 일자리(Skilled jobs) △K-라이프스타일(K-life style) △개성 있는 전통시장(Traditional market)이라는 상권 뉴노멀 트렌드에서 멀어지면 부활을 기대하기 어렵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뉴노멀 시대에 기대 이상의 부를 안겨줄 황금 부동산은 S·K·T 3박자를 만족시키는 상권에서 나올 것임을 알 수 있다. 금리인하 방아쇠가 당겨진 지금, 자신이 눈여겨보는 상업용 부동산이 S·K·T 상권에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조영광 하우스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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