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은 거대한 LVMH 쇼윈도였다

조은아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2024. 8. 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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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의 유로프리즘] 올림픽 후원금 2200억 원 내놓은 명품 제국
프랑스 명품 기업 루이뷔통 관계자들이 7월 14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열린 성화 봉송에 앞서 성화 보관 트렁크를 선보이고 있다. [신화 뉴시스]
7월 28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남자 사브르 개인 시상식에서 메달 봉사자들이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이 제작한 의상과 메달 트레이를 들고 있다. [뉴스1]
2024 파리 올림픽 성화가 프랑스 수도 파리로 처음 진입한 7월 14일(현지 시간) 상젤리제 거리. 파리의 첫 성화 봉송 주자 티에리 앙리 프랑스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 든 성화가 보관된 곳은 루이뷔통의 트렁크였다. 상징적인 바둑판 무늬 '다미에(Damier)' 패턴으로 디자인된 고급 트렁크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여행용 트렁크 제작으로 시작된 루이뷔통의 역사와 존재감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순간에 드러낸 셈이다.

명품의 흔적은 이번 올림픽 곳곳에서 발견됐다. 메달은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쇼메'의 작품이다. 쇼메가 1920년대부터 내놓은 '선버스트(태양 폭발)' 모티프 디자인이 담겼다. 메달이 운반되는 쟁반도 다미에 패턴을 입은 루이뷔통 제품. 심지어 메달을 운반하는 자원봉사자가 입은 옷까지 같은 명품 브랜드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이 올림픽 개막식 때 입은 단체복은 남성 명품 '벨루티'의 양복이었다. 게다가 올림픽 행사 VIP 라운지엔 유명 샴페인 '모에헤네시'의 최상급 샴페인이 놓였다.

이 모든 명품 브랜드는 유럽 증시에서 시가총액 1, 2위를 다투는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가 거느린 산하 기업들이 운영한다. 올림픽이 LVMH의 거대한 쇼윈도가 된 셈이다. 이를 두고 거물 LVMH의 영향력이 제대로 드러났다는 말이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LVMH가 프랑스에서 얼마나 깊이 자리 잡았는지 보여준다"고 평했다.

"대통령 이름 몰라도 디오르는 알아요"

LVMH는 샴페인 및 코냑을 생산하는 '모에헤네시'와 패션 기업 루이뷔통이 합병해 1987년 설립된 프랑스 기업이다. 럭셔리 브랜드 75개를 관리하는 60여 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흔히 알려진 루이뷔통, 티파니, 디오르, 펜디, 지방시 등이 모두 이 품 안에 있다. LVMH는 럭셔리 브랜드뿐 아니라 미디어 자회사 '레제코-르파리지앵' 그룹도 거느리고 있다. 2023년 4월 유럽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5000억 달러(약 680조 원)의 가치를 넘어섰다.

워낙 거물이라서 프랑스 정부가 LVMH를 올림픽 스폰서로 끌어들이는 데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 있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이 기업의 영향력을 다룬 기획기사에서 "LVMH는 국가 안의 국가"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르몽드에 따르면 2021년 6월 21일 파리에 있는 LVMH의 사마리탄 백화점 개점식에 마크롱 대통령 부부가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이를 두고 '현직 대통령이 백화점 개점식에 간 건 처음'이란 말이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LVMH는 프랑스의 천재"라고 치켜세워 회자가 됐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21년 9월 21일 프랑스 파리의 루이뷔통재단 박물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AP 뉴시스]
‌LVMH를 일군 인물은 베르나르 아르노(75) 회장.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올 6월 그의 재산을 2070억 달러(약 282조 원)로 추산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과 순위를 다툰다.

국가 원수 격이란 말을 듣는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 북부 산업도시 루베에서 태어나 명문 그랑제콜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했다. 커리어의 시작은 럭셔리와 거리가 다소 있을 법한 건설회사 엔지니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던 22세 나이에 가족 건설사업에 뛰어들었다. 7년 뒤 아버지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받은 그는 건설 부문을 매각해 회사를 부동산개발업으로 변신시켰다. 이후 콘도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이 무렵 젊은 아르노 회장에게 미국 뉴욕에서 만난 택시 운전기사의 한 마디가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는 운전사에게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을 아느냐"고 물었다. 운전사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오. 하지만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알아요." 이때 아르노 회장은 한 국가의 대통령을 넘어서는 럭셔리 브랜드의 힘을 깨달았다고 한다.

결국 1984년 럭셔리 브랜드를 손에 넣을 기회가 찾아왔다. 프랑스 정부가 파산 위기에 몰린 섬유회사 '부삭 생 프레르'(이하 부삭)의 인수자를 찾고 있었던 것. 부삭엔 숨은 보석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있었다. 아르노 회장은 지금은 LVMH의 지주회사가 된 '피낭시에르 아가슈'를 인수한 뒤 부삭 입찰 경쟁에서 승리했다.

부삭 인수 뒤 2년간 9000명을 해고해 무자비하단 비판을 받기도 했다. '터미네이터'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란 별칭이 이때 생겨났다. 이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TF)는 "1980년대 프랑스 상류사회에 새로운 영미권의 무자비함을 불러들였다"고 평했다.

그는 매력적이지 않은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했다. 럭셔리 브랜드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고급 백화점 르봉마르셰만 남겨 가치를 키웠다. 그는 그렇게 LVMH의 지분을 인수해 회장에 올랐다.

럭셔리의 공식을 깨다

럭셔리 산업은 희소성과 배타성을 생명으로 삼지만 아르노 회장은 이런 공식을 깼다. 규모의 경제로 '럭셔리 제국'을 이뤘다. 규모를 키워 이익을 늘린 덕에 우수한 디자인 인재를 영입할 수 있었다. 이익을 기반으로 엘리트 지역에 더 화려한 매장을 열었다. 이를 통해 이익이 더 늘어나는 선순환이 생겨났다. 투자회사 번스타인의 루카 솔카 럭셔리상품분석가는 이를 '메가 브랜드의 선순환'이라고 칭했다.

성공의 비결로는 전통과 혁신의 조화가 꼽힌다. 마침 이 비결이 드러나는 현장을 찾을 수 있었다. 2024 파리 올림픽을 맞아 파리시(市)가 8월 초 기자들을 불러 진행한 루이뷔통 아르니에르 공방 투어에서다.
프랑스 파리 외곽 아르니에르에 위치한 루이뷔통 아틀리에 갤러리 내부. 루이뷔통의 역사가 시작된 트렁크가 현대적으로 디자인돼 선보였다. [조은아]
‌아르니에르 공방은 겉보기엔 고급 저택 같았다. 주택 안으로 들어서자 정면에 젊은 루이뷔통(1821~1892)의 초상화가 기자들을 맞이했다. 초상화 아래엔 낡고 빛바랜 루이뷔통 트렁크가 놓여 있었다. 응접실엔 루이뷔통 일가의 흑백 가족사진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중앙에 놓인 테이블, 장식품 보관함, 책장이 모두 손때 묻은 루이뷔통 제품이었다. 오랜 세월이 물씬 묻어나는 제품들 속에서 회사 직원은 브랜드의 역사를 소개했다.

오랜 역사를 품은 박물관 투어는 옆 건물로 이동하니 실험적 연구소 견학으로 바뀌었다. 공방 내부에선 수십 명의 장인이 각자 작업대에서 다양한 제품을 만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일반 루이뷔통 매장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맞춤형' 상품이 다양했다는 점이다. 고객 취향에 맞게 공들여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상품이 태어나는 것. 이 과정에서 루이뷔통 로고가 달린 둥근 농구공 보관함, 탁구채 등 실험적 작품이 태어났다.

루이뷔통은 논쟁적 예술가 제프 쿤스 등 유명 디자이너들과 함께 한정판 핸드백을 제작해 독점적이고 희소하단 이미지를 강화했다. 솔카 분석가는 AP통신에 "이는 다각적인 혁신 엔진"이라며 "수량을 제한하고 가격을 높게 유지한다"며 수익 비결을 짚었다.

LVMH가 중국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출한 점도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 1992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 강화로 중국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을 때다. 루이뷔통은 수도 베이징 팰리스 호텔(현 페닌슐라 베이징)에 중국 본토 최초의 매장을 열었다. 아르노 회장은 FT와 인터뷰하면서 당시를 떠올리며 "호텔엔 온수가 안 나왔고 도로엔 차 대신 자전거가 다녔지만 우린 재빨리 시작했다"며 "우리가 최초이지만 결국 시장은 생길 것이라고 봤다"고 했다. 그의 중국 시장 도박은 결국 성공해 루이뷔통의 시장가치를 높여줬다.

다섯 자녀, 끝없는 후계 경쟁

LVMH의 성공 뒤엔 사회의 불만도 있다. 수도 파리는 물론이고 생트로페 등 지방의 휴양지에 비싼 매장을 여는 점이 대표적이다. 루이뷔통이 발을 들인 지역은 땅값을 끌어올렸다. 정작 그 지역에 오래 뿌리내린 상점들은 비싼 임차료를 못 견뎌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생겨났다.

기업은 공격적 자본 확장으로 서민들의 공격 대상이 되곤 한다. 지난해 4월 포브스가 아르노 회장을 가장 부유한 인물로 꼽은 지 열흘 뒤 그의 파리 사무실이 습격을 받았다. 당시 연금 개혁과 은퇴 연령 상향에 반대한 시위대의 공격이었다.

최근의 논란은 파리 올림픽 후원 과정에서 나왔다. LVMH는 1억5000만 유로(약 2200억 원)를 투자한 최대 후원자로 메달리스트만큼이나 주목을 받고 있다. 솔카 럭셔리상품분석가는 AP통신에 "이번 올림픽에서 LVMH의 관여 범위는 럭셔리 브랜드로서는 전례가 없다"며 "LVMH와 경쟁사들은 대중 스포츠를 더 활용해 고객에 다가가려 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LVMH의 상품들이 눈에 띄게 배치됐다는 점이다. FT에 따르면 올림픽 개막식 수분간 루이뷔통 트렁크가 노출되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일부 위원들이 놀랐다고 전했다. FT는 "올림픽 후원 기업의 브랜드를 눈에 띄게 배치한 것은 올림픽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짚었다.

올림픽 개회식에선 루이뷔통 로고가 박힌 여행용 가방을 제작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어 LVMH의 의상을 입은 댄서들이 등장했다. 미 NYT는 이 장면에 대해 "사실상 3분간의 LVMH 광고였다"고 꼬집었다. 특히 IOC와 오랜 기간 협력한 일부 후원사들을 화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논쟁을 몰고 다니는 LVMH를 누가 이끌지도 관심사다. 아르노 회장은 두 번의 결혼에서 얻은 다섯 자녀를 기업 곳곳에 배치했다. 장녀 델핀(49)은 크리스티앙 디오르 CEO를, 앙투안(47)은 LVMH 환경 및 이미지 책임자를 맡고 있다. 특히 앙투안은 파리 올림픽 후원 사업을 총괄해 주목받았다. 이는 후계자 검증의 일환이란 해석도 나온다.
프레데릭 아르노 LVMH 시계 부문 책임(왼쪽)과 블랙핑크 리사. [프레데릭 아르노 인스타그램 캡처]
‌알렉상드르(32)는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의 커뮤니케이션 총괄직을, 블랙핑크 리사와 열애설이 난 프레데릭(29)은 LVMH 시계 부문 CEO를 맡았다. 루이뷔통 시계 제조 분야에서 일하는 막내 장(25) 외엔 모두 LVMH 이사회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섯 자녀가 경영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지만 그는 최근 CEO 연령 제한을 75세에서 80세로 올렸다. 올 4월 주주총회에선 아들 알렉상드르와 프레데렉을 이사로 임명해 시장의 예상을 뒤집었다. 그가 후계 작업의 밑그림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됐지만 오히려 자신의 입지를 강화했기 때문. 프랑스 경제일간지 레제코는 이를 두고 "75세인 아르노 회장이 자신이 그의 제국의 확실한 황제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가 FT와 인터뷰하면서 남긴 말이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아직 작습니다. 1위이지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조은아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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