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70%가 최극빈층이었는데…인류 풍경 뒤바꾼 요술의 정체는
유례없는 부유함 누리지만
평등한 분배 포기못할 과제
세계화도 성장도 역주행속에
유토피아 향한 새 여정 시동
그런데 1870년만 해도 인류의 70%가 최극빈층이었다. 하루 품삯으로 본인 포함 가족들이 먹을 빵을 ‘5000칼로리’ 정도 구입하는 일이 가능했다. 현대엔 아무리 못 벌어도, 저임금 노동자마저 비록 저품질일지언정 ‘240만 칼로리’의 빵을 살 수 있다.
둘의 차이는 뭘까. 그 차이는 바로 20세기의 위력이고, 경제라는 요술이 부린 마법이다. 신간 ‘20세기 경제사’의 저자 브래드퍼드 들롱은 “케인스를 내세워 하이에크와 폴라니를 강제 결혼시킨 덕에 인류의 경제적 성취가 가능했다”고 진단한다. 유토피아로 가는 인류라는 함대의 여정에서 20세기는 경제적 측면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주제가 된 최초의 세기라는 설명이다. 깊게 들어가보자.
우선 저자는 1870~2010년을 ‘장기 20세기(long twentieth century)’로 정의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부터 1991년 소련 몰락까지를 ‘단기 20세기’로 보는 입장(에릭 홉스봄)에서 나아가, 20세기의 진짜 시기를 140년으로 본 것이다. 물질적 빈곤에서 탈출해 부의 급격한 상승 궤적이 가능했던 시기였다. ‘시장경제’ 시스템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1870년 이전 수천 년 동안에도 시장경제는 인류 곁에 존재했다. 하지만 1870년대 들어서면서 시장경제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작동했고, 이후의 풍경은 전과 달랐다. ‘인류를 어떻게 부유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화된 이유였다. 저자가 주목하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 따르면 시장경제를 향한 이러한 믿음은 자유방임사상에 토대를 뒀다. 성경을 패러디해 “주신 분도 시장이오, 가져가신 분도 시장”이란 신념을 하이에크는 설파했다. 시장이야말로 빈곤을 종식시킬 초강력 시스템이었다.
급속한 성장은 모두에게 좋았다. 그러나 평등한 분배가 문제로 떠올랐다. 왜 그런가.
성장을 위해 사회정의는 잊어야 한다는 게 하이에크식 입장이었지만 시장경제란 가치 있는 재산의 소유자만이 참여 가능한 게임이다. 인류의 ‘완벽한 이상’으로서의 유토피아 성취를 위해선 재산권보다 더 중요한, 인간으로서의 여러 권리를 인정해야 했다. 칼 폴라니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자기 조정적이지 못한 시장의 조정”을 통해야만 불안과 불만을 잠재우리라고 봤다.
그러므로 20세기 경제의 역사라는 시장경제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주장하는 하이에크 식의 시선, 다른 한쪽엔 상당한 수준의 평등을 이뤄야 하는 과제를 정착시키려 했던 칼 폴라니 식의 시선이 충돌하면서 빗어낸 하나의 선형적인 움직임이다. 이 책은 ‘장기 20세기’의 경제적 발흥이 첫째 세계화, 둘째 기업연구소, 셋째 근대적 대기업 덕분에 가능했다고 진단하는데, 이것은 인류를 유토피아로 안내하는 세 개의 엔진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유토피아로 가는 기차는 이미 탈선했음을 깊이 있게 간파한다. 이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증명됐다. 세계화는 역전됐으며, 모든 국가의 성장은 느려졌다. ‘20세기의 종언’인 셈이다. 거대 내러티브의 중심에 섰던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리더도 되지 못한다.
시장경제가 완벽하지 못함을 누구나 안다. 그렇다고 가치 있는 재산을 소유하지 못한 모든 인류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사회적 공동체의 지속적인 성장 역시 불가능하다는 걸 우리는 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소련의 흥망, 절정의 미국 영향력, 현대화된 중국의 부상이 ‘장기 20세기’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제 인류는 또 다른 출발선 앞에 서 있다고 책은 말한다. 인류의 다음 정착역은 어디일까. 폴 크루그먼, 토마 피케티, 이코노미스트 등의 추천을 받았다. 원제 ‘Slouching Towards U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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