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별을 향해 걸어간 고흐

도광환 2024. 8.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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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화가를 꼽으라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최상위에 오를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고흐 그림은 지금까지 열거하지 않은 작품이다.

그림 속 편지에 쓴 것처럼, 고흐는 기차를 타지 않고 걷는 모습으로 그렸다.

고흐는 별을 그렸고, 별을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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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화가를 꼽으라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최상위에 오를 것이다. 또 가장 애처롭게 살았던 화가를 선정해도 단연 최우선으로 꼽힐 것이다.

아버지와의 불화, 격정적인 성격, 순탄치 못한 대인관계, 폴 고갱과의 비극, 생전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한 궁핍, 환각과 발작, 그리고 자살.

그나마 지극히 우애가 좋았던 동생이자 후원자였던 테오 반 고흐(1857~1891)라는 존재만이 위안을 준다.

고흐를 좋아하게 되는 단계는 보통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그의 유명세에 덩달아 좋아하는 일, 작품과 작가에 대한 책을 읽은 뒤 애정을 표하는 일, 직접 그의 작품을 본 뒤 감동하는 일.

많은 그의 작품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작품은 '별이 빛나는 밤'(1889)일 것이다. 뉴욕 현대 미술관에 전시된 이 작품 앞엔 항상 관람객으로 붐빈다.

'별이 빛나는 밤' 뉴욕 현대 미술관 소장

조카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그린 '아몬드꽃'(1890)은 그 색과 선의 조화가 향기로워 문구류나 스카프, 손수건, 휴대전화 커버 등 각종 생활용품 디자인 상위를 차지하는 그림이다.

'아몬드꽃' 반 고흐 미술관 소장

여러 점 그린 '해바라기' (1888) 역시 다채로운 경로로 접하는 작품인데, 구불거리는 해바라기 잎사귀는 그가 치열하게 탐닉한 가없는 세상과 공명하는 듯하다.

'해바라기'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까마귀 나는 밀밭'(1890)은 노란 밭과 시커먼 하늘 사이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에 빠지며 그의 죽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까마귀 나는 밀밭' 반 고흐 미술관 소장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고흐 그림은 지금까지 열거하지 않은 작품이다. 처음 본 날부터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져 오래 보지 못한다.

'타라스콩으로 가는 화가' (1888)다. 막 정착한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북쪽으로 약 20km 떨어진 타라스콩으로 걸어가는 자화상이다.

'타라스콩으로 가는 화가' 2차대전 때 소실

인적이 없는 적막한 시골길에 그림 도구를 잔뜩 짊어진 고흐가 홀로 걷고 있다. 노동자 혹은 농부 같은 행색이다. 싱그러운 하늘과 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뙤약볕을 피하기 위해 밀짚모자를 썼다. 멀리 고흐가 애착한 사이프러스 나무도 보인다.

그림자를 매우 짙게 그린 건 단지 강렬한 햇살에 대한 반영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고독한 처지를 강조하는 지문처럼 여겨진다.

흐릿한 고흐의 표정, 웃고 있을까? 힘겨워하고 있을까? 이 그림 운명을 알고 나면 웃는 고흐를 상상하기 어렵다.

나치에 의해 강탈된 이 그림은 독일 한 미술관이 소장 중이었다. 연합군 폭격에 대비해 다른 그림들과 소금 광산에 숨겨 두었으나, 엄청난 폭격에 타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도판으로나마 볼 수 있는 건 전쟁 직전에 찍어둔 사진 덕택이다.

고흐는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나를 꿈꾸게 해.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거야"

편지를 읽은 뒤 작품을 다시 보니 그가 죽어 별에 가는 모습을 미리 상상해 그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 속 편지에 쓴 것처럼, 고흐는 기차를 타지 않고 걷는 모습으로 그렸다. 자기 가치를 언젠가 세상이 알아줄 것을 믿으며 바삐 걷고 있다. 고독도, 죽음도 그에겐 볼모가 아니었다.

고흐는 별을 그렸고, 별을 향해 떠났다. 우리 마음에도 별을 그렸고, 별을 올려보게 만든다. 이제 우리가 별을 그릴 차례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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