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입혀지는 아이언맨 슈트 가능케 하는 '나노로봇'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타고난(또는 얻게 된) 히어로들 그리고 슈트를 입으면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되는 히어로들이다.
후자의 경우 히어로의 슈트도 천차만별이다. 오늘은 과학을 통해 아이언맨의 슈트가 현실에서 가능한지 설명해 보려고 한다. '언제적 아이언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이야기는 아이언맨을 제외하곤 시작이 불가능하다. 히어로의 슈트 중 아이언맨의 나노슈트를 뛰어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 아이언맨의 플라잉 슈트는 이미 현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슈트 성능은 가히 독보적이다. 하늘을 나는 것은 기본, 손바닥에서는 에너지 빔이, 어깨에선 미사일까지 발사된다. 다양한 센서는 적외선, X선 등으로 적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고성능 인공지능(AI)까지 탑재해 대화하듯 실시간 소통도 가능하다(최근 오픈AI가 발표해 화제인 스피치 투 스피치 생성 AI인 것이다).
누군가는 'SF라지만 과장이 심하네'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언맨 슈트의 기능은 대부분 현재 기술로 구현 가능한 기술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플라잉 슈트다.
아이언맨은 슈트의 손바닥과 발바닥에 달린 '리펄서 건'이라는 추진장치를 통해 하늘을 난다. 슈트 내의 강력한 전자기장은 플라즈마를 가속시키고 가속된 플라즈마가 리펄서 건에서 초고속으로 발사된다. 이 발사된 힘에 대해 '작용 반작용 법칙'이 작용하며 아이언맨 슈트가 떠오른다. 실제 현실에선 제트엔진을 활용한 '제트 슈트'가 존재한다.
영국의 제트 슈트 제작 회사인 그래비티 인더스트리스의 '제트 팩'은 제트엔진이 각 팔에 두개씩 그리고 등에 하나 장착돼 아이언맨처럼 꼿꼿한 상태로 비행할 수 있다.
제트 엔진은 외부 공기를 압축시켜 연소실로 보내고 이 공기가 연소되며 발생한 고온·고압의 기체가 터빈을 통과하며 분사된다. 결과적으로 분사구 쪽의 공기 압력이 흡입구보다 커져 압력 차이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받는다.
제트 슈트는 꽤 뛰어난 비행 실력을 자랑한다. 그래비티 인더스트리는 2021년 5월 영국 왕립해병대와 함께 제트 슈트 시험비행을 진행했다. 해병 특공대원은 제트 슈트를 입고 최고 3600m 상공에서 시속 128km로 비행하기도 했다.
● 헐크도 들어 올리는 강력한 힘의 비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면 완다 막시모프에게 정신 조종을 당해 도시를 파괴하는 헐크와 아이언맨이 대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아이언맨이 착용한 무기가 헐크버스터 슈트다. 헐크버스터 슈트는 인간의 육체적 능력을 강화하는 외골격기술의 결정체다.
강화 외골격 기술은 현실에서 무기보단 의료나 산업 분야에 주로 쓰인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는 4년마다 장애인들이 재활 로봇이나 웨어러블 컴퓨터를 이용해 겨루는 '사이배슬론' 대회를 개최한다.
대회에선 6가지의 종목이 펼쳐지는데 그 중 '강화 외골격 경주'가 있다. 척추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참가자들이 외골격 슈트를 착용하고 계단, 경사로, 좁은 통로 등의 장애물을 통과한다. 강화 외골격 로봇은 가속도계, 자이로스코프, 위치 센서 등으로 사용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조정한다.
가장 최근 대회인 2020년 사이배슬론 대회 강화 외골격 경주에선 한국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는 올해 10월에도 예정돼 있으니 강화 외골격 로봇 기술이 얼마만큼 발전했는지 알고싶다면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하다.
산업 분야에서는 강화 외골격 슈트를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데 보조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강화 외골격 슈트를 사용해 무거운 짐을 체력 소모 없이 나를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인간공학 및 로봇 연구실 산하 로봇 회사 '슈트 엑스(Suit X)'의 '아이엑스 백에어(IX BACK AIR)' 외골격은 허리의 부담을 최대 56%까지 줄여 물류 산업에 활용되고 있다.
● 아이언맨 신상 슈트 속 나노기술
아이언맨의 슈트는 매 영화에서 업그레이드 됐는데 그 정점을 찍은 영화가 바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다. 초기엔 토니 스타크가 복잡한 기계장치를 말 그대로 '입어야' 했던 반면 인피니티워에서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슈트가 토니의 몸을 감싼다. 놀란 헐크가 "그게 어디서 나왔냐(where'd that come from?)"라고 물을 때 토니는 아주 쿨하게 "나노테크(it's nanotech)"라고 답한다.
실제로 나노로봇이 결합해 만든 나노 슈트가 개발된다면 스르륵 형성되는 아이언맨의 슈트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현재 기술은 나노로봇이 개별적으로 한두가지 동작을 수행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2020년 이타이 코헨 미국 코넬대 물리학과 교수팀은 짚신벌레보다 작은 약 70µm(마이크로미터・1µm는 100만 분의 1m)크기의 로봇을 만들었다. (doi: 10.1038/s41586-020-2626-9)
연구팀은 각 금속 원소에 전기 에너지가 가해졌을 때 반응 차이에 주목했다. 백금(Pt)은 전기 에너지가 가해지면 전기화학반응에 의해 팽창하는 반면 타이타늄(Ti)은 전기 에너지가 가해져도 변형이 없다.
연구팀은 백금과 타이타늄을 겹친 로봇 다리를 만들어 전기로 로봇의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할 수 있게 구현했다. 로봇 내부의 광전지를 통해 외부 빛을 전기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도록 했다.
물질의 특성을 잘 활용하면 더 작은 크기의 로봇도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있다. 동우 허페이 중국 국립물리과학연구소 연구원과 리 장 홍콩중문대 기계자동화공학과 교수 등이 함께한 공동 연구팀은 표적 암세포에 약물을 전달하는 약 50µm 크기의 물고기 모양 로봇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수소이온농도(pH)에 반응하는 하이드로겔로 로봇을 만들었다. 주변 pH 농도가 낮아지면 입을 벌려 담겨 있던 약물을 방출하게 한 것이다. 이 물고기 마이크로 로봇이 표적 암세포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기술에도나노기술이 숨어 있다. 물고기 로봇을 산화철(Fe3O4) 나노입자가 담긴 용액에 넣으면 로봇 표면에 나노입자들이 달라붙는데 이것을 외부 자기장을 이용해 원하는 위치로 이동시키는 원리다. (doi: 10.1021/acsnano.1c06651)
● 나노미터 로봇 자연 속에서 찾다
마이크로미터보다 더 작은 나노로봇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미세공정 기술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마이크로 로봇들은 공통으로 빛에 민감한 고분자에 빛 에너지를 쬐어 경화시키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이 방법으로 마이크로미터보다 더 작은 서브 마이크로미터 구조를 만드는 것은 빛의 회절 한계 때문에 어렵다.
빛의 회절 한계는 빛이 작은 구멍을 통과할 때 회절 현상으로 초점이 퍼지는 현상을 말한다. 회절 한계는 빛의 파장 길이에 의해 결정된다. 파장이 비교적 더 짧은 전자빔을 활용하면 더 미세한 구조를 만들 수는 있지만 로봇 역할을 하기 위한 기계적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자연상에 존재하는 물질을 활용한다면 어떨까? 최근 주목받는 방법은 바로 DNA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DNA를 구성하는 이중나선의 두 가닥을 구분해 단일 가닥으로 만들었을 때 서로 상보적인 가닥과 결합하려는 DNA 가닥의 특성을 활용해 다양한 구조체를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DNA 가닥이 분자 카고(나노구조나 다른 분자로 기능성 분자를 운반해 특정 부위에서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기술)를 집고 이동한 후 내려놓는 과정까지의 모션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바 있다. (doi: 10.1126/science.aan6558)
이러한 나노 제어 기술들은 앞으로 의료 분야에 활발히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이언맨의 기술과 와칸다 제국의 기술들이 앞으로 얼마나 현실화될까.
SF소설이나 영화가 과학기술 발전에 영향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과학기술 발전이 SF 작품에 반영되는 것인지 알기 어렵지만 SF 작품의 소재들은 몇십 년 뒤에 실제로도 구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플라잉 슈트의 개발자처럼 나노로봇을 개발하는 연구자들처럼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져올 기술 혁신이 더욱 기대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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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8월호, 물리학자 김세정의 시네마 픽 ②아이언맨 - 저절로 입혀지는 아이언맨 슈트, 비밀은 나노로봇?
[김세정 호주 맬버른대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n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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