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보여주는 스릴러 인형극 ‘에릭’[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그냥 좀 해!(Just Do!)’ 낭독 영상을 본 적 있으신가요? 조각가 솔 르윗은 1965년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 예술가인 에바 헤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제발 그만 생각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지 말고, 망설이고,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상처받고, 쉬운길만 찾지 말고, 혼자 낑낑거리고, 욕심부리지 말고, 혼란스러워하고, 가려워하고, 긁고, 머뭇거리고…(중략)…그냥 좀 해!’. 이런저런 핑계만 대지 말고, 그냥 하라는 내용의 편지입니다. 컴버배치는 이것을 영국에서 열린 ‘레터스 라이브’ 행사에서 읽었고, 눈으로 읽기에도 벅찬 이 글을 한 번도 쉬지 않고 극적으로 낭독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만약 그 영상을 재미있게 보셨다면, 이번 주 오마주에서 추천하는 작품 <에릭> 역시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릭>의 배경은 1980년대 미국입니다. 빈센트(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인형술사이자 ‘굿 데이 선샤인’ 이라는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자입니다. 빈센트는 천재입니다. 번뜩이는 창의력, 기획력, 연기까지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성격은 나쁩니다. 오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가족과도 잘 지낼 리가 없죠. 아내와는 서로 욕하며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싸우는 게 일상이고, 9살 난 아들, 에드거에게는 숨 막힐 정도로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에드거가 무슨 말을 하면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으면서요. 그럼 ‘에릭’은 누구일까요? 에릭은 푸른 털을 가진 괴물 인형입니다. 아빠가 하는 일을 보면서 인형극에 관심을 갖게 된 에드거가 직접 그려본 괴물이죠.
어느 날 혼자 학교에 가던 에드거가 갑자기 실종됩니다. 이날은 빈센트가 아내와 싸우다 아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지 못한 날이었습니다. 일 때문에 하루종일 연락 두절 상태던 빈센트는 방송이 끝난 뒤 밤이 되어서야 아들의 실종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들의 실종은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되던 가정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혼란에 빠져있던 빈센트는 에드거가 그린 ‘에릭’ 스케치를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에릭을 만들면 에드거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아내가 아들을 찾으러 거리를 헤매는 동안 빈센트는 에릭 인형 제작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그런 그 앞에 ‘에릭’이 실제로 등장합니다. 빈센트는 자기만 볼 수 있는 에릭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에릭은 빈센트를 위로하는 듯하다가 그를 더 깊은 심연의 우울함으로 몰아넣습니다. 에릭은 빈센트의 자기혐오, 죄책감, 슬픔, 오만함 같은 내면의 감정이 만들어낸 환상입니다.
극 중 에릭의 묵직한 목소리는 모두 컴버배치가 내는 것입니다. 편집증이 있는 천재인 컴버배치, 의뭉스러운 목소리의 괴물을 연기하는 컴버배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에릭>은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어린이 실종’ 이지만,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거리에서 밀려난 노숙인들, 마약 거래 등 당시 사회상이 실감 나게 녹아있습니다.
컴버배치 지수 ★★★★★ 컴버배치를 위한, 컴버배치에 의한 드라마
세서미 스트리트 지수 ★★★ 인형극을 좋아한다면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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