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지만 국민의힘은 안 찍는다"?...한동훈, '보수 정치'를 구원하려면
[편집자주] 보수의 위기다. 한국을 대표하는 보수정당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세 차례 연속 패했다. 일각에선 "보수가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양 날개로 나는 새처럼 정치도 한쪽 진영이 무너지면 건강할 수 없다. 한동훈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은 보수의 재건을 위해 어떠한 핵심 가치를 새롭게 내세워야 할까.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인터뷰에서 "개혁신당의 지지층이 보수에 국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욕을 먹고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108석을 차지하며 참패하자 2022년 대선 승리 이후 사그라들었던 '보수 위기론'이 되살아났다. 총선에서 보수 계열 정당이 유례 없는 3연패를 기록하면서 "한국의 총선, 정치에서는 민주당이 주류가 됐다"(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진단도 잇따랐다.
한국인의 정치성향 분포를 보면 여전히 '보수'가 주류다. 2024년 7월 한국갤럽의 주관적 정치성향을 보면 스스로를 '보수'라 인식하는 이들이 31%로 중도(30%), 진보(27%)를 앞섰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성향 보수층은 2016년 31%에서 2017년 한국 정치 사상 이례적인 시기였던 국정농단 사태 때 20%대 중반으로 떨어졌으나, 2021년 이후 진보층을 계속 앞서고 있다.
문제는 국민의힘이라는 한국의 보수 정당, 보수정치 세력이 보수 지지층을 대변하지 못하는 데 있다. 보수정당의 총선 3연패는 국민의힘의 경쟁력 저하 때문이지 한국인의 정치성향이 급변해서가 아니란 의미다. 전체 유권자의 30%를 차지하는 중도층을 공략하지 못하고 왜소화·수구화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반공보수, 수구보수에 대한 지지는 많이 약해졌지만 시장자유주의, 미국과 일본 등 자유세력 위주의 외교정책에 대해선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며 "지금 집권당이 보수를 잘못 읽고 코드를 잘못 맞추기 때문에 지지를 못받는 것이다. 과거보다 맹목적 보수는 줄었지만 합리적 보수는 여전히 많다"고 진단했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주류의 교체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일반화된 논의"라면서도 "우리가 보수에 기대하는 것들, 안정적인 토대를 확보한 위에서 합리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경제와 안보를 굳건히 하면서 민생을 살려나가는 기본적인 요건에서 현재 굉장히 불충분하다"고 했다.
윤 교수는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보수가 수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 때문에 다수 국민의 지지를 잃고 있다"며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정의, 경제민주화 등 진보적 가치를 통합하려 시도한 데 반해 윤석열 정부는 자유를 화두로 내세우지만 우파 쪽으로 편향돼 있는 퇴행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민의힘은 이처럼 반공·산업화 이후 변화한 시대에 맞게 보수가치를 새롭게 세우지 못하고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데다, 세대·지역 면에서도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지역 면에선 수도권이 사실상 국민의힘의 '험지'가 되면서 여당은 이른바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했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수도권 43석(38.4%)을 얻었으나, 2024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19석(15.6%)을 얻는 데 그쳤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서울에서 살던 30·40대가 경기로 밀려나면서 진보화됐는데, 그 때문에 소선거구제에선 질 수밖에 없다"며 "서울은 강남 위주 중산층 벨트를 중심으로 쪼그라들었다"고 했다.
세대적으론 진보성향이 강한 4050 세대가 갈수록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국민의힘 전통적 지지층은 1년에 30만명씩 돌아가시고 있다"(박상수 변호사). 이른바 '386 세대'의 막내까지 5년 뒤면 60대에 접어든다. 60대 이상 유권자들에게 더이상 보수정당 몰표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2030세대와의 '세대결합'은 이준석 의원(전 국민의힘 대표)의 탈당 이후 복원이 요원한 상태다. 이 의원이 국민의힘을 탈당해 제3정당인 개혁신당을 창당하고 '보수'의 틀에 갇히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결국 국민의힘은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이고 국민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국민이익형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진단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저성장 사회로 접어든 만큼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거나 호봉제를 개선하거나 직장 내 갑질 문화를 개선하는 청년들의 실질적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고 했다.
윤 교수는 "21세기에 들어서 복지의 대대적 확장은 시대정신에 가까워졌는데 보수세력은 거기에 대한 감수성이 취약하다"며 "청년을 비롯한 소수자들, 노인, 여성문제가 한국 보수세력에 주변화돼 있다. 이런 것들을 정치로 담아내지 못하면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한동훈 대표는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하는데,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 가장 부족한 것 중에 하나다. 아직 불충분하지만 적어도 변화의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며 "윤 대통령은 한동훈 대표를 위시한 국민의힘에 자율적인 정치적 공간을 열어주고 실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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