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엘리트보수에 없는 것...한동훈, 소외층 배려·복지 살릴 이유
[편집자주] 보수의 위기다. 한국을 대표하는 보수정당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세 차례 연속 패했다. 일각에선 "보수가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양 날개로 나는 새처럼 정치도 한쪽 진영이 무너지면 건강할 수 없다. 한동훈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은 보수의 재건을 위해 어떠한 핵심 가치를 새롭게 내세워야 할까.
이같은 한 대표의 접근은 최근 국민의힘 주류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던 '격차 해소', '취약계층'에 대한에 대한 감수성을 보여준단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정부여당은 그간 '25만원 지원법'을 '13조원 현금살포법'이라 규정하고 '건전재정 기조에 맞지 않는다', '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침해한다'는 기재부식 논리로 일관해왔다.
한 대표는 지난 7일 '25만원 지원금을 다른 형태로 논의할 여지가 있나'란 기자들의 질문에 "약자를 지원하고 약자 편에 서는 정치를 할 거다. 그런 차원에서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겠다. 여러 방법을 정치를 통해 찾아내겠다"고 했다. '국민 눈높이'를 줄곧 강조하고 있는 한 대표는 고금리·고물가에 당장 몇 푼 현금 지급이라도 절실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이들의 부담을 덜어줄 맞춤형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단 입장을 보였다.
한 대표의 고민은 현재 보수가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를 보여준다. 산업화와 고도성장 시대를 지나 전 세계적 저성장에 접어든 지금 보수정당은 더 이상 '성장'만을 부르짖을 수 없다. 복지와 배분은 21세기 들어 '시대정신'이 됐다.
전문가들은 국민의힘이 3연속 총선에서 패배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시대정신의 변화를 읽지 못한 탓이 크다고 진단한다. 검사·엘리트 관료 출신들이 주류세력이 돼 정책을 펴는 동안 서민·청년·여성 등과의 괴리는 커져갔다. 국민의힘은 서민과 괴리된 '부자정당' 이미지가 확고해졌다. 지지 기반이 갈수록 좁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변화의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20년 총선 참패 직후 등판한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힘에 '약자와의 동행', '서진정책' 등 DNA를 심는 혁신을 시도했고 이런 외연확장은 2022년 대선 승리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3년째 강조하고 있는 '자유주의'도 보수의 수구화, 왜소화를 부추겼다는 평가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진화된 형태로, 부의 불평등이라는 자유주의의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를 접합한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는 자유지상주의에 가까우며 굉장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협소한 자유의 이념이다. 통치의 양상은 자유와 어울리지 않는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국정기조로 '공정사회론'을 내세웠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양극화와 승자독식 경제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경제민주화' 기치를 들었다. 과거 보수 정부조차 '정의', '복지 강화'라는 진보적 가치를 통합하는 시도를 했단 것이다. 윤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자유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퇴행적인 양상"이라고 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애초에 복지국가를 처음 도입한 건 보수주의자인 비스마르크였다"며 "복지는 보수가 체제를 안정시키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연금개혁도 보수의 어젠다가 돼야 한다. 윤 대통령은 국정지지율 하락을 감수하고 노동·연금개혁을 관철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롤모델로 삼았지만 아직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보수가 공공성과 공존, 사회통합 등 공화주의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단 목소리도 나온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공화주의는 국가와 민족,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인데 현재 보수는 이것이 개인의 이익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생각하고 자유주의로 돌아서버렸다"며 "공화주의·자유주의 양 축에서 한 축이 무너지니 승자독식의 정글만 남게 됐다"고 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주창하는 자유주의는 준법정신, 법질서를 기본 원리로 삼는데 사회의 다양한 직역,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노블리스 오블리주 등 공동체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했다. 한 대표가 정치를 시작하며 자주 언급한 '동료시민'은 현재 보수가 취약한 공화주의적 가치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전원책 변호사는 "국민이 답답한 것은 고물가 환경에서 소득이 늘지 않는 것, 일자리 부족, 버는 돈보다 써야 하는 돈이 훨씬 많은 적자 살림"이라며 "우리 헌법 전문엔 전세계 어디도 없는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대학 강연 나가서 젊은이들에게 '지금은 누구나 노력하면 다 잘살 수 있지 않은가'라고 하면 펄쩍 뛴다. 기회 균등이 확대되는 정책을 정부가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자유엔 경제적 자유뿐 아니라 정치적 자유도 있다. 기본권을 보장하고 공적인 복지 서비스, 정치적 참여 확대를 통해 효능감을 높여주는 형태로 보수가 삶의 질 문제에 착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오세훈 시장이 말하는 따뜻한 보수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윤 교수는 "21세기 시대정신인 복지 강화, 재분배,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국민의힘에 굉장히 박약하다"며 "당의 체질이 변해야 하고 인사와 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시대가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세력이 이를 외면하면 집권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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