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숙박비만 400만원…그래도 ‘대입 성공’ 욕망은 대치동을 향한다
사교육의 최전선 대치동 민낯
지난 8일 밤 9시40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ㅇ호텔 로비. 권아무개(15)양이 왼편에 놓인 컴퓨터 책상에서 영어 문제 풀이에 한창이었다. 호텔 방으로 올라가거나 식당에서 나오는 들뜬 모습의 호텔 투숙객들 사이에서 조용히 문제집을 들여다보는 권양의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강원도 춘천시의 중3 학생인 권양은 여름방학 동안 이 호텔에 묵고 있다. 엄마와 고3인 언니와 함께다. 침대 두개짜리 3인실을 빌려 3주째 장기투숙 중이다. 춘천의 집을 두고 세 식구의 ‘대치동 호텔살이’는 학원 때문이다. 권양은 오전 9시께 호텔을 나서 대치동의 영어·수학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다. 오후 3시께 호텔로 돌아와 숙제를 한다. 권양의 언니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자습형 종합학원에서 공부한다.
3주간 호텔 숙박비로만 200만원 이상이 든다. 권양의 학원 수업은 과목당 35만∼40만원가량이다. 숙식비와 학원비 등을 합치면 권양 가족은 3주에 400만원을 쓴다. 그럼에도 대치동 호텔에 머무는 이유는 명확하다.
“와보니까 저보다 두살 어린 친구가 같은 걸 공부하고 있더라고요.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상위권에 절대 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명한 선생님이랑 잘하는 애들이 많은 여기서 많이 배우려고 왔어요. 이번 방학에 영어는 고2 과정, 수학은 고1 과정까지 끝내는 게 목표예요.”
방학 때 대치동 호텔에서 지내는 건 권양 가족만이 아니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이 호텔에 많이 묵어요. 엘리베이터에서도 자주 마주쳐요. 원래는 투룸을 구하려고 부동산에 갔는데 이 호텔을 추천하더라고요. 저희 애 친구 중에 학교에서 ‘톱’을 찍는 친구가 여기 10층에 묵는데, 고1 때부터 방학 때마다 여기에 왔다고 하더라고요.” 권양의 어머니는 9일 아침 딸과 함께 기자를 만나, 이곳에선 집 떠나온 ‘대치동 유학생’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3개월 전부터 장기투숙 예약”
방학 기간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호텔 장기투숙이나 원룸 월세살이까지 불사하며 대치동에서 학원 방학 특강을 듣는다. 정부가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고 ‘킬러 문항’ 배제 정책을 펼쳤지만 사교육 과열은 전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학원비에 주거비, 숙식비까지 치르며 학원가로 모여드는 모습이다.
대치동 학원가엔 ‘성공적인 대입’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초·중·고교생과 엔(n)수생들이 모인다. 특히 방학 철이면 ‘서머스쿨’, ‘윈터스쿨’로 불리는 특강을 들으려 지방 학생들까지 모여든다. 지난 8일 저녁 찾은 대치동 학원가는 책가방을 메고 트레이닝복과 슬리퍼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학생들로 붐볐다. 한 손에 학습지를 들고 학원 안으로 들어가거나 걸어가면서 햄버거를 먹는 학생도 보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대치동 유학생’의 하루도 이곳을 거니는 여느 학생들의 하루와 다름없다. 학생들은 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 등 과목별로 원하는 학원에 등록한 뒤 매시간 학원을 옮겨 다닌다. 남는 시간에는 ‘스터디 카페’에서 숙제를 하거나, 끼니를 때운다. 이들이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곳은 집이 아닌 인근 호텔이나 원룸, 학사 등이다.
낯선 곳에 머무는 생활인데다 경제적 부담도 크지만 수요는 꾸준하다. 대치동 인근 부동산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과 학부모들이 늘 찾아온다. 대치동 ㄷ부동산의 최아무개 공인중개사는 “주로 방학 특강을 들으려는 상위권 중고등학생들이 찾아온다”며 “매달 월세로 120만∼150만원 정도를 내야 하고 신축은 180만원까지도 받는다. 그런데도 발 빠른 분들은 3개월 전부터 와서 예약을 해놓는다”고 말했다. 다른 부동산 관계자도 “이곳에서 적당한 방을 못 구해서 주변 호텔로 가는 분들도 있고, 반대로 호텔은 너무 비싸다며 방을 구해달라 하는 사람도 있다. 전국에서 온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ㅇ호텔 관계자는 “방학을 앞두고 학생과 학부모가 장기숙박을 예약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이곳 호텔의 숙박비는 한달을 기준으로 400만원 안팎이다.
대치동이 지방 학생들마저 빨아들이는 이유로는 입시에 특화된 학원이 많다는 점과 ‘스타 강사’의 현장 강의,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이아무개(52)씨의 아내와 고3, 중3 자녀도 이번 여름방학 동안 대치동의 ㅅ호텔에서 지낸다. 숙박비만 한달에 400만원 이상이다. 이씨는 “어떻게든 학생들을 변별해야 하는 상황에서 학교가 가르치지 않은 문제가 시험에 나온다. 대치동 학원은 이걸 맞히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준다. 스타 강사의 현장 강의를 들으며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고 한다. 상위권 대학을 가고자 욕심을 갖고 있는 애들은 이곳에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학마다 대치동의 할머니 집에서 지내는 대전의 고1 학생은 “여기에서는 애들끼리 경쟁이 굉장히 심하고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수학을 하는 분위기”라며 “지금 전교에서 10등 정도 하는데 이곳에 오면 중간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이곳에서 내가 어느 위치인지 확인하면 자극을 받고 공부를 더 하게 된다”고 했다.
사교육 대책 백약무효…‘불안감’ 주목해야
지방일수록 대치동으로 대표되는 학군지와의 격차를 더욱 체감한다. 충청권의 한 일반고를 나와 올해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 ㄱ씨는 “요즘 수능으로 대학에 입학하려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데 지방 학원은 대부분 내신 중심이고 입시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학교 수업도 입시와 거리가 멀다. 고3 중에 학교 수업을 듣는 애들을 손에 꼽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또 “(수능을 준비하는) 상위권 학생들은 방학 때 서울에 방이나 학사를 잡고 대치동 학원을 다니거나 대치동 학원의 문제를 구해서 푼다. 학생들 한명씩 국어, 영어, 수학 등 과목을 각각 맡아서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대치동 시험지를 구해 오고 다 같이 그걸 돌려보면서 공부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대치동 풍경은 정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을 무색하게 한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는 학원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힌 학생들에게만 유리한 문제인 이른바 ‘킬러 문항’을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겠다고 했다. 또 ‘사교육 카르텔’을 근절하겠다며 시대인재 등 유명 입시학원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6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하며 “과도한 사교육으로 학생, 학부모와 교사가 모두 힘든 와중에 학원만 이익을 취하는 상황을 뿌리 뽑기 위해 공정한 수능 평가를 확실히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에는 국회 교육위원회가 실시한 국정감사 자리에 나와 “사교육 카르텔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치동의 사례가 보여주듯 사교육 과열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초·중·고 학생이 지출한 사교육비는 총 27조1천억원으로, 2021년 23조4천억원, 2022년 26조원에 이어 3년 연속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능 해킹’의 저자인 문호진 교육평론가는 사교육 과열 현상의 배경에는 공교육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 자리한다고 진단했다. 문 평론가는 “수능은 교육과정의 목표들을 잘 수행했는가와 무관하게 문제 풀이 훈련을 통해 치르는 ‘퍼즐 맞추기’ 시험이 됐고,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내용과의 연계성도 무너졌다. 동시에 학교는 가르치는 곳보다는 공부해온 내용을 평가하고 기록하는 곳으로 여겨진다. 특히 지방 공교육의 경우 학생을 가르치는 역량이 학교마다 크게 차이 난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짚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학교에서 성실하게 공부하면 입시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교육당국의 말을 학부모와 학생들은 신뢰하기 어렵다. 결국 각자가 사교육 기관을 찾아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선행학습 하고 알아서 수능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교육 과정만 충실히 따라서는 입시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만연한 불안감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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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서열화 말고 공교육 정상화를
한편으로는 공교육 너머의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수능의 창시자’로 불리는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는 “대학들이 수능 성적만으로 학생을 줄 세워서 선발하지 말고 고등학교에서 적성을 잘 찾고 개발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도록 입시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고 더 상위 대학을 나온 사람이 좋은 보수를 받는 체제를 완화시켜야 사교육 과열도 잦아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수험생 학부모들에겐 정부의 ‘사교육 때려잡기’ 약속은 부질없고, 전문가들의 지적은 공허하다. “저도 애들을 학원에 보내고 있지만 공교육을 신뢰할 수 없고, 사교육이나 스타 강사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정말 마음에 안 들어요. 하지만 이렇게 해야만 ‘인 서울’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버렸잖아요.” 자녀가 고3이 되어서야 대치동 호텔 한달 투숙에 월 400만원을 쓰는 이씨의 푸념이다. 그는 또 “극단적으로 일반고에서 1등을 해도 학원에 안 가면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못 가는 상황이에요. 정부는 교육제도를 정교하게 만들고 학생들 적성을 찾아준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사교육만 살찌워주는 제도로 변질된 거 아닌가요?”라고도 했다.
사교육의 힘 없이는 대입을 치르기 힘든 현실에서 대치동 학원가의 불빛은 방학에도 꺼지지 않는다. 수험생들이 성공적인 혹은 맘에 들지 않는 대입으로 빠져나간 자리도 새 수험생들로 메워질 터다. 이씨와 같은 학부모의 하소연은 언제까지 반복돼야만 하는 걸까.
김민제 박고은 기자 summer@hani.co.kr
연간 27조, ‘저출생’ 공범…경쟁압력·사회격차 줄여야
대치동 사교육의 민낯
윤석열 대통령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저출생을 극복하겠다고 나섰지만, 치솟는 사교육 수요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루기 어려운 목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사교육비는 매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통계청과 교육부의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비는 약 27조1천억원으로 2022년 약 26조원과 비교해 1조2천억원(4.5%) 늘었다. 2021년부터 사교육비는 역대 최대 기록을 매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 전체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3만4천원,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을 제외하면 평균 55만3천원이다.
사교육비 부담은 그동안 저출생의 주요 원인으로 늘 지목돼왔다. 올해 초 국토연구원의 ‘저출산 원인 진단과 부동산 정책방향’ 보고서를 보면, 출산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주택 매매·전세가격과 함께 사교육비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2월 실시한 ‘저출산 대책에 대한 일반국민 의견조사’에서도 저출생 주요 원인으로 ‘결혼 및 출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29.2%)에 이어 ‘교육비 등 양육 비용 부담’(27.5%)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지난해 10월 ‘저출산 인식 조사’에서도 ‘경제적 부담 및 소득 양극화’(40.0%)와 함께 ‘자녀 양육·교육에 대한 부담감’(26.9%)이 꼽혔다. 2021년 감사원의 ‘저출산·고령화 대책 성과분석’ 감사보고서에서도 사교육비가 주택가격, 실업률 등과 함께 저출생과 상관관계가 높다고 바라봤다.
학부모들도 사교육비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의 약 76%,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의 60%가 사교육비 지출 부담이 크다고 인식했다. 하나은행의 2021년 ‘생애금융보고서’를 보면 40대(1972∼1981년생)의 인생과제 네가지(은퇴자산 마련, 주거 안정, 자녀교육, 자기계발) 중 자녀교육을 우선순위로 꼽은 사람은 16%로 중요도 3위에 머물렀으나, 실제 부담 규모는 월 107만원으로 가장 많이 지출하고 있었다. 반면, 중요도 1위인 은퇴자산 마련(42%)은 자녀교육에 밀려 지출 3위였다. 이들에게 노후 준비가 중요한데 실제 돈은 사교육에 쓰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사교육 카르텔’ 단속에만 나설 것이 아니라, 경쟁적 교육 시스템 등 사교육 수요를 유발하는 근본 원인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기초교육학부)는 “사교육비를 낮추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노동시장 격차, 대학 간의 격차 등 사회 격차를 줄이는 것”이라며, “현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사교육의 첫 단추인 영어 유치원 등을 해결하기 위해 영유아 교육의 질을 높여 수요를 잡아야 한다”고 짚었다.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도 “주거비나 양육비는 한시적인 비용이지만 사교육비는 자녀의 연령이 올라갈수록 늘어나는 등 20년 이상 저당 잡히는 지출”이라며 “사교육비의 원인은 결국 경쟁 압력이다. 대학 서열화 등 경쟁적인 교육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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