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 살인사건' 1년…"혼자 안 다녀요" 시민 불안 여전
CCTV·비상벨 확대설치하고 순찰 강화했으나
시민 불안은 계속돼…"혼자선 절대 안 다닌다"
전문가 "근본적 대책 마련·공동체 의식 강화해야"
[서울=뉴시스]홍연우 기자, 임수정 인턴기자 = 지난해 8월17일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 일명 '등산로 성폭행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딱 1년이 흘렀다. 최윤종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산속 공원 둘레길 등산로에서 너클을 낀 주먹으로 30대 여성을 때리고 성폭행한 뒤 숨지게 했다. 최윤종은 CCTV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범행 장소를 정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최윤종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는 이 사건을 계기로 폐쇄회로(CC)TV 설치 및 순찰을 확대했지만 강력 범죄는 끊이지 않고 시민들 불안은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단순 순찰 확대보다도 공동체 의식 강화와 범정부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 14일 뉴시스가 찾은 신림동 등산로엔 며칠 전 내린 비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흙바닥은 젖어 있고 나무 데크는 부분적으로 부식된 상태였다.
평일 오후임을 감안해도 인적은 드물었다. 가끔 운동을 하러 나온 노인, 통행을 위해 등산로 앞을 지나가는 장년층만이 가끔 눈에 띌 정도였다. 등산로를 찾은 이들은 모두 2명씩 짝을 이뤄 걸었다. 혼자 이곳을 걷는 이는 없었다.
이날 운동차 등산로를 찾은 60대 여성 성모씨는 "(지난해 사건 발생 직후) 한동안 등산로에 잘 안 왔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괜찮아졌지만 절대 혼자 안 다닌다. 오늘도 둘이 왔다"며 함께 산책 나온 친구를 가리켰다.
그는 "1년이 지났지만 아직 무섭다. 혼자 다니기엔 껄끄럽다"며 이곳을 찾은 기자에게 "위험하니 홀로 올라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등산로 인근 주택가도 상황은 비슷했다.
신림동 주민이라는 A씨는 "확실히 예전보다 거리에 사람이 줄어들었다"며 "사건이 일어난 뒤로 길을 걸으면서도 자꾸 사방을 둘러보게 된다. 집 밖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당시 최윤종이 CCTV가 없는 사각지대를 골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된 만큼 경찰과 지자체는 CCTV 등을 확대 설치해 예방에 나섰다.
사건 이후 관악구청은 등산로와 공원에 전직 경찰 및 소방관 출신 순찰 요원 70명과 숲길 안전지킴이를 배치했다. 지능형 CCTV와 비상벨을 619대로 확대 설치하기도 했다. 지능형 CCTV는 인공지능으로 CCTV 영상을 분석해 범죄 발생을 실시간으로 탐지한다.
등산로 초입 20걸음 당 하나씩 설치된 가로등을 3개 지나치자 누가 봐도 새 것으로 보이는 지능형 CCTV가 보였다. 사건 이후 설치된 CCTV는 비상벨과 함께 등산로 입구를 지키고 있었으며, 카메라는 사방을 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신림동에서 자영업을 하는 30대 여성 박모씨는 "최근 칼부림 사건이 여러 건 나지 않았나. 그런 사건들의 범인들에게서 잡혀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느껴졌다"고 했다.
박씨는 "도심 한복판, 아파트 등에서 살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는 걸 보니 그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CCTV를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찬가지로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경계심이 강해졌다"며 "호신용품이라도 장만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시민들의 불안을 증명하듯 한동안 잠잠했던 강력범죄는 지난달부터 다시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신림역 칼부림 사건과 등산로 살인사건에 이어 지난달 일본도 살인사건, 지난 14일엔 지인 살해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범죄의 토양이 바뀌었다. 대체로 범죄의 동기가 분노에 맞춰져 있고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상실됐고 교도소 출소 후 재범하는 경우도 있다"며 달라진 현재의 세태를 진단했다.
이 교수는 "범정부 차원에서 심층적으로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단편적 진단과 대책이 아닌 국가 치안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깊이 있는 전략이 없으니 여전히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강력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은영 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경찰이나 지자체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서로 감시하고 살펴주는 자치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강 박사는 "서울이란 도시 환경 자체가 공동체 의식이 약화된 상황이라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도 "CCTV나 조명 설치 등 셉테드(환경 설계를 통한 범죄예방)과 동시에 주민의 자체적인 범죄 예방 활동이 중요하다. 지역 사회 유대나 공동체 의식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ong1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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