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돌고 도는 술의 굴레’ 카니버 버번배럴
위스키는 와인을 머금으며 자란다.
갓 증류한 위스키 원액은 투명하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 향을 빼면 곡물 향 밖에 나지 않는다. 위스키가 다양한 향과 맛을 품는 건 오랜 숙성 덕이다. 원액을 나무통에서 숙성하면 점차 맛과 향이 달라진다. 위스키 종주국 스코틀랜드에서는 원액을 숙성한 지 최소 3년은 지나야 ‘위스키’라는 이름을 붙일 자격이 생긴다.
위스키 숙성에는 스페인 와인 쉐리(Sherry)나 포르투갈 와인 포트(Port)를 담았던 나무통을 자주 쓴다. 와인을 담아두던 나무통에서 원액을 익히면, 평범한 나무통에서 숙성할 때보다 복합적이고 미묘한 개성이 드러난다.
숙성은 위스키 성격을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과정이다. 투명했던 원액은 수년 동안 쉐리와 포트가 머물던 참나무통에서 지내면서 그 맛과 향이 켜켜이 덧씌워진다.
전 세계 증류소들은 심혈을 기울여 숙성에 쓸 나무통을 엄선한다. 얼마나 이름난 와이너리에서 사용했던 나무통인지, 어느 국가에서 어떤 지역 나무로 누가 만들었는지 여부까지 따져가며 고른다.
이렇게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각 증류소를 상징하는 독특한 위스키의 풍미가 피어난다. 브라이언 킨즈맨 윌리엄그랜트선즈 마스터 블렌더는 저서에서 “위스키 풍미를 결정짓는 과정에서 최초 3년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 기간 원액에 다양한 특성이 급속히 입혀진다”고 말했다.
보통 쉐리 와인을 담았던 나무통에서 익힌 위스키는 말린 과일과 고소한 견과류 풍미가 강하게 난다. 디저트 와인으로 유명한 포트 와인 나무통에서 숙성하면 달콤한 벌꿀과 화사한 꽃향기가 주로 나타난다.
최근에는 일상적인 레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을 담았던 나무통에 위스키를 숙성하는 생산자가 늘었다.
반대로 위스키를 담았던 나무통에서 숙성하는 와인도 있다. 카니버 버번배럴이 대표적이다. 배럴은 위스키가 든 나무통을 말한다. 이 와인은 이름처럼 미국 켄터키 버번 위스키를 숙성했던 나무통에서 숙성한다.
버번 위스키는 미국을 상징하는 술이다. 스카치 위스키가 그렇듯, 버번이란 이름 역시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이 이름을 쓰려면 엄격한 기준을 모두 지켜야 한다. 당연히 미국에서 만들어야 하고, 증류 원재료 가운데 최소 51% 이상 옥수수를 써야 한다.
숙성은 반드시 내부를 불에 그을린 새 참나무통에서 해야 한다. 한번 사용했던 참나무통을 다시 쓰면 버번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 조항 때문에 미국 위스키 생산지에서는 매년 무수히 많은 나무통이 나온다.
스코틀랜드 스카치 위스키 생산자는 이 나무통 가운데 상당수를 사간다. 옥수수를 쓰는 버번 위스키는 보리를 사용한 스카치 위스키보다 바닐라향과 카라멜 같은 단맛이 강한 편이다.
스코틀랜드보다 뜨거운 미국 내륙 기후 특성상 증발하는 원액 양이 많아 맛도 진하다. 스카치 위스키 생산자들은 버번 위스키 숙성 참나무통을 들여와 부족한 달콤함과 진득한 여운을 더했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달콤함과 강렬한 여운은 와인 인기를 좌우하는 주된 요소다. 일부 미국 와인 생산자들은 ‘와인도 버번 위스키 숙성 참나무통에서 숙성하면 더 맛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품었다.
위스키가 와인을 숙성했던 참나무통을 만나 새 개성을 띌 수 있다면, 와인 역시 위스키를 숙성했던 참나무통에 익히면 이전과 다른 맛과 향을 뿜지 않겠냐는 질문이다.
카니버 버번배럴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카니버(Carnivor) 와인즈는 육식동물을 뜻하는 영단어 카니버(Carnivore)에서 따온 미국 와인 브랜드다. 이름처럼 고기 요리에 맞는 와인을 전문적으로 만든다. 미국 켄터키 지방에서는 버번 위스키와 숯에 구운 고기를 가장 잘 맞는 조합으로 여긴다. 카니버 와인즈는 버번 위스키 나무통에서 숙성한 와인 역시 육류와 잘 맞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은 와인을 위스키 숙성 참나무통에서 익히는 과정을 단순히 풍미를 더하기 위한 단순한 공정으로 보지 않는다. 윤회(輪廻) 혹은 삶의 순환(circle of life)에 비교한다.
막 만들어져 와인을 숙성했던 참나무통이 역할을 다하면 곧 위스키가 새로 담긴다. 이렇게 위스키와 수년을 함께 한 참나무통에서 위스키가 빠져나가면, 이 자리에는 다시 와인이 담긴다. 이 순환 과정에서 와인 향을 띈 위스키와 위스키 향을 머금은 와인이 생겨난다. 참나무통에도 와인 향과 위스키 향이 두텁게 쌓인다.
이 와인은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 레드 와인 신대륙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에선 롯데칠성음료가 수입·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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