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해수 싸대기’ 맞으며 짠물 꿀꺽...공군 되려면 바다를 이겨내야 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바닷물을 먹기 전까지는.
바람과 파도 없이 잔잔했던 지난 14일 오후 남해 바다에서 공군 해상생환훈련 체험을 했다. 공군 모토처럼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이 되기 위해서는 바다를 이겨내야 한다. 비행 중 유사시 닥칠 수 있는 해상 조난 상황에서 생환하기 위해서다. 매년 여름 300~400여명의 조종사가 바닷물을 마시며 이곳에서 훈련한다. 본지를 포함해 국방부 출입기자단이 경남 남해군 미조면 앞바다에서 그 훈련의 편린을 ‘찍먹’(살짝 맛보기)했다.
해상 ‘낙하산 견인 훈련’(drag)이 첫 순서였다. 강풍이 부는 해수면에서 낙하산에 끌려가다가 낙하산을 분리하는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다. 바다에 엎드린 자세로(front drag·전면 드래그) 앞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호흡을 확보한 뒤, 뒤로 끌려가는 상황(back drag·후면 드래그)으로 전환해 낙하산 결속을 푸는 시나리오에 따라 훈련이 진행됐다. 실제 낙하산을 착용할 경우 안전 사고 우려가 있다. 훈련은 선미 ‘드래그 타워’에서 낙하산을 가정한 줄을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갑판에서 받았던 교육 내용을 떠올리며 입수를 위해 드래그 타워로 갔다.
“오케이?” “오케이!” “레디, 고”
‘고’ 사인과 함께 어깨에 매달린 라이저(riser) 줄 두 가닥으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기자의 몸은 해수면으로 낙하했다. 2층 높이에서 떨어지기 시작하자 300t급 공군 훈련용 선박의 갑판, 하부 데크 풍경이 스쳐지나갔다. ‘언제까지 떨어지는거지’라고 생각할 때쯤 발부터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숨을 참는 것도 눈을 감는 것도 잊고 있었다. 바닷물을 한 사발 삼켰다.
구명조끼 덕에 수면으로 올라왔다고 느낀 것은 잠시였다. 금방 물 속에서 멱살을 잡힌 채로 끌려가는 꼴이 됐다. 방수복과 구명조끼를 착용해 부력은 충분했지만, 머리는 자꾸 물속으로 끌려들어갔다. 배가 시속 5노트(약 시속 9.3㎞)로 몸을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관이 가르쳐준 대로 두 손으로 라이저를 눌러 상체를 일으켜세우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영락없는 요가 ‘코브라 자세’였다. 마침내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후면 드래그.” 숨 돌릴 틈도 없이 교관의 지시가 이어졌다. 양 손으로 두개의 라이저를 최대한 바깥쪽으로 밀어낸 뒤 몸을 180도 회전시켜 눕는 자세로 바꿔야 한다.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머리를 물 속에 넣고 몸을 돌렸다. 자세전환은 성공. 하지만 이번에는 뒷덜미를 잡힌 채로 끌려가는 꼴이 됐다. 구명조끼를 누르며 상체를 수면 위로 올리려고 했지만 바닷물은 계속 머리 위로 타고 넘어왔다. 속절없이 또 바닷물 꿀꺽.
15년 전 유격훈련을 기억하며 유격체조 8번 ‘온몸 비틀기’ 기본 자세를 취했다. 턱은 앞으로 당기고, 복근에 힘을 주고, 다리는 힘껏 위로. 알파벳 ‘L’자 모양을 만들었다. 머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마침내 코로 공기가 들어왔다. 지시대로 다리를 좌우로 ‘쩍벌’하자. 조금더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평소 쓸 일이 없었던 복근은 경련을 일으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릴리즈.” 배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다. 어깨에 부착된 라이저를 빼기 위해 손으로 주섬주섬 릴리즈 박스를 찾아 결속을 풀었다. 릴리즈 박스를 찾는 과정에서 온몸 비틀기 자세가 흐트러지며 한번 더 바닷물 꿀꺽. 줄이 풀리고 나서야 구명조끼는 제 역할을 했다. 기자를 바다에서 건지러 오는 배가 보였다. 마침내 평온한 바다와, 앞바다의 섬, 한여름의 태양이 눈에 들어왔다.
교관이 선상에서 마이크로 “박수”라며 호응을 유도했다는 것은 나중에 촬영된 영상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날 드래그 훈련에 참가한 기자는 모두 11명. 2명은 구조대원이 출동해야 했다. 한 기자는 “살려주세요”라고 두번이나 외쳤지만 스스로 릴리즈를 할 때까지 교관은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몇몇은 구조선 위에 올라타 양 콧구멍에서 물을 쏟았다. 바닷물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이었다.
드래그 훈련이 끝난 뒤 교관은 “여러분들이 하도 바닷물을 많이 삼키는 바람에 해수면이 조금 내려갔다”고 했다. 현직 파일럿은 통상 8노트(약 시속 15㎞)로 끌어당긴다고 한다. 4~5노트는 그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교관은 훈련 전 “매운 맛과 덜 매운 맛이 있습니다. 순한 맛은 없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진짜 파일럿 입장에서는 ‘순한맛 그 자체’였을 수준의 훈련이었다.
탐색 구조 훈련이 이어졌다. 주한미군도 믿고 신뢰한다는 공군 항공구조사(SART·Special Air force Rescue Team)가 헬기를 타고 해수면에서 떠다니는 기자를 구출하는 훈련이었다. 다섯명이 한 팀으로 물에 둥둥 떠 있었는데, 구출되는 영광은 다른 기자에게 주어졌다. 나머지 네 사람에게 주어진 과제는 ‘스크럼을 짜고 한데 모여있기’였다. 헬기 프로펠러가 일으킨 바람이 아래로 불면서(downwash·다운워시) 구명정이 전복될 수 있다. 그래서 배에서 내려 구명조끼 차림으로 바다에서 대기해야 한다. 효율적인 구조를 위해 한데 뭉쳐 대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정도야 식은죽 먹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헬기가 해수면 10여m 상공으로 내려와 호버링을 시작하자 ‘김치 싸대기’는 우스울 정도의 ‘해수 싸대기’가 시작됐다. 다운워시로 거센 파도가 일었다. 눈은 못 뜨겠는데 코로는 비산하는 해수가 날아와 꽂혔다. 아찔했다. 또 바닷물을 먹었다. 영화 ‘퍼펙트 스톰’의 삼각파도가 떠올랐다. 구출하러 오면 구출되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다운워시를 뚫고 조난자를 구조하러 헤엄쳐 오는 항공구조사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이어 항공기 비상탈출 후 낙하산을 이용해 해상으로 입수하는 강하 훈련(패러세일)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날 바람이 너무 약해 체중 60kg 이상은 열외됐다. 기자는 별 수 없이 패러세일 체험은 포기해야했다.
생환교육대 생환교관 김기환 상사는 “실제 조난 상황은 전시와 평시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공중근무자에게 닥칠 수 있다”며 “실제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조난자를 구해줄 수 없기 때문에 실전과도 같은 훈련을 통해서 언제든지 살아 돌아올 수 있게끔 강인하게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최신 낙하산은 착수(着水)와 동시에 분리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기기고장 등으로 비상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드래그 훈련을 반복해서 받는다고 한다.
흔히 ‘빨간 마후라’(공군 조종사)는 우아하고 폼 나는 군 보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바닷물을 열심히 들이키며 치열하게 훈련을 하는 모습이 있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숙련급 조종사 양성비용은 1인당 100억원에 달한다. 유사시 이들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늘은 물론 바다에서도 극한의 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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