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졸 기념 따릉이 폭주"…학생과 동고동락한 경찰이 잡았다[베테랑]

김미루 기자 2024. 8.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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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박지환 경장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2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송파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박지환 경장. 3년 차 학교전담경찰관으로 '따폭연'(따릉이 폭주 연대)에서 활동하는 관내 학생 면담을 통해 활동 예정 일자, 집결 장소를 알아냈다. /사진제공=송파경찰서
"중학교 졸업 기념 킥보드 탑니다."
"정모 겸 폭주 진행합니다. 경찰차는 다 털릴 준비 하세요."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 등 폭주족인 이른바 '따폭연'(따릉이 폭주 연대)이 SNS(소셜미디어)에 올린 글 내용이다. 주 연령층이 10대인 이들은 공유형 자전거, 전동킥보드 등 수단을 이용해 질주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려왔다. 빠른 속도로 행인을 치고 가거나 경찰을 조롱하는 내용이 영상에 포함됐다.

지난 4일 따폭연은 오후 6시 따릉이 폭주족 집결을 예고했다. 서울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던 날 경찰 123명은 서울 시내 37곳에서 순찰에 나섰다. 하지만 폭주족은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따폭연은 SNS를 통해 같은 달 10일 또 다른 장소에서 폭주 계획을 알린 상태였다.

서울 번화가에서 따릉이 등을 타고 '따릉이 폭주 연합(따폭연)'이 난폭 운전하는 모습. /영상=인스타그램 갈무리

송파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박지환 경장은 송파서 관내에서도 따폭연이 모인다는 112신고를 접했다. 쉬는 날이었지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 SNS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그의 우려대로 송파서 관내 학생도 따폭연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대로 둔다면 10일 집결에 나설 것이 뻔했다.

박 경장은 SNS상에서 학생의 이름과 나이, 소속 학교를 확인했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학생과 면담에 나섰다. 따폭연 계정의 팔로워는 3000명에 달했지만 실제 활동하는 핵심 인원은 소규모였다. 박 경장은 따폭연이 외부에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활동 예정 일자와 집결 장소를 파악해 서울경찰청에 보고했다. 이후 서울경찰청이 지난 8일 따폭연 계정주인 남자 고등학생을 붙잡으며 이들의 범행을 멈췄다.
상습 가출 학생 1년 뒤 검정고시 합격…"선생님, 우리의 귀인"
송파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박지환 경장. 3년 차 학교전담경찰관이다. /사진제공=송파경찰서
박 경장이 청소년 폭주족의 내부 정보까지 접근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그는 학교 안팎의 청소년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학교전담경찰관(SPO)으로 2년 동안 근무했다. 그중에서도 사이버 SPO를 맡아 온라인상 학교폭력과 비행 활동을 수시로 모니터링했다. 학생들이 인스타그램을 범행에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 알고 있었다.

박 경장은 학교전담경찰관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2021년 입직한 첫해 지구대에서 근무하며 '학교폭력 예방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현재 송파 관내 초·중·고등학교 14곳을 담당하고 있다. 학교 폭력 등 청소년 범죄 피해 학생을 지원하고 가해 학생을 선도하는 역할이다. 학교에 직접 찾아가 학교폭력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신임 사이버 SPO를 대상으로 상담, 모니터링 기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상습 가출을 하다가 마음을 고치고 1년 만에 검정고시에 합격, 박 경장에게 보람을 안겨준 청소년도 있었다. 박 경장이 담당하는 중학교에 다니던 한 여학생은 지난해 상습적으로 가출해 여러 차례 실종팀 신고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학생은 경찰과 기관 직원 모두에게 '나를 부모님한테 인계하는 것 아니냐'며 '어른을 믿을 수 없다'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고 위험이 도사리는 거리에 학생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박 경장은 "이번 주만. 아니 오늘 하루만 쉼터에서 보내달라"며 학생을 설득했다. 휴무와 비번 날에도 학생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카카오톡 연락을 꾸준히 이어갔다. 언니처럼 밥도 사 먹였다. 안정적인 관계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구청에 함께 가 청소년 안전망 제도를 신청했다. 민관 협업을 끌어내 학생 집에 침구와 가전제품을 지원하는 등 집을 떠난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박 경장은 "지난주에 학생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고 해서 같이 삼겹살을 먹었다"며 "학생이 나에게 의지를 못 하는구나 느낄 때는 힘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돼준 것 같아서 그간 힘든 것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한 청소년에게 '선생님은 우리의 귀인'이라는 말을 듣고 되레 자신이 위로받았다는 박 경장은 "앞으로도 '내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세로 일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송파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박지환 경장. 3년 차 학교전담경찰관이다. /사진제공=송파경찰서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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