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3만불이 넘어도 행복하지 못한 이유 [BOK 경제강좌]

김혜란 기자 2024. 8. 1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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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원 한국은행 경제교육실 교수
[서울경제]

최근 들어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길게 보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말 빠른 성장을 해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에 비례해서 더욱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듯하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1인당 소득수준과 자살률 추이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데 비례해서 자살률도 동반상승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한국과 미국에서 유독 나타나며 특히 OECD 국가들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하다. 삶의 만족도를 물어봤을 때 행복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 OECD 38개 국가들 중에서 34위에 그쳤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던 몇몇 경제학자들은 기본적인 생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소득수준이 확보되고 나면 기대수명, 비만, 정신병력 등 개인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이나 범죄율, 마약중독 등 각종 사회문제와 같이 사람들의 행복감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얼마나 많이 버는가와는 관계가 적어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반면에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도는 그 사회가 얼마나 고르게 잘 사는지를 나타내는 소득분배의 균형도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세계가 놀라는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했고 절대적인 빈곤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냈다. 이때는 높은 경제성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기가 맞다. 그렇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전후로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들에게 고르게 퍼지는 순기능(낙수효과)이 약화되기 시작했지만, 그 이후에도 성장 우선주의 정책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소득불평등도가 심해져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바늘 구멍 같은 좋은 일자리를 얻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 어려서부터 성적경쟁, 스펙경쟁에서 헤어날 수 없고, 가까스로 취직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니 무한경쟁에 내몰린다.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심신은 망가지고 행복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풀어갈까? 이제는 눈앞의 성장률 수치를 올리는 데 집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겠다. 당장은 조금 성장률이 낮아지더라도 사람들이 골고루 행복할 수 있는 길(양극화 해소)을 가야한다. 소득분배에 초점을 맞추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진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최근에는 IMF를 비롯한 많은 국제기구에서도 소득분배의 개선이 그 나라의 중장기 경제성장률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분배의 악화로 사회적 갈등이 심한 나라일수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서 기업들이 중장기 투자계획에 소극적이고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비수요 또한 부진한 반면 분배가 개선되면 사회 구성원의 사기, 팀워크, 상호신뢰 등 통합성이 높아지면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축적되어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득분배를 비롯한 주요 경제문제는 정책으로 풀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결국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국회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 고도 성장기를 견인했던 성장 우선주의에 집착하기보다는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양극화를 완화하고 고르게 잘 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정책적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경험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경제 문제는 결국 정치 문제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살기 위해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는 점, 즉 경제성장은 애초부터 행복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목적이 아니었다는 출발점, 잊지 말아야겠다.

김혜란 기자 kh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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