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물에 빠지고 하늘로 치솟고 '살려주세요'…공군 생환훈련 체험기
(남해=뉴스1) 정윤영 기자 = 아직 여름휴가를 못 간 기자는 남해에서 진행된다는 공군의 '해상 생환훈련' 체험을 '기자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탈의 기회'로 생각하고 선배에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참석 의사를 피력했다.
인생 버킷리스트에 있던 치누크 헬기 탑승과 패러세일링을 동시에,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훈련 역시 '레크리에이션 수준'일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에 올라오는 설렘은 집합 장소로 집결할 때까지였다.
이후 약 4시간 동안 전개된 일련의 훈련들은 심하게 말하면 '익사 체험 또는 황천길 미리보기'에 가까웠고, 부록으로 체험단과 교관 모두 앞에서 물구나무를 3차례 서는 수치심까지 따라왔다. 여기에 체험이 끝난 지 사흘이 지났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근육통은 덤이다. 이래서 선배가 흔쾌히 기회를 양보한 것이었을까. 선배는 '아주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섭씨 36도의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14일. 남해 미조 앞바다에서 펼쳐진 공군 해상 생환훈련 체험은 △드래그 훈련 △해상탐색구조 훈련 △낙하산 부양 강하 훈련 등 세 가지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훈련의 목적은 공중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조난을 당했을때 구조대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체득하거나, 자력 복귀 능력을 습득하는 데 있다고 한다.
공군에 따르면 연간 1400여 명의 공중 근무자들이 4년 6개월마다 5일간의 생환훈련을 받고 있으며, 조종사를 대상으로 한 하계 생환훈련에는 약 400명 안팎이 참가한다.
11명으로 구성된 기자단은 교관의 안내에 따라 훈련의 목적과 자세 등을 안내받을 때까지는 앞다퉈 체험에 나서고자 순번 경쟁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훈련은 드래그(Drag). 낙하산을 맨 채 바다에 빠졌을 때를 대비한 훈련이다. 실제 낙하를 할 수는 없어 상황을 모의로 구성하는데, 로프에 매달린 채 기동 중인 선박 갑판에서 4m가량을 수직 낙하해 입수하며 모의 상황을 구성했다.
세 번째로 훈련에 참가한 기자는 "착수 준비", "오케이", "레디, 고"라는 구호가 끝나기 무섭게 바다에 던져졌다. 이제 내 몸을 180도 회전시키는 '백 드래그'를 하고 줄을 풀면 되는데 비명부터 나오는 것이 인지상정.
입수 전 10여분간 진행됐던 교육이 무색하게 머릿속은 이미 백지화 상태가 됐고 입으로는 짠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고개를 들라"는 교관의 주문과 "살려달라"는 나의 외침은 공중에서 격렬하게 맞부딪혔다.
'180도 회전 후 줄을 풀...'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를 때쯤은 기자가 이미 이날 첫 번째로 응급구조사에 의해 구조되는 기록을 세운 뒤였다.
이날 기자단이 체험한 선박의 평균 속도는 4노트(2m/s)였는데, 이는 평소 훈련 시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8노트(4 m/s)를 풍속으로 치면 '캠핑이 가능한 수준의 산들바람'이란 공군 측 설명이 뒤따랐지만 전혀 와닿지 않았다. 훈련 난이도는 5점 만점에 5점.
놀란 마음이 겨우 진정될 때쯤 이어진 두 번째 훈련은 탐색구조훈련. 이는 해상에서 조난자들이 원활하게 구조될 수 있도록 연막을 피워 특정 지점으로 모이게 한 뒤 헬기의 구조를 기다리는 훈련이다.
입수 뒤 차분하게 헬기를 기다렸다. 이번에는 옆에 동료가 있어 심정적으로 위안이 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헬기가 다가오면서 우리를 향해 '다운워시' 바람이 불었다. 바닷물이 사방으로 튀며 얼굴을 때리니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어졌고 고막을 찌르는 헬기의 굉음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두 번째 훈련이 종료되고 구조선에 올라야 하는데 아차 싶었다. 훈련을 위해 입었던 방수복 지퍼가 열려 바닷물이 한가득 흘러 들어간 것. 엄청나게 무거워진 기자는 구조선에 올라온 뒤 제대로 걷지 못해 기어서 이동했다. 엄연히 훈련이고, 해상인 만큼 함부로 방수복을 벗을 수는 없고, 물을 빼기 위해서는 물구나무를 서야 한단다.
그렇게 동료 기자들 앞에서 교관의 부축을 받으며 3번의 물구나무를 선 뒤에도 바닷물은 70% 정도만 빠져나갔다. 두 번째 훈련의 체감 난이도는 5점 만점에 3.5점. 수치심은 5점 만점에 5점이다.
이어서 시작된 낙하산 부양 강하(패러세일링) 훈련엔 시간과 풍속 관계상 총 4명의 기자만이 참여했다. 공중근무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훈련의 목적은 항공기에서 비상탈출 후 낙하산을 이용해 안전하게 해상으로 입수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날 패러세일링 훈련은 견인선에 올라 110미터(m) 길이의 견인줄에 이끌려 70m 높이 상공까지 올라간 뒤 견인선 줄을 '릴리즈(release)'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주의할 것은 바다 입수 시점에 낙하산의 캐노피가 머리를 덮어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경우와 착수 후 발생하는 끌림현상에 의한 익수 사고라고 한다.
앞선 망신을 만회하기 위해 기자는 교관의 지시에 따라 혼신의 힘으로 박차고 나갔지만 배가 빨랐다. 견인선의 속도를 이기지 못해 앞으로 엎어지자마자 낙하산에 끌려 공중으로 밀어 올려졌다. 패닉과 익수 사고를 피해야 한다는 강박에 한가롭게 경치를 바라볼 여유는 물론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원활하게 입수 및 구조가 이뤄졌다. 체감 훈련 난이도는 5점 만점에 2점으로 한껏 여유를 부려보기로 했다.
이날 기자가 체험한 모든 훈련은 공중근무자들이 실제로 참여하는 훈련으로, 조난 상황에서 구조 전까지 '생존'을 위한 제반 모든 절차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데 의의가 있다. 공중근무자들은 이날 기자단이 체험한 것 보다 몇 배는 센 강도로 훈련에 참여한다고 하니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이라는 말이 들어맞는다 싶다.
오형모 공군8126부대장 중령은 "해상 생환훈련은 실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대비해 우리 소중한 자산인 조종사들의 생존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며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실전과 같은 훈련을 통해 공중근무자의 생존성 극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내심 조국의 하늘을 지켜주는 공군에 감사함을 느낀 하루였다. 이상 체험기를 마치며 '필승'.
yoong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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