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특발성 폐섬유증' 신약 개발 '순풍'
대웅제약·브릿지바이오 임상2상 돌입…FDA서도 관심 높아
일동제약, 자회사 통해 신약 개발 착수…복제약 시험도 완료
[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난치병으로 분류되는 특발성 폐섬유증(Idiopathic Pulmonary Fibrosis·이하 IPF)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존 의약품은 이미 상용화됐으나 병의 속도를 늦추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현재 개발 중인 신약들이 이런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IPF는 폐에 콜라겐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돼 서서히 굳어지면서 기능을 상실하는 난치병이다. 진단 후 5년 생존율이 40%, 10년 생존율은 15%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다. 주로 노년층이나 흡연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발생하며, 증상으로는 호흡곤란과 기침 등이 있다.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기존 치료제는 섬유화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그쳐 그 효능이 제한적이고 이상 반응 발생률도 높아 미충족 수요가 크다.
관련 치료제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Research and Market)에 따르면 전 세계 IPF 치료제 시장은 매해 7% 성장률을 보이며, 오는 2030년에는 약 61억달러(한화 약 8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IPF가 미충족 수요가 큰 만큼, 국내 기업들은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신약 개발에 집중하며 임상 단계에 진입했다. 특히 대웅제약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대웅제약은 미국과 한국에서 IPF 신약 후보 물질인 '베르시포로신(프로젝트명 DWN12088)'에 대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베르시포로신은 섬유 조직 합성을 직접적으로 억제하는 등 새로운 작용 메커니즘을 통해 기존 치료제와 차별화된 안전성이 기대된다. 임상 2상은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삼성병원 등 10개 기관과 미국의 약 20개 기관에서 진행되며 현재까지 목표 환자 인원 102명 중 약 60%가 모집됐다. 임상 2상은 오는 2025년 내로 완료할 방침이다. 앞서 베르시포로신은 지난달 26일 미국식품의약국(FDA) 산하 독립적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IDMC)로부터 임상 2상을 지속하라는 권고를 받은 바 있다. 올해 3월 받은 1차 권고에 이어 두 번째다. 임상 2상의 최종 점검은 내년 초 예정된 IDMC 3차 회의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IDMC는 임상시험의 안전성과 효용성을 검증하고 약물 평가의 진행 여부를 각국 규제기관에 독립적으로 권고할 수 있는 심의 자문기구다. 규제기관, 임상시험 기업과는 별도로 선정된 위원들이 임상에 문제가 없는지 평가한다. 만약 IDMC로부터 지속이 아닌 중단 권고를 받으면, 사실상 안전성 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은 것과 다름없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이하 브릿지바이오)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 대웅제약보다 간발의 차로 앞서 있는 상태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인 IPF 신약 후보 물질 'BBT-887'은 글로벌 임상 2상 단계에 있으며, 최근 시험 목표 환자 120명을 등록 완료했다. BBT-877은 신규 표적 단백질인 '오토택신'을 선택적으로 저해하는 후보 물질이다. 오토택신은 세포 내 수용체와 결합해 경화증, 종양화 등 병리기전에 관여하는 단백질로 알려졌다. 이번 임상 2상은 BBT-887과 위약 간의 유효성과 안전성, 내약성 등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한국은 물론 미국, 호주, 폴란드, 이스라엘 등 50여 개 기관에서 진행 중이다. 임상 결과는 내년 상반기쯤 발표될 예정이다. 해당 후보 물질 또한 지난 5월 IDMC로부터 지속 권고를 받은 바 있으며, IDMC는 올해 하반기 중에 추가 회의를 연다.
넥스트젠바이오사이언스(이하 넥스트젠)의 경우, 지난달 초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자사의 IPF 신약 후보 물질 'NXC680'에 대한 임상 1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 넥스트젠은 난치성 섬유증 신약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회사로, IPF뿐만 아니라 신장 섬유증, 안과성 섬유증 등을 대상으로 한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고 있다. NXC680은 BBT-887과 비슷하게 오토택신을 저해하는 항섬유화 기전을 갖고 있다. 지난해 1월 FDA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기도 했다.
기존 의약품을 넘어 신약 개발에 집중하는 곳도 있다. 일동제약은 IPF 증상을 지연시킬 수 있는 약물 '피레스파(성분명 피르페니돈)'을 보유 중인데, 자회사 아이리드비엠에스를 통해 신약 후보 물질 'IL1512'를 연구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IL1512는 케모카인 수용체 중 염증 유발 및 섬유화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CXCR7에 대해 선택적으로 작용 기전을 갖는 혁신 후보 물질"이라며 "이를 통해 섬유아세포 활성화, 조직 복구, 혈관 신생 등과 같은 폐섬유증의 진행 메커니즘을 조절해 증상 개선 효과를 노린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케모카인이란 체내 면역 시스템에서 화학적 신호를 통해 면역 세포들을 염증 부위로 유도해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한 종류다.
이외에도 일동제약은 독일 기업 베링거인겔하임이 개발한 '오페브(성분명 닌테다닙)'의 제네릭(복제 의약품) 개발에 나섰다. 회사는 오페브 제네릭의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완료, 데이터를 분석 중이다. 오페브는 IPF의 진행 지연 효과를 입증한 의약품으로, 폐 기능 감소를 50%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IPF를 진단받고 3~5년 사이에 절반가량이 숨질 정도로, 폐암에 가까운 사망률을 보인 무서운 질병"이라며 "2014년 이후 섬유화를 막는 약이 출시돼 진행 속도가 많이 지연되고 생존율도 올랐지만, 여전히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러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에 나섰다가 임상 3상에서 고초를 겪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잡아내고 상용화까지 성공한다면 글로벌 수익은 보장됐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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