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이한 현실의 ‘퍼펙트 데이즈’

김참 부동산부장 2024. 8. 17.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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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진행된 동탄 롯데캐슬 무순위 청약이 294만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누구나 자격 제한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무순위 청약인데다, 당첨 시 최대 10억원의 시세 차익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천문학적인 청약 경쟁률을 보였다.

동탄 롯데캐슬 무순위 청약 경쟁률은 로또 당첨 확률보다도 높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4만대 1이다. 통상 한명이 5000원에 5게임을 하는 로또의 특성을 고려하면, 당첨 확률은 162만대 1로 떨어진다.

반복되는 일상에 약간의 변주를 주고 싶은 사람들은 전부 청약 홈페이지로 몰려갔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대부분 홈페이지 접속 대기 숫자 2,453,456명이라는 숫자를 보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최근 ‘퍼펙트 데이즈’라는 일본 영화가 극장가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중년 남자가 매일 공공 화장실 청소를 하는 내용이고, 이것이 영화의 전부다.

주인공 히라야마의 행동에서 수도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 만족해하고, 방해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며 지낸다. 이 과정에서 히라야마의 삶에 대한 태도가 관객에게 큰 울림을 준다. 남들은 더럽다고 피하는 공공 화장실 청소일을 하지만, 그는 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공공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쉬는 시간에는 나무가지 사이에 비치는 햇살(코모레비)을 필름 카메라로 남긴다. 일과를 마치면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에 가고, 이후 선술집에서 하이볼 한잔 마시고 집에 들어와 책을 보다가 졸리면 잠이 든다. 그리고 이른 새벽 동네 주민의 빗자루질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주말에는 빨래방에 가고, 단골 주점에 들려 집에 돌아온다. 히라야마에게 퍼펙트 데이즈는 이런 일상의 반복이 무탈하게 이뤄졌을 경우다.

'퍼펙트 데이즈' 포스터

대다수 한국의 직장인도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해 각자의 여가를 즐기고 잠이 든다. 그리고 일어나서 다시 출근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직업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패턴은 여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직장인이 수억 원대 시세 차익이 기대되는 아파트 청약을 신청해봐야 당첨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청약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 행위도 일상에서 약간의 변주에 불과할 것이고, 각자의 처지에서 당첨을 꿈꾸며 잠시나마 즐거우면 된다. 물론 대다수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은 결말이 예정돼 있다.

다만 히라야마의 소박하게 반복되는 일상보다, 수억 원대 차익이 기대된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청약 홈페이지에 로그인하는 우리의 일상이 멋없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현재의 청약 제도가 조용한 일상의 반복으로 퍼펙트 데이즈를 보냈어야 직장인들에게 심적 동요를 일으켰다. 지금의 청약 제도는 집 없는 서민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많이 벗어났다.

또 분양가가 20억원이 넘어가는 고가 아파트에 돈 많은 자산가들만 청약할 수 있는 현재 구조는 아무리봐도 공정하지 않게 느껴진다. 실제 동탄 롯데캐슬과 같은 날 청약한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펜타스는 당첨되면 20억원 가까이 시세차익을 낼 수 있었지만 경쟁률은 352대 1 수준에 그쳤다. 당첨 이후 곧바로 전세를 내주더라도 현찰 10억원 이상 있어야만 계약이 가능했던 탓이다.

청약 과열 방지를 위해 분양가상한제를 손보고, 무순위 청약도 최소한의 자격 기준을 만드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래야 버벅이는 청약 홈페이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 낭비하는 일도 사라지게 된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번 청약 경쟁률 294만대 1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기이한’ 현실이 오히려 영화 같아서 일까. 한국인의 퍼펙트 데이즈가 아파트 청약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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