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동정하는 세상 옳은가… AI와 함께 쓴 소설이 묻는다

황지윤 기자 2024. 8. 17.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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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가 만난 사람] 소설가 구단 리에
/문학동네

도쿄도 동정탑

구단 리에 장편소설 |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184쪽 | 1만5000원

올해 일본 아쿠타가와상에 AI(인공지능)가 난입했다. 아쿠타가와상은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의 업적을 기린 일본 순수문학계 최고 권위상으로 1935년 제정됐다. 소설가 아베 고보,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류 등이 이 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도쿄도 동정탑’으로 올해 상을 거머쥔 소설가 구단 리에(34)는 지난 1월 수상 기자회견에서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만든 문장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말해 기자회견장을 들썩이게 했다.

소설은 범죄자가 ‘동정받아야 할 사람들’로 여겨지는 근 미래 도쿄를 무대로 한다. 소설에서 범죄자 동정론을 주도하는 사회학자 마사키 세토는 범죄자를 ‘호모 미세라빌리스’(라틴어로 불쌍한 인간)라 칭한다. 죄를 짓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아온 비범죄자는 ‘호모 펠릭스’(운 좋은 인간)로 부른다. 호모 미세라빌리스가 수감될 타워 이름은 ‘심퍼시 타워 도쿄’ 또는 ‘도쿄도 동정탑’. 타워 설계를 맡게 된 건축가 마키나 사라가 주인공이다. 데이트 성폭력 피해자인 그녀는 이 명칭이 혼란스럽다. ‘심퍼시 타워 도쿄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온몸이 거부하고 있다…. 이건 마치 강간당하는 기분이다.’

소설의 도발적인 내용보다 형식이 훨씬 주목받은 아이러니한 상황. 논란을 지켜보며 4년 차 신진 소설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쿄도 동정탑’ 국내 출간을 계기로 구단 리에를 서면으로 만났다.

©SHINCHOSHA

-자신을 소개하자면?

“‘AI 친화적 인간’이라고 알려진 것 같습니다.”

-”5% 정도 문장은 AI의 도움을 받아 썼다”고 한 말이 화제가 됐지요.

“제가 ‘AI를 활용했다’고 발언했을 때 기자회견장이 꽤 시끄러웠다고 나중에 한 신문사 기자가 전해줬습니다. 곧바로 해외에도 보도됐고요. 시간이 지나고 제가 문제적 발언을 했다는 걸 알았어요. ‘어떡하지’ 초조해하는 동시에 ‘이 일 때문에 책이 안 팔리면 곤란하겠지’ 생각하며 냉정하게 대응책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독자들도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면서요?

“수상 발표 및 기자회견 날이 ‘도쿄도 동정탑’의 출간일이었어요. 당시에는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었을 거에요. 그런데 뉴스 헤드라인만 보고 기사에 욕설 댓글을 달고, 욕설 DM(소셜미디어 메시지)도 끊이지 않았어요. 수상 후 바쁜 일정에 피로감까지 겹쳐 올해 1월에는 수락해둔 일이 일단락되면 작가를 그만둘 생각마저 했습니다. 한 달 뒤쯤에는 비판이 잠잠해져서 마음을 놓았어요.”

-책을 읽고 보니 ‘별거 아닌데’ 싶었어요. AI가 쓴 문장은 소설 속 인물과 AI가 대화하는 장면에 녹인 것 아닌가요?

“네. 그 부분이 아니라면 AI는 취재용으로 사용했습니다. 감옥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로 하고 AI에 ‘교도소를 현대적 가치관에 기반해 업데이트하고 싶어. 어떤 명칭이 좋을까?’ 물었어요. ‘포지티브 리커버리 센터(Positive Recovery Center)’ ‘세컨드 챈스 센터(Second Chance Center)’ 등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순식간에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는 AI의 성능에 감탄하면서도, 외국어로만 이뤄진 명칭에 위화감을 느낀 것이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입니다. 물론 AI는 ‘동정탑’이나 ‘호모 미세라빌리스’처럼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아요.”

-AI와 달리 논란의 여지가 있는 소재로 소설을 썼네요.

“저 자신에 대해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시원한 방에서 종일 태평하게 소설을 쓰는 것도 어떤 면에서 범죄적일 수 있어요. 그런 자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AI는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요?

“AI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독자가 충분히 흥미롭게 받아들인다면, AI는 이미 소설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AI 친화적’인 이 작가는 차기작에서도 AI를 활용할 계획일까? 소설가는 “차기작으로는 여러 후보가 있지만, AI를 쓸 생각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에게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이 세상의 무궁무진한 수수께끼에 대해 아직 아무도 쓴 적이 없는 이야기로 질문을 던지고, 조금이라도 답에 가까워지는 것”. AI의 문장을 그대로 써 문단에 충격을 안긴 소설가가 던질 새로운 질문은 무엇일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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