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하이브리드 빅3’, 차세대 기술 개발 경쟁
올 상반기 하이브리드 차량을 만드는 레거시(전통) 자동차 업체들이 진격하고 있다. 도요타, 현대차그룹, 포드가 주도하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빅3′가 주인공이다. 세계 곳곳의 전쟁 여파로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며 연비 좋은 차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20년 이상 하이브리드 기술을 개발한 기업들이 호실적을 내는 것이다.
올 상반기 글로벌 주요 기업들의 성적표는 하이브리드가 좌우하고 있다. 전기차에만 집중한 기업들은 시장이 주춤하면서 실적도 같이 나빠지고 있다. 전기차만 판매하는 테슬라는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했다. 네 분기 연속 감소다. 반면 도요타, 현대차·기아, 포드 등 하이브리드를 만드는 기업들은 역대급 실적을 내거나 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하는 모습이다. 이에 다른 자동차 기업들도 차세대 하이브리드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차세대 하이브리드 잇따라
15일 로이터에 따르면, 도요타는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2026년 준중형 세단 코롤라에 처음으로 탑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 미국 시장에서 내연차를 아예 단종하고 하이브리드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미국에서 중형 세단인 캠리, 미니밴 시에나, 대형 SUV 랜드크루저 3종은 2025년식부터 내연차를 단종하고 하이브리드만 팔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하이브리드로 수요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도요타(렉서스 포함)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글로벌 191만5023대로 전년 동기 대비 20% 늘었다. 내연차까지 포함한 전체 판매량이 같은 기간 1%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포드도 2030년까지 전 차종에 하이브리드 차를 투입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포드 역시 지난 2분기 하이브리드 판매량이 분기 기준 2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덕을 톡톡히 봤다. 픽업트럭 신형 매버릭의 하이브리드 버전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여파다.
현대차·기아 역시 올 상반기 하이브리드 판매량이 약 43만대로 작년 상반기보다 24%나 늘었다. 특히 올 연말 2.5L 터보 엔진 기반의 새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장착한 준대형 SUV 팰리세이드를 출시한다. 이를 시작으로 차세대 하이브리드 차를 속속 투입할 예정이다.
◇하이브리드로 미래차 시간 번다
올 상반기 주요 기업들 실적을 보면 하이브리드는 단순히 과도기적 차량을 넘어, 자동차 회사를 먹여 살리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전기차 수요 정체 시기가 길어지는 가운데, 하이브리드가 미래차 개발을 위한 자금과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차·기아는 대규모 투자가 들어간 전기차 분야가 주춤했지만, 하이브리드가 탄탄하게 뒤를 받치며 지난 2분기 분기 기준 사상 최고 영업이익(약 8조원)을 냈다. 이를 통해 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라는 새로운 미래차를 개발해 전기차 수요 정체에 대응하는 또 다른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도요타는 2분기 영업이익이 1조3100억엔으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 엔저와 하이브리드 상승세 효과 덕분이다. 전기차 개발에선 지각생이란 평가를 받은 도요타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불황)과 하이브리드 덕분에 “전기차 실력을 쌓을 시간을 벌었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포드는 2분기 하이브리드 판매 최대 기록을 세웠다. 전기차 부문에서 2분기에만 11억4000만달러 손실을 보면서, 실적은 기대 이하였지만, 하이브리드가 없었다면 침체가 더 깊을 뻔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반면 전기차만 판매하는 테슬라는 최근 미국에서 구조 조정을 진행 중이다. 테슬라는 전기차의 대체재가 없는 데다, 계획했던 ‘2만달러대 보급형 전기차’ 출시가 늦어지면서 시장점유율을 지킬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진 상태다. 지프, 푸조 등 열네개 브랜드가 소속된 세계 5위 스텔란티스는 상반기 순이익이 56억유로로 전년 대비 48% 감소했다. 스텔란티스는 전기 충전도 되고, 기름으로도 가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주로 팔고 있는데, 올 연말까지 일반 하이브리드 차종을 최대한 늘려 시장 변화에 대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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