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만의 사치? 원룸 살아도 작품 통해 새 세상과 연결돼”

2024. 8. 17.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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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컬렉팅의 기쁨
오는 9월은 미술축제의 달이다. 이런 때 초보 컬렉터와 감상자들은 어려운 전문용어를 많이 쓰는 미술계 내부자가 아니면서 전문적 식견을 가진 조언자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런 조언자 중 하나가 지난해 말 『디어 컬렉터』를 출간해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전 뉴스데스크 아나운서 김지은 MBC 국장이다.

김 국장은 이미 20년 전에 당시 떠오르는 젊은 한국 미술가들 21명을 다룬 책 『서늘한 미인』으로 서점가에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 예술학과와 미국 크리스티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또한 32년째 월급을 쪼개 컬렉팅을 해오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 공개, 컬렉팅 문화 전환점
미술애호가 아나운서 김지은 MBC 국장과 그의 책 『디어 컬렉터』. 김상선 기자
『디어 컬렉터』는 국내외 현대미술 컬렉터 21명의 아름다운 집안 사진과 함께 그들의 컬렉팅 철학, 그들이 소장한 작품과 작가들의 미술사적 의미, 소장품들이 컬렉터들에게 개인적으로 갖는 의미 등을 모두 돌아보는 책이다. 기획 계기는 코로나19였다. “그리운 친구들에게 메일을 썼습니다. 안부와 함께 ‘내일 죽는다면 오늘 남기고픈 아름다운 장면을 공유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랬더니 친구들이 모두 자신들이 수집해온 작품 사진을 보내오더란다. 생각해 보니 이 친구들과 짧게는 7년, 길게는 30년 우정을 이어온 배경에 모두 ‘현대미술 중독자라는 공통의 취향’이 있었다고 한다. 모두 부자 컬렉터인 것도 아니다. “뉴욕 백만장자부터 상하이 옥탑방 거주자까지 경제수준은 천차만별이었지만 현대미술이 던지는 ‘질문’을 사랑하며 자신만의 관점을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음은 김 국장과의 일문일답.

Q : 이들 컬렉터에게 공통점이 있던가요?
A : “첫째. 작품을 집안 중심에 둔다는 확실한 기준이 있었어요. 일단 작품부터 배치하고 가구 등 나머지 요소를 생각하니 정리정돈이 잘 되고 동선과 생활패턴이 간결해집니다. 책이 나온 뒤 독자들에게 ‘집집마다 인테리어가 너무 독특한데 어디 제품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뒤늦게 물어봤더니 대부분은 부모님이 쓰시던 것, 벼룩시장에서 산 것 등 새로 산 특정 브랜드의 제품이 아니었어요. 지출은 작품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제각기 다른 눈으로 고른 ‘작품’이 인테리어의 중심이었으니 비슷한 집안 풍경이 없었던 거에요.”

Q : 또 다른 공통점은요?
A : “컬렉터인 동시에 큐레이터라는 점입니다. 창의적인 배치를 통해 작품 사이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 달인들이었어요. 이런 큐레이터적 마인드는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예컨대 제니 샐러먼이라는 친구는 팬데믹 와중에 화장실을 아이들의 자유구역으로 정해서 마음껏 낙서하게 만들었는데 바스키아(미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울고 갈 정도의 명작이 나왔어요. 또 하나는 신진작가의 후원을 아끼지 않고 기부에도 열심이고 예술이라면 발 벗고 나서준다는 것입니다.”

Q : 소위 ‘아트테크’가 아닌 컬렉팅의 기쁨은 무엇일까요?
A : “컬렉팅을 ‘부자들만의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원룸에 살면서도 작품이 수백 점인 친구도 책에 등장해요. 손바닥만한 작품도 걸작으로 여기면서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작품을 주로 모아요. 그 천진한 아름다움에 매료됐고 아웃사이더 아트 페어에 자발적 도슨트 활동도 하면서 예술과 삶을 함께 고양시키고 있어요. 작품 값은 옷이나 외식 몇 번 줄이면 살 수 있는 수준이에요. 원룸에 살아도 작품이 뚫어준 통로를 통해 새로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이죠.”
책에 소개된 김나경 컬렉터의 집. [사진 아트북스]

Q : 수퍼리치 컬렉터가 아닌 이상 한정된 예산에서 ‘돈이 되는 작품’과 ‘좋아하고 밀어주고 싶은 작가의 작품’ 사이에 갈등이 생길 것 같은데요.
A : “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봅니다. 타인의 권유로 마음에 썩 내키지 않지만 값이 오른다고 해서 샀는데 가격이 바닥을 쳐 거래조차 되지 않는 작품을 매일 봐야만 하는 심정.(웃음)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 넘게 작품을 모아온 컬렉터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는 현대미술 시장의 변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좋아하고 밀어주고 싶은 작가’의 작품을 사고 그 작가를 끊임 없이 후원하는 방법이 제일 좋다고 하네요. 시장에 휘둘리지 말고 시장을 리드하는 컬렉터가 되라고요.”

Q : 본인도 미술 컬렉터이신데요.
A : “첫 월급으로 작품을 구입한 이래 월급의 일정액을 매년 써 왔어요. 어떤 작품은 구입할 때부터 사연이 있기도 하고 어떤 건 소장한 이후 사연이 생기기도 하는 등, 순위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각각의 이유로 모두 사랑합니다. 총 300점 정도 되는데 30% 정도만 자리 잡은 작가이고 나머지는 아닙니다. 박서보 화백 작품도 단색화가 국제적으로 뜨기 전인 2002년에 산 거예요. 최우람·이주요·레이첼 화이트리드의 작품도 모두 초창기 작품들을 높지 않은 가격에 산 것인데 그들의 작품이 이제 국립현대미술관과 테이트모던에 있는 걸 보면 뿌듯하죠. 마치 그들의 성장에 일조한 것처럼. 지금도 신진 작가들의 전시를 빠짐없이 다니고 여력이 된다면 소품이라도 꼭 하나 소장하려고 노력합니다. 앞으로 온라인을 통해 한 분씩 소개하면 어떨까 구상 중입니다.”
“결국 작품이 사람을 모으는 것 아닌지…”

Q : 지난 20년간 한국의 미술 감상과 컬렉팅 문화가 상당히 변한 것 같습니다.
A :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이건희 컬렉션 공개가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비행기 타지 않고도 세계수준의 컬렉션을 볼 수 있었고 컬렉팅의 세계를 압축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컬렉터층이 젊고 두터워지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세대 컬렉터들이 수줍고 비밀스러웠다면 요즘 컬렉터들은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컬렉팅의 전후를 활발히 소통합니다. 그것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컬렉팅은 국가든 개인이든 ‘자랑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랑질’을 히려면 (미술사) 공부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컬렉터 본인과 미술계에 자양분이 됩니다. 다양한 작가들이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 형성되고 있어요. 사람이 작품을 모으는 것 같지만, 결국 작품이 사람을 모으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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