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 강가·계곡서 즐긴 천렵…매운탕 원조는 천렵탕

2024. 8. 17.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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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가 있는 제철 음식
조선시대 천렵 풍경을 잘 그려낸 김홍도의 ‘계심어비’. 어부들이 그물을 걷어올리고 있다. [사진 간송미술관]
8월에는 가을의 시작점으로 삼는 입추와 처서가 있어 비로소 무더위에서 벗어나 가을을 목전에 두는 것이 우리네 계절맞이의 오랜 순리였다. 그러나 지구온난화 영향인지 입추가 지났어도 여전히 덥다. 아직도 바다에서, 산에서, 계곡에서 피서 중인 사람이 많다. 선조들의 무더위 속 놀이문화와 이때 즐긴 음식들로 우리도 늦더위에 맞서보는 건 어떨까.

조선시대 때 전해지는 ‘환산별곡’은 벼슬길에서 물러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누리는 삶의 기쁨을 전하고 있다. 특히 후반부에 “인인(隣人) 친척들과 백주(白酒) 황계(黃鷄)로 냇노리 가자스라/ 잔고기 솟그치고 굴근 고기 회를 쳐서/ 와준(瓦樽)에 거른 술을 박잔(朴盞)에 가득 부어”라는 싯구가 있다. 이 곡을 ‘낙빈가(樂貧歌)’라고도 하는데 가난을 낙으로 삼아 살아가는 유유자적을 노래한 것이다. 돈이 없어 가난하더라도 더위에 지치면 이웃과 더불어 술과 안주를 준비하고 천렵을 가 그물로 많은 고기를 잡고, 이를 안주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종일 즐기다 저녁이 되어서야 취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

“와준에 거른 술을 박잔에 가득 붓는다” 했으니 아무래도 술은 막 거른 술인 막걸리일 것이다. “굴근(굵은) 물고기는 회를 쳐서” 준비하고, “잔고기 솟그치고”라고 했으니 작은 고기로는 부글부글 끓인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걸로 부족할까 싶어 미리 준비해 간 황계 즉, 누렇게 살찐 닭고기를 안주로 삼는다고 했다. 황계는 아무 양념 없이 푹 삶아 낸 백숙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시대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계곡 물놀이에서 최고 술은 막걸리이고, 최고 안주는 누렇게 살찐 닭(황계)과 갓 잡은 물고기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여름철 삼복더위 때면 마음 통하는 벗이나 이웃끼리 맑은 계곡이나 강에서 멱을 감으며 물고기를 잡았다. 은모래와 자갈이 고운 강어귀나 계곡에는 물고기가 지천이었다. 동사리, 퉁가리, 꺽지, 피라미, 송사리, 모래무지, 수수미꾸리, 버들치, 갈겨니, 붕어, 메기, 뱀장어 등. 고기 잡는 방법도 다양했다. 어레미와 반두(양쪽 끝에 가늘고 긴 막대로 손잡이를 만든 그물)로 도랑을 뒤졌고, 깊은 물에는 사발무지를 놓았다. 어떤 사람은 맨손으로도 돌 밑이나 풀숲 고기를 잡아 올렸다. 그렇게 잡은 고기로 솥을 걸고 생선탕을 끓여 먹었다. 이를 천렵이라고 했는데 목적은 물고기보다 힘겨운 일상을 달래며 정을 나누는 것이었다.

막걸리에 푹 삶아낸 백숙도 곁들여
접시에 담은 민물생선. [사진 온지음]
조선 후기의 빼어난 화원 김홍도는 삶의 풍경을 놓치지 않았는데 ‘시냇물은 깊고 물고기는 살찌네’라는 뜻을 가진 그림 ‘계심어비(溪深魚肥)’가 천렵 풍경을 잘 보여준다. 여러 명의 선비와 어부, 심부름하는 시종 등이 북적거리고 막 걷어 올린 그물에는 물고기가 가득하다. 한쪽에선 잡은 물고기로 회를 치고, 생선탕을 끓이고 있다. 술은 술통에 가득 담겨있다.

그림 오른쪽 위에 “개울에 성근 그물을 가로로 치니 개울물은 넓고 출렁거린다. 물고기로 하여금 뭍으로 나오게 하려는데 어부가 보면 응당 웃으리라”라는 제시가 보인다. 물고기를 많이 잡아 생선찌개를 끓여 맛있게 먹고 싶은 선비들의 천렵 풍경이 재미나게 읽힌다. 특히 이 천렵은 개성에서 꼭 행해야 했던 여름철 놀이문화였고, 이때 잡은 민물고기들로 큰 솥에 한가득 끓였던 음식은 ‘개성천렵’ 혹은 ‘천렵국’ ‘천렵탕’이라는 유명한 개성 음식으로 발전한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 민족은 바다를 사랑하고, 수산물을 즐겨 먹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해산물, 강과 계곡의 민물 생선, 김·미역 같은 해조류 등 수산물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이니 말할 나위가 없다. 수산물로는 해물밥, 해물죽, 국, 탕, 찌개, 조치, 지짐이, 전골, 찜과 조림, 회, 어선과 어채, 생선전, 볶기와 초, 튀김과 튀각, 식해와 젓갈까지 못 만드는 것이 없다. 가히 수산물 요리의 천국이다.

조기에 새우젓 넣는 조기조치 등 잊혀져
개성에서 특히 발전한 천렵국. [사진 온지음]
특히 생선을 막 잡아 끓여 먹었던 천렵국부터 생선찌개, 생선전골, 생선조치 그리고 생선감정 등 생선을 이용한 국물 요리도 다양하다. 전골은 찌개보다 건더기가 더 많은 형태를 일컫고, 조치는 찌개와 같으나 조칫보에 담아 상에 차려지는 음식으로 주로 왕실이나 반가에서 사용한 용어다. 생선감정은 민어감정, 병어감정, 게감정, 웅어감정 등이 대표적인데 된장·고추장 등을 넣고 푹 끓여 국물이 달여지도록 조리한 것이다. 주재료에 양념장을 넣고 맛이 배도록 오래 끓여낸다는 점에서 감정을 조림과 국의 중간 형태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조치나 감정이나 생선 맑은탕, 생선찌개라는 말은 이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아예 이 용어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섬세한 우리 음식 용어는 요즘 들어 매운탕이라는 말로 전국적으로 통일됐다. 매운탕이란 음식 이름은 1950년 이후 신문에 처음 등장한다. 1951년 12월 1일 전쟁 하에서 보건당국은 ‘고급요정 폐지 및 무허가 음식점 관리’를 공포하면서 관리 대상 요리 중에 매운탕을 포함시켰다.

사전적 의미로 매운탕(매운 湯)은 생선을 주재료로 고춧가루 또는 고추장을 첨가해 맵게 만든 찌개라고 하거나, 혹은 한국 요리로서 생선을 고추장·된장·간장·고춧가루 그리고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끓여낸 음식으로 맵고 자극적인 맛이 특징이며 주재료인 생선은 민물고기와 바닷고기 모두 사용된다고 정의한다.

특히 민물 매운탕의 대표 격인 쏘가리 매운탕은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973년 소양댐이 완공되면서 춘천 호반 근처에는 매운탕 전문점이 장사진을 쳤다. 남해와 서해로 흘러가는 전국의 강은 물론이고 저수지 근처에서도 여름철이 되면 매운탕을 끓여 파는 식당이 자리를 잡았다. 이 현상은 1970년대 건설 붐과 1980년대 전국적인 음식 유행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후 생선 국물 요리는 매운탕이라는 이름으로 초토화됐다.

그런데 정작 매운탕이라는 이름은 맵다는 의미 외에는 아무런 음식 정보도 담고 있지 못하다. 여름철 강가나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아 큰 솥을 걸고 끓여 먹던 천렵국이나 천렵탕은 물론이고, 조기에 새우젓을 넣어 맑게 끓인 조기조치나 고추장을 풀어 맛나게 끓인 민어감정이라는 음식 또한 잊히고 있다. 우리 음식 용어가 사라지는 것은 결국 우리 문화 다양성의 사라짐을 의미한다. 현재 세계 속 한식(K푸드)이 상한가를 치고 있지만, 전통 한식 요리는 오히려 다양성을 잃고 사라지고 있다. 이런 우리 한식의 실상을 보고 있자니 더 덥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이자 고려대 생활과학과 객원교수. 한국의 밥과 채소, 고기와 장, 전통주 문화에 관한 연구와 고조리서, 종가음식 등 다방면으로 음식연구를 해오고 있다. 현재 ‘온지음’ 맛공방 자문위원이기도 하며 『통일식당 개성밥상』 등 40여 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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