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함께라면 굉장하다!

2024. 8. 1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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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파리 올림픽이 한창이던 어느 날, 금융기관 광고 하나가 일간지 전면을 채웠다. 국가대표 수영선수들이 얼싸안고 함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느 한 얼굴이 두드러지지 않은 채 서로 어깨를 걸고 있는 사진으로 ‘함께’라는 광고 문구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이 문구와 겹쳐지며 2000년대 중반쯤 “내 아기는 특별하다”를 외치던 분유 광고가 떠올랐다. 황궁을 연상시키는 대저택에서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가 “세상을 다스릴 아이라면” 해당 업체의 분유를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맘 때 등장한 광고 중에는 ‘내 아이’ 또는 ‘나’만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광고가 참 많았다.

「 성공지상주의가 순위 경쟁 야기
특별한 재능없는 대다수는 패배감
함께 할 때 개인도 행복 느끼고
공동체 중시하는 사회 만들어야

꼬리를 물고 연상된 그 무렵 광고가 하나 더 있다. “Individually Great, Collectively Awesome!” 개인적으로도 훌륭하지만 함께라면 굉장하다! 미국에서 팔리던 시리얼 제품의 광고 문구였는데, 미국 체조 국가대표 선수들의 사진이 같이 있었다. 한국에서 나와 내 자식의 특별함을 끝없이 말하던 시절, 미국에서는 ‘공동체’ 그리고 ‘함께’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있었다. 개개인의 역량을 말하면서도 함께 할 때 더욱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메시지는 2024년 한국의 수영선수 광고 메시지와 거의 동일하다. 그 어느 나라보다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이지만 광고나 영화 등에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가족과 공동체를 강조한다.

광고가 당대의 사회적 의식을 반영한다고 했을 때, 이러한 미국의 광고 메시지는 약화된 공동체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한 미국 사회의 노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특히 1980년 레이건 집권 이후 승자독식과 성공지상주의 문화가 사회 전반에 팽배해지자, 광고는 ‘내’가 제일 소중하고 나의 성공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집단이나 사회보다는 개인의 성취와 자아실현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세대가 강조됐으며 ‘Me-generation(나 세대)’이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당시를 대표하는 문구가 바로 어느 화장품 광고의 “나는 소중하니까(미국에선 Because I’m worth it)”이다.

개인의 특별함과 성공을 중심에 두는 구조는 반드시 타인과의 비교, 그리고 순위 경쟁을 수반한다. 비교와 경쟁 없이 1등이 만들어질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모두가 1등이 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며, 개인의 성공과 행복만을 역설하는 사회일수록 구성원 대다수가 경험하는 소외감과 박탈감도 커지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국 사회는 다시 공동체와 ‘함께’의 가치를 말하기 시작했다. 시리얼 상자에 등장한 체조 선수들의 사진은 이러한 노력의 한 사례였다.

우리 사회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한국 광고에 투영된 가치관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부터 개인주의를 내세운 광고가 집단주의를 반영한 경우를 넘어서더니 2000년대 초반에 정점을 찍었다고 한다. 권위주의와 봉건주의의 폐해가 여전히 남아있는 한국에서 개인주의적 가치관은 진보적 신념으로써 기능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주의의 겉모습을 한 성공지상주의 속에는 나와 타인을 구분해 줄 세우려는 경쟁과 차별의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세상을 다스릴” 특별함을 갖지 못한 대다수는 열패감을 경험해야만 했다. 사회에 만연한 분노와 불안, 소외감, 높은 자살률, 묻지마 범죄의 증가, 도덕 불감증, 혐오와 차별의식의 심화는 성공지상주의 사회가 필연적으로 겪는 부작용일 것이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함께’ 할 때 개인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공동체를 힘주어 말하는 광고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가 느껴진다. MZ세대로 불리는 20~30대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젊은 층에서 독서나 달리기 같은 취미 생활을 함께 하는 대면 모임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한국의 20대는 태어나면서부터 성공지상주의 메시지와 사회적 압박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성장해 온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속에도 함께 하는 즐거움은 본능처럼 피어났을 것이다. 어깨를 걸고 밝게 웃는 국가대표 수영 선수들처럼. 더욱 많이 웃을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내자고 격려하는 메시지를 더 자주 봤으면 좋겠다. 결승점에 먼저 도달하기 위해 타인을 밀어내라는 말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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