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이름 ‘동유럽’…다원·개방성이 유산
제이콥 미카노프스키 지음
허승철 옮김
책과함께
동유럽이란 용어는 1990년대 공산주의의 붉은 별이 떨어지면서 사문화되고 있다. 미국의 기자·비평가인 지은이는 통합된 지리적 공간으로서 동유럽은 의미를 상실하고 국가별·지역별로 개별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등은 독일처럼 중유럽,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는 북유럽·노르딕 국가로 각각 불러주길 원한다.
이런 기피 현상은 냉전시기 ‘동유럽’이라고 하면 흔히 가난·전쟁·학살·폭력·민족갈등을 떠올렸던 고정관념과 무관하지 않다. 중세 이후 오스만튀르크, 합스부르크 제국, 러시아 제국 등의 각축장이 된 데다 20세기 들어서는 잔혹한 파시즘, 공포의 스탈린주의, 물자부족의 사회주의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란드 유대인 집안 출신으로 이 지역 역사를 전공한 지은이는 동유럽은 독특한 역사적·문화적 경험 때문에 다양성·포용성이라는 유산을 공유한 공동체였다고 강조한다. 종교를 보면 동유럽은 유럽에서 가장 늦은 기원 1000년쯤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래로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도가 공존했다. 오스만튀르크의 세력 확대로 이슬람이 들어왔고, 서유럽 일부의 박해로 상당수 유대인이 비교적 관대한 동유럽에 정착했다. 서구에선 이단이나 소수파로 박해받았던 다양한 종교·종파·믿음·신념이 이 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여기에 개방성을 바탕으로 활발한 내부 이동을 이루면서 다종교·다종파·다민족·다언어의 다원화 사회로 이어졌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특히 중세와 근대 사이 동유럽 사회는 직업·신분에 따른 위계질서로 구성되고, 언어·종교로 서로 분리돼 마치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여러 층이 겹겹이 쌓인 형태였다. 예로 16세기 헝가리는 오스만튀르크 제국과 합스부르크 가문, 그리고 트란실바니아 공국이 분리 통치했다.
또 현재 루마니아 서부인 트란실바니아는 마자르어를 쓰는 헝가리인과 헝가리계 소수집단인 세클러인(세케이인), 12세기 이후 독일에서 이주한 색슨인(작센인), 그리고 루마니아인으로 구성됐다. 마자르어 사용자는 가톨릭 신자인 귀족·군인과 칼뱅교도 지주로 이뤄졌다. 독일어를 쓰는 루터교도 농민·상인은 도시를 지배했다. 인구 대부분은 동방정교신자인 루마니아인이었다. 세 개의 언어, 네 개의 민족, 네 개의 교회에 더해 그리스와 아르메니아인 상인도 이주해 함께 살고 있었다. 배타성의 서구사회와 사뭇 다른 동유럽 특유의 사회·문화·역사의 단면이다. 1967년 앤서니 퀸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콘스탄틴 게오르기우의 소설 『25시』의 배경이 이곳이다.
주변 강대국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비극을 겪었던 동유럽은 이제 과거사를 딛고 지역 유산인 다양성·개방성·다원주의가 빛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원제 Goodbye, Eastern Europe: An Intimate History of a Divided Land.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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