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답안·사교육 조선 시대도 유행

김한별 2024. 8. 1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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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이한 지음
위즈덤하우스

“때가 오면 출세하여 임금 보좌하고.” 다산 정약용이 큰아들에게 지어준 시의 한 토막이다. 풀어쓰면 “어서 과거에 급제해서 대신이 되어야지” 정도? 큰아들이 불과 생후 백일 때였다.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 실학자가 알묘(揠苗, 조급한 부모)가 될 만큼 당시 과거는 중요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혈연·정실을 떠나 엘리트 관료를 뽑는 창구이자, 개인이 입신양명할 수 있는 통로였다. 오늘날 각종 입시·고시 제도, 그에 기반한 능력주의의 뿌리를 과거에서 찾을 정도다.

문제는 온 나라가 과거에 매달리다 보니 온갖 편법·병폐가 난무한 것. 경전보다 요약서인 초집(抄集), 모범답안집인 대책(對策)이 인기였다. 사교육 기관인 학당과 입주 과외 선생인 숙사(塾士)가 유행했고, 대리시험을 봐주는 거벽(巨擘)과 반입 금지된 책을 날라주는 협서(挾書)가 설쳤다. 세도정치 시절엔 같은 당파 사람들끼리 급제자를 조작하는 ‘조직적 부정’이 횡행했다.

저자는 이런 시험지옥의 ‘유구한 전통’을 보여준 뒤 오늘날 학부모·학생들에게 말한다. 그래도 될 사람은 되고 안 될 사람은 안 됐다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니 “욕심부리지 말고 착하게만 살자”고. 2025학년도 수능이 89일 남았다.

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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