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군불'마저 끊겨…서울 마지막 연탄공장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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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연탄
서울의 마지막 연탄공장이 문을 닫는다. ‘삼천리연탄’으로 잘 알려진 ‘삼천리이앤이’가 지난달 25일을 끝으로 연탄 생산을 전면 중단하면서다. 1968년 1월 1일 서울 이문동에 공장을 세우고 첫 가동을 시작한 지 56년 만이다. 그동안 서울은 물론 가평·양평·하남 등 경기 남부 지역과 강원도 춘천 지역까지 연탄을 공급해 온 삼천리 연탄공장이 반세기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연탄 시대’의 시작은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산림녹화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나무 땔감 사용을 금지했고, 그 대안으로 연탄 사업을 장려하기 위해 ‘석관·이문 연탄 단지’를 조성했다. 10만 평에 달하는 중랑천변 제방을 따라 삼천리를 비롯해 동원·삼표·칠표 등 7개의 공장이 줄지어 들어섰다.
그중에서도 삼천리는 1980년대까지 60여 명의 직원이 하루 200만 장의 연탄을 생산하는 등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도시가스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서울시내 연탄공장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어 2020년엔 60년 역사를 자랑하던 서울 금천구의 고명산업 연탄공장마저 폐업하면서 삼천리연탄은 서울시내의 유일한 연탄공장으로 남게 됐다. 지난해 겨울까지만 해도 하루 20만 장의 연탄을 구워내던 삼천리이앤이에서 갑작스럽게 폐업 소식이 들려온 건 연탄불처럼 뜨거운 계절의 한가운데서였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삼천리 연탄공장에서 한 직원이 공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서울시내의 마지막 연탄공장이었던 이곳은 지난달 25일을 끝으로 가동을 멈췄다. [중앙포토],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8/17/joongangsunday/20240817000134044foot.jpg)
조금 더 가니 중랑천변 옆 대단지 아파트 사이로 길쭉한 형태의 철제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공장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분진을 막기 위해 설치한 파란 지붕이 폭염에 속절없이 노출돼 있었다. 공장 내부로 들어서니 길게 이어진 ‘쌍탄기’ 10대가 보였다. 쌍탄기는 연탄이 한 번에 두 장씩 찍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1분에 30회전으로 60장의 연탄을 찍어내 1시간이면 3600장의 연탄을 만들 수 있다. 10대의 설비가 동시에 돌아가면 1시간에 3만6000장이나 찍을 수 있는 규모지만 이젠 어두컴컴한 실내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최대 7000t의 석탄을 산처럼 쌓아뒀던 저탄장도 검은 흔적만 남긴 채 텅 비어 있었다. 7000t은 삼천리 공장의 주력 상품이자 민수용 연탄의 표준인 ‘22공탄’을 2만5000장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호황일 때는 하루 200만 장을 너끈히 생산해 최대로 쌓아 올려도 보름이 채 되지 않아 원탄이 동날 정도였다.
![2003년 10월 서울 이문동 삼천리 연탄공장에서 직원들이 차에 연탄을 싣고 있다. [중앙포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8/17/joongangsunday/20240817000135502laqp.jpg)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1960년대 전국에 400곳에 달했던 연탄공장은 올해 1월엔 20곳으로 줄었다. 이어 지난 4월 광주·전남의 유일한 공장이었던 남선연탄이 폐업했고 삼천리이앤이마저 폐업 절차를 밟으면서 이제 국내 연탄공장은 18개만 남게 됐다.
삼천리 공장도 그동안 몇 번이나 고사 위기가 있었다.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기름보일러와 도시가스가 보편화하면서 ‘국민 연료’로 애용되던 연탄의 소비량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고 도심의 연탄공장도 변두리도 밀려나거나 하나둘 문을 닫게 됐다. 연탄사업을 주력으로 삼던 삼천리 그룹도 위기에 처하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2002년 1월 연탄 사업을 접기로 했고, 이에 공장에서 오래 근무했던 직원 20여 명이 “우리가 연탄공장을 맡겠다”며 사업을 승계한 뒤 삼천리이앤이를 설립했다.
전국 연탄 사용 가구 7만, 공장 18개뿐
하지만 연탄을 찾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만 갔다. 설상가상 친환경 에너지 정책의 일환으로 연탄공장에 지급됐던 연탄 제조 보조금마저 2020년 중단되면서 위기는 가속화됐다. 인건비와 배달비가 크게 오르면서 현재 연탄 한 장의 소매가격이 1000원을 웃도는 반면 공장도가격은 2018년부터 7년째 639원으로 동결돼 있는 것도 연탄업계의 숨통을 조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더해 지역주민들 사이에선 소음과 먼지 등을 이유로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이문차량기지 복합 개발’이 추진되면서 기지 인근에 자리 잡은 연탄공장 이전 요구는 더욱 커져만 갔다. 결국 지난 5월 삼천리이앤이는 동대문구청에 연탄공장 부지를 팔기로 결정하고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동대문구청 측은 “공장 부지는 연내 철거할 예정”이라며 “공공 활용 방안 등을 마련해 새롭게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전무는 “한때는 경기 지역으로 이전도 고려했지만 후보지에서도 연탄공장이 오는 걸 꺼리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며 “현재 남아 있는 직원 23명도 모두 70대여서 이젠 정말 중단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온 국민이 겨울을 춥지 않게 나는 데 일조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해 왔는데 애물단지 취급받으며 물러나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소득층에 연탄을 후원하는 ‘연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연탄 사용 가구는 7만4167가구로 서울·대구·충북 등 일부 지역에선 오히려 사용 가구가 늘었다. 이제 삼천리 공장이 사라지면 서울의 저소득층에 지원할 연탄은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남은 동두천 연탄공장에서 사와야 한다.
김현억 서울연탄은행 부장은 “고유가·고물가 추세 속에서 유류비와 가스비 인상을 감당하기 힘든 노인 등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연탄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며 “연탄공장이 사라지는 건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이라지만 어쩔 수 없이 연탄을 땔 수밖에 없는 에너지 취약 계층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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