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67] 확신의 함정

백영옥 소설가 2024. 8. 1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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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심 탈레브의 책 ‘블랙 스완’에는 칠면조 우화가 나온다. 아침이면 먹이를 받아먹는 칠면조가 있었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는 일상이었다. 아침에 모이를 준다는 칠면조의 생각은 점차 확신으로 변했다. 그렇게 농장에서 1000일을 보낸 칠면조에게 1001일 되던 추수감사절 전날이 찾아왔다. 그날 농장주의 손에는 모이가 없었다. 대신 그는 칠면조의 모가지를 움켜잡았다. 칠면조의 운명을 결정한 건 평온했던 1000일이 아니라, 1001일이 되던 그 하루였다.

문학 포럼에서 음식이 상하기 가장 좋은 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습하고 더운 장소를 떠올리는데 시인의 입에서 냉장고라는 답이 바로 나왔다. 생각해 보니 내가 상한 음식을 가장 많이 꺼낸 곳이 냉장고라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시인의 진짜 질문은 다음이었다. 왜 냉장고가 답이겠냐는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냉장고 안에선 음식이 썩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냉장고 안이 안전할 거란 확신, 그것이 냉장고가 음식이 상하기 가장 쉬운 장소인 이유다.

1988년 옐로스톤의 궤멸적 화재는 확고한 기존 산불 방지 정책이 원인이었다. 번개에 의한 자연 발생적 산불까지 모두 진압한 탓에 산에 타기 쉬운 마른나무와 덤불이 너무 누적돼 오히려 불쏘시개가 된 것이다. 불은 무조건 꺼야 할까. 산에서 불길이 닥쳐 올 때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맞불을 놓으면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는 역설은 뭘 의미할까.

‘심보르스카’는 노벨문학상 수락 연설문 ‘시인과 세계’에서 중요한 건 “나는 모르겠어!”라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재자, 광신자, 정치가의 특징이 당신이 모르는 걸 “나는 알고 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며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 하나만으로 영원히 만족”한다고 지적한다. 확신은 정치인과 선동가의 언어지 지성인의 언어가 아니다. 확신은 쉽게 부패한다. 우리가 기존 신념을 깨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끝없이 의심하고 실험하는 과학자와 시인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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