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49] 공항의 틈새 디자인
휴가철이면 공항은 여행객들로 붐빈다. 해외로 나가는 기분에 들뜨고 흥분되지만 실제로 비행기에 앉아 있는 시간 자체는 그다지 편안하지 않다. 비행기 여행에 대해서는 쓰는 작가도 별로 없다. 유튜브에서도 승객 간의 다툼, 또는 비즈니스석에 탄 걸 자랑하는 영상 정도다. 기차 여행에 관련해서 많은 에세이와 소설, 시가 창작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아마도 좁은 좌석과 제한된 공간, 그리고 단조로운 창밖 풍경이 연속되는 긴 시간 때문일 것이다.
탑승 전에 그나마 신체가 자유로운 곳이 공항이다. 오래전부터 선진 공항들은 동선과 길 찾기(wayfinding) 기능과 더불어 대기나 환승 시간,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발생하는 예측불가의 잉여 시간을 좀 더 효율적이고 쾌적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도입하고 있다. 레스토랑이나 면세점과 같은 뻔한 장소들 이외에 마사지나 샤워 공간, 갤러리, 어린이 놀이 시설 등이 사례들이다.
공항에서는 걸어 다니는 시간도 꽤 길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 내부의 긴 통로 디자인은 이미 고전이 되었을 만큼 유명하다. 탑승구로 향하는 이동이 덜 지겹도록 건축과 조명, 음악이 일치된 초지평적인 우주의 느낌을 제공하는 예술 작품을 설치했다. 뉴욕 JFK 공항의 이민국으로 향하는 통로에는 딜러 스코피디오(Diller Scofidio)가 디자인한 ‘여행 가방’이라는 홀로그램 작품이 걸려 있어 지겨움을 덜어준다. 이 모두 틈새 시간을 위한 공공 디자인이다.
이런 하이테크보다도 개인적으로는 아날로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항들을 더 좋아한다. 영국의 버진(Virgin) 항공사 카운터에는 꽃이 담긴 화병이 올려져 있다. 누구나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체크인 시간을 위한 미적 배려다. 미국의 데이턴(Dayton) 공항에는 탑승을 기다리는 승객을 위해서 게이트 앞에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스탠드가 있다. 코펜하겐의 공항에는 짐을 찾는 동안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도시의 상징인 ‘코펜하겐 벤치’가 놓여 있다. 모두 따듯하고 감성적인 위안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들이다. 이 짧은 순간을 위한 배려와 서비스가 다른 공항과의 차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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