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경찰·韓총영사관이 긴장했던 한국계 고교의 고시엔 첫 경기
교토국제고, 한국어 교가 부르며 처음 고시엔 진출하자 일본 우익 불만
선수들 안전 우려해 사복경찰 배치하고 다른 출입구로 운동장 입장
올해도 8강 진출… ‘동해바다~’ 한국어 교가 NHK 통해 日 전역에
고시엔(甲子園) 고교 야구는 일본인 1억 2300만 명을 신도로 거느린 거대한 종교 같습니다. 매년 일본 열도 전체를 들썩거리게 하는 초대형 행사입니다. 요미우리신문이 2020년 10대 국내 뉴스 중 하나로 ‘코로나로 인한 고시엔 중단’을 꼽은 것은 이 대회의 무게감을 보여줍니다
고시엔 야구는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西宮)시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는 고교 야구대회의 통칭입니다. 마이니치신문이 주최해 3월 열리는 ‘봄 고시엔’은 선발고교야구대회, 아사히신문이 주관하는 8월 ‘여름 고시엔’은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로 불립니다. 1915년 시작돼 올해로 106회를 맞은 여름 고시엔에는 일본의 3957개 고교 중에서 지역 예선을 거쳐 49개 학교가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일본의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2년 만에 다시 출전한 올해 여름 고시엔에서 3연승을 거두고 8강전에 진출했습니다. 교토국제고는 8일 삿포로 일본대학고등학교에 7-3, 14일 니가타산업대부속고등학교에 4-0, 17일 니시닛폰단기대학부속고에 4대0으로 승리했습니다. 1963년 고교 과정이 만들어진 후, 전교생이 150명에 불과한 교토국제고는 2021년 처음으로 ‘봄 고시엔’ 본선에 오른 뒤, 여름 고시엔에서 4강까지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는데 올해는 어떤 활약을 보여줄 지 기대됩니다.
◇ 출전 고교 교가 연주, NHK가 전 경기 생중계하는 고시엔
고시엔 야구는 출전 학교 교가 연주, 모든 경기 NHK 생중계의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2021년 교가가 한국어인 교토국제고가 처음으로 고시엔에 출전했을 때 일본 우익의 테러 가능성 때문에 당시 학교 고위 관계자들, 재외 공관, 일본 경찰이 긴장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는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합니다. 4절에는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의 자손”이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한국인의 기개가 느껴지는 가사입니다.
2021년 3월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에 처음 출전한 교토국제고가 연장 접전 끝에 시바타고(미야기현)에 5대4로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선수 전원이 일본 국적인 교토국제고는 이날 6회까지 2대0으로 끌려갔습니다. 7회 초 만루 기회에서 3득점,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시바타고가 1점을 만회해 연장전에 돌입했으나 10회 2점을 얻어 5대4로 승리했습니다. 약 4000개의 고교 야구부 중에서 고시엔 본선에 진출한 것도 경이적인데, 첫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습니다.
고시엔 전통에 따라 상대 팀이 부동자세로 경의를 표하는 가운데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앞서 1회 말 공격이 끝난 후, 모든 출전 학교 교가를 소개하는 전통에 따라 이 학교 교가가 처음으로 고시엔 구장에서 불려졌습니다. 두 차례 모두 NHK를 통해 일본 전국에 생방송됐습니다.
삼루 측에 위치한 약 1500명의 교토국제고 응원단 모두 감격한 표정이었습니다. 재일교포 사회는 1947년 교토조선중학으로 시작한 교토 국제고의 고시엔 진출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재일교포들은 전세 버스 20여 대에 나눠 타고 고시엔 구장에 집결했습니다. 오사카의 같은 한국계 학교인 건국, 금강학교도 학생들을 보내 응원했습니다. 왕청일 전 교토국제고 이사장은 “한국어 교가가 방송될 때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고 했습니다. 한국 대학 입학을 목표로 공부 중이라는 3학년 구로가와 아스카는 “고시엔 구장에서 교가를 듣게 돼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며 활짝 웃었습니다.
◇ 일본 우익 반감에 선수 안전 보호 요청
일반 관람객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날 경기는 일본 경찰과 주일(駐日) 한국 공관이 긴장한 가운데 펼쳐졌습니다. 한국계 학교가 고시엔에 진출한 데 대해 일부 일본 우익은 반감을 보였습니다. 특히’동해’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가 전국에 생방송되는 걸 문제 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교토국제고는 일본 경찰에 학생과 선수 보호를 요청했고, 오사카총영사관과 고베총영사관도 경찰에 신경 써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학교 선수들도 ‘만약의 사태’를 우려, 기존과 다른 출입구를 통해 야구장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당시 저는 고시엔에 첫 출전한 교토국제고 사연이 기사화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 사전에 교토에 내려가 현장 취재하다가 이런 내용을 알게 됐습니다. 첫 경기 당일 교토역에서 교토국제고 응원단과 함께 고시엔 구장으로 이동, 3루 응원단석에서 취재하면서 혹시 우려했던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지 염려했습니다. 다행히 관계자들이 걱정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약간 문제가 됐던 것은 NHK가 교토국제고 교가를 방송하면서 ‘동해’를 ‘동쪽의 바다’로 번역한 일본어 교가 자막을 내보낸 겁니다. 하단엔 “일본어 번역은 학교가 제출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경수 교장은 “우리는 교가 음원(音源)을 제공했을 뿐, 그런 일본어 자막을 보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앞서 교도통신은 마이니치신문과 함께 대회를 주최하는 일본고교연맹이 ‘동해’를 ‘동쪽의 바다’로 번역한 일본어 자막을 만들어 NHK에 제공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일본의 한 중견 언론인은 “학교가 그런 자막을 보낸 적이 없는데 NHK가 왜곡 방송을 했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학교의 김안일 야구부 후원회장은 “일본에는 다른 외국계 학교도 많아 영어 등으로 된 교가도 부른다”며 “70년 넘게 불러온 교가를 문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습니다.
◇ 한일 양국 정부가 지원하는 교토국제고…야구장은 외야까지 60m 에 불과
제가 2021년 3월 16일 고시엔 경기에 앞서 방문한 교토 국제고는 3층짜리 교사(校舍) 1개에 불과했습니다. 야구부 선수들이 훈련하는 운동장을 보니 최대 거리가 60m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박경수 교장은 “다른 학교와는 달리 운동장이 작아 외야 연습은 다른 구장을 빌려서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학교에 야구부가 생긴 건 학교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었습니다. 애초 재일교포들이 세운 이 학교는 1990년대 후반 심각한 운영난으로 학생 수가 70명으로 줄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때 야구를 특화해 학교를 살리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 학교는 당시 운영난을 계기로 사실상 ‘한일 연합학교’로 전환했습니다. 2004년부터 일본 문부성 지원을 받으며 일본 학생들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한국(10억원)과 일본(15억원)의 교육 당국에서 약 25억원을 지원받습니다.
1999년 야구부가 만들어진 후 처음 출전한 경기에서는 0-34로 5회 콜드게임 패를 당했습니다. 첫 승을 거둔 건 야구부 창단 2년 만인 2001년이었습니다.
교토국제고는 그동안 피나는 노력을 거쳐 2021년 지역 예선에서 연속 8승을 거둬 고시엔에 진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일본 국적 학생이 한국계 학생보다 많은데 박 교장은 “일본 남학생들은 야구가 하고 싶어서, 여학생들은 K팝이 좋아서 오는 학생이 대부분”이라고 했습니다.
교토 국제고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중심으로 가르치는데 가장 비중이 큰 것은 한국 관련 교육입니다. 수학여행, 개별 체험 연수를 통해 매년 한국에 4~5회 학생들을 보내 교육하고 있습니다. 조선통신사 관련 역사를 비롯,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 양국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사장을 역임한 이우경 교토 민단 고문은 “학교의 성격을 바꿔 일본인 학생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학교를 팔아먹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며 “우리 학교 졸업생과 학생들이 한일관계를 밝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은 올바른 결정이었다”고했습니다.
P.S.
◇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는 것이 내 신념” 박경수 당시 교토 국제교 교장
2021년 3월 교토국제고가 고시엔에 첫 진출, 1승을 거둔 것을 취재하고 도쿄로 돌아오는 신칸센 기차에서 편집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교토국제고 박경수 교장을 인터뷰, 그 다음주 월요일자에 크게 쓰라는 지시였습니다. 즉각 박 교장과 통화, 인터뷰 약속을 잡은 후 도쿄로 돌아왔다가 다시 교토로 내려갔습니다. 박 교장이 야구 배트 든 모습을 사진 찍어가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박 교장은 최근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는데 당시 인터뷰 중에서 최근 광복회 사태 관련, 시사하는 바가 있어서 일부 내용을 발췌해 게재합니다.
- 일본 고교야구 팀 4,000개 중에서 32팀만이 진출하는 고시엔 출전이 확정됐을 때 학교 안팎 반응은.
“난리가 났다. 학교 이사회 어르신들이 놀라 자빠지셨다. 일본전역의 교포들로부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화를 받았다. 90대고령의 한 교포는 굳이 학교를 찾아와서 20만엔을 기부하고 갔다.한국야구위원회(KBO)의 정지택 총재, 국회 교육위의 유기홍 위원장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왔다.”
- 고시엔 진출을 예상했었나.
“내가 기독교인이다. 잠을 깨면 매일 아침 선수 40명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했다. 심판에게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우리 아이들은 실수 없이 눈 감지 말고 배트를 휘두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1승은 거둘 것으로 생각했다.”
- 고시엔의 전통대로 경기 중에 한 차례, 승리 후 또다시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진 것이 한국에도 큰 화제였다.
“70~80대 재일교포들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 한국어 교가가NHK를 통해 방송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 아닌가.”
- 고시엔 구장 응원석에서 걸음걸이도 힘든 고령의 재일교포들을 많이 봤다.
“우리 학교의 고시엔 진출은 교민 사회가 하나로 되는 계기를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서로 입장이 달라도 하나로 뭉쳐서 많은 후원을 해줬다. 교포 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자리가 된 것 같아 기쁘다.”
- 학생들이 한국어 교가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
“국제 학교로 성격을 바꾼 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학생들에게 조사를 한 적도 있다. 그랬더니 학생들 대다수가 반대했다. ‘한국이 좋아서 들어왔는데 왜 한국어 교가를 바꾸느냐’고 했다. 아이들이 너무 예뻐 보였다.”
- 일본 국적의 학생이 60%가 넘는다. 한일 학생이 서로 모여서 공부하는데 갈등은 없나.
“(고개를 흔들며) 우리 학교에 오면 금방 친구가 된다. 국적을따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말이 잘 안 통해서 번역 프로그램을 통해서 말하다가 금방 친구가 된다. 한일의 청소년들은 무조건 자주 만나게 해야 한다.”
- 학교의 성격을 바꿔서 일본 학생을 받을 때 반대가 많지 않았나.
“학교를 일본에 팔았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죽어가는 학교를살린 것이다.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조건을 맞추기 위해 땅을 더사들여 테니스장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 학교만 고집했으면 벌써 문 닫았다.”
- 당시의 판단을 지금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가 일본 학생 받아도 한국계 학교다. 외국에 숱한 한국학교가 있다. 그런데 왜 꼭 한국 정부만 해외의 한국 학교를 책임져야 하나. 외국 정부도 지원해서 공생(共生) 사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한국어 교육은 얼마나 시키나.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에서 한국어 시간이 제일 많다. 내가직접 편집한 조선통신사 책으로 교육시키고, 4~5회 한국을 방문시키고 있다. 학생들에게 한국인의 근성을 갖게 하는 것도 교육 목표다.”
- 일본에서 한국계 학교를 운영하면서 느낀 한일 관계는.
“외할아버지가 일제 식민지 시절 홋카이도 탄광에서 28세 때 돌아가셨다. 그 후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겠나. 어렸을때 어머니가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것을 많이 봐 왔다. 일본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더 할 말이 많지 않겠나. 그러나 이제는 양국이 함께 가야 한다. 우리나라 일부에서 자꾸 과거 역사를 들춰서는 곤란하다.”
- 용서하고 가야 한다는 것인가.
“과거에 일본이 잘못한 문제는 과거대로 끝내고 앞만 바라봐야 한다. 과거 · 현재 · 미래의 한일 관계에서 이제는 미래만 생각해서 가야 한다.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는 게 내 신념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