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의 머릿속을 채운 상상들, 현실이 돼 전시장으로 나오다

황희경 2024. 8. 1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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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현실과 상상 경계 뛰어넘는 작업들
서도호 작가의 '공인들'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서도호 작가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에 '공인들' 1/6 축소 작품이 전시돼 있다. 전시는 다음날부터 11월 3일까지 열린다. 2024.8.16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서도호(62) 작가는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이다. 2001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한 그는 미국 LA카운티미술관(LACMA),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박물관, 휘트니미술관, 일본 모리미술관 등 세계 곳곳의 유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내년에는 영국의 대표적인 미술관인 테이트모던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서도호는 미국 유학 시절 서로 다른 문화와 공간이 충돌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집과 기억, 이동 등을 키워드로 작업해 왔다. 유학 시절 살던 아파트에 서울의 한옥집이 날아와 충돌한 모습을 재현한 작업, 천을 이용해 실제 집 크기로 내부의 전기 콘센트 모양까지 정교하게 재현한 작업 등이 대표작이다.

세계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지만, 국내에서는 개인전이 뜸했던 작가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17일부터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아트선재센터는 2003년 작가가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던 곳으로, 21년 만에 다시 같은 곳에서 개인전을 여는 셈이다.

질문에 답하는 서도호 작가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서도호 작가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시는 다음날부터 11월 3일까지 열린다. 2024.8.16 scape@yna.co.kr

전시 제목 '스페큘레이션스'(Speculations)은 서도호의 작업 방식을 함축하는 동시에 이번 전시의 성격을 아우르는 단어다. 사변, 추론, 사색 등을 뜻하는 '스페큘레이션'에 대해 16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만약에'(What if)라고 설정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진행되는 작업 과정을 '스페큘레이션'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라면서 "내 작업 대부분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서도호 하면 떠오르는 천 작업은 없다. 작가는 "천 작업이 나를 대표하는 작품처럼 됐지만 천 작업은 빙산의 일각"이라면서 "이번 전시에 나온 '스페큘레이션' 작업들이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도호 작가[아트선재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작가는 "천 작업 역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다면' 하는 전제로 시작해 작업이 전개됐다"면서 "'만약에'라는 전제로 상상의 날개를 펴다 현실에서는 만들 수 없는 작품들까지도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도호는 1991년부터 이렇게 상상한 것들을 스케치북에 그림으로 그렸다. 일기 쓰듯이, 또 생각나는 대로 그리고 기록한 내용들이 쌓였고 2003∼2004년께부터는 스케치북에 담아뒀던 아이디어를 하나둘씩 시각화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스페큘레이션'으로, 처음에는 15개 정도로 시작했지만, 작업이 쌓이면서 이번 전시가 성사됐다.

서도호 작가의 '틈새 호텔'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서도호 작가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이 '틈새 호텔' 작품 모형을 촬영하고 있다. 전시는 다음날부터 11월 3일까지 열린다. 2024.8.16 scape@yna.co.kr

전시는 건축 전시의 형식을 빌려왔다. 실제 건축물을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대신 축소한 모형과 도면, 드로잉으로 보여주는 건축 전시처럼 이번 전시도 작은 모형이나 드로잉, 애니메이션으로 작가의 상상을 구현해 보여준다.

1층 전시장의 주제는 '다리 프로젝트'다. 뉴욕에 거주하던 시절 작가는 서울과 뉴욕의 가운데 지점인 태평양 한가운데 '완벽한 집'을 꿈꿨다. 바다 한가운데 집을 짓기 위해 작가는 건축가, 생물학자, 물리학자 등과 협업해 조류와 바람을 견딜 수 있는 집을 상상했고 그 결과물은 수백장의 드로잉으로 남아 전시에 소개된다. 런던으로 이주한 후에는 서울과 뉴욕, 런던을 등거리로 연결한 지점이 '완벽한 집'의 위치가 됐다. 이 지점은 북극해 인근 지역. 작가는 일주일간 북극해의 극한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는 구명복을 상상했다. 전기 공급을 위한 태양광 패널, 조난에 대비하기 위한 신호기 등을 갖춘 구명복의 초기 버전을 전시에서 선보인다.

서도호 작가의 '비밀의 정원'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서도호 작가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이 '비밀의 정원'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 전시는 다음날부터 11월 3일까지 열린다. 2024.8.16 scape@yna.co.kr

2층 전시장은 집을 키워드로 다양한 상상력을 담은 작품들로 채워졌다. '비밀의 정원'은 작가가 살았던 한옥과 정원을 16분의 1 크기로 정교하게 제작하고 이를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6t 트럭 모형의 화물칸에 실은 작품이다.

실제 구현됐던 작품들도 모형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2012년 광주비엔날레 때 실제 운영됐던 극소형 이동식 호텔 '틈새호텔'은 6분의 1로 축소해 만든 모형과 애니메이션으로 소개된다. '별똥별'은 '한 문화의 건축물이 날아가 다른 문화의 건축물에 박힌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대(UC) 샌디에이고의 7층 건물 꼭대기에 미국의 작은 오두막이 착륙한 듯한 모습으로 구현됐던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32분의 1 크기 모형으로 볼 수 있다. 2010년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 때 리버풀의 실제 두 건물 사이 어린 시절 집을 축소한 모형을 끼워뒀던 작품도 모형으로 재현됐다.

북극에서 생존가능한 구명복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서도호 작가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에 전시된 '완벽한 집 S.O.S' 2024.8.16. zitrone@yna.co.kr

오랫동안 상상만 해왔던 작업이 기술의 발달로 실제 구현되기도 했다. 서도호의 대표작 '공인들'(1988)은 기념비 좌대를 300여명의 작은 사람이 떠받치고 있는 형태로, 기념비의 인물을 좌대 위가 아닌 아래로 끌어내리고 한 명의 영웅이 아닌 익명의 다수로 표현한 작업이다. 올해 워싱턴 D.C. 국립아시아미술관 앞에 설치돼 주목받기도 한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는 6분의 1 크기에 작가가 처음 구상했던 움직이는 조각(키네틱 아트) 형태로 첫선을 보인다. 작가는 "처음 시작할 때는 전혀 이뤄질 수 없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는데 시각화하고 만들어놓으니 실제로 이뤄질 기회들이 왔다"면서 "최초에 구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스페큘레이션' 안에 있었던 것이 나중에 현실화된 작품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공인들' 세부 모습[아트선재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3층 전시장에서는 영상 작품 2편이 순차 상영된다. 재개발로 철거 예정인 대구의 동인시영아파트와 역시 영국 런던의 철거 직전 상황에 있는 주거단지 모습을 담은 작업이다. 탁본을 뜨듯이 사라지는 공동주택단지의 내부 모습을 카메라로 느리게 기록해 재현한다.

전시는 11월3일까지. 유료 관람.

서도호 작가의 '별똥별'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서도호 작가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스'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이 '별똥별' 작품 모형을 촬영하고 있다. 전시는 다음날부터 11월 3일까지 열린다. 2024.8.16 scape@yna.co.kr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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