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수신료 거부 운동 유도하고 싶은 건가" KBS 직원들 성토

노지민 기자 2024. 8. 1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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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기점으로 역사 왜곡 논란의 한복판에 선 KBS, 직원들 성토
"KBS 역사의 죄인 된다" "사장 포함 경영진 쫓아내야"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광복절을 기점으로 역사 왜곡 논란의 한복판에 선 KBS에서 직원들의 성토가 이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내부 우려에도 광복절 KBS 1TV에서 독재 미화 논란의 다큐가 방영됐고, 이튿날 박민 사장 등 KBS 경영진을 비판하는 출근길 시위도 벌어졌다.

KBS가 광복절 0시부터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기미가요가 등장하는 공연(오페라 '나비부인')을 틀고 뒤집힌 태극기 이미지를 내보냈다는 비판이 속출하던 15일, KBS 사내 게시판에는 심야 시간대 방영 예정인 '기적의 시작'을 내보내선 안 된다는 요구가 잇따랐다. 이 영화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루면서 그에 대한 친일·독재 논란 등 과오 평가 없이 미화나 칭송에 치우쳤다고 비판 받고 있다.

한 직원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멈출 수 있는 시간이 서너시간 정도 있어 지푸라기 잡는 마음으로 쓴다. 오늘이 지나면 KBS는 역사의 죄인이 된다”며 “360개 시민단체가 반대 연명을 하고 불교계는 이 방송 이후에 수신료 거부운동을 하겠다고 한다. 사월혁명회, 제주 4·3 관련 단체도 너무나 격앙돼있다”고 전했다.

▲ 영화 '기적의 시작' 메인 타이틀

그러면서 “이 일을 추진하시는 분들은 정녕 수신료 거부 운동을 유도하고 싶으신 건가”라며 “구성원들은 이렇게 두렵기만 한데 높으신 분들은 왜 이리 태평하신지 그 담대함도 참 궁금하다. 여쭌다. 악의인가, 무능인가”라고 했다.

또 다른 직원은 “편성표대로 저 물건이 나가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지금 편성본부와 사내 높으신 분들이 적어도 어떻게 해야 하나 치열한 고민이라도 하고 있길 바란다”며 “방송사고보다도 더 끔찍한 내일을 우리가 마주하지 않도록 사장과 편성본부장 이하 임원진들의 옳은 판단 촉구한다”고 했다.

KBS PD협회의 경우 “일본 제국주의를 즉각 연상시키는 '기미가요'와 광복절 정서에 맞지 않는 기모노가 공중파에서 나오는 것이 가당하기나 한가. 물론 실수인 부분으로 제작진이 사과를 했지만 해서는 안 될 실수였고 사장과 편성본부장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기적의 시작'이라는 '독립영화' 편성은 또 어떤가. 실무자들이 모두 거부해서 편성본부장이 종편을 직접 한 것도 코미디였지만 무엇보다 그 영화의 내용이 편파적”이라고 지적했다.

KBS PD협회는 '기적의 시작'은 제주 4·3사건과 4·19혁명을 폄훼해 당사자와 유족 명예를 훼손하고 국민 대다수 역사 인식과 현저히 달라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밖에 없다며 이를 방송하는 것이 현행 방송법상 '방송의 공적 책임' 조항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KBS같이노조 등 내부 노동조합들도 '기적의 시작' 방영을 반대했다.

그러나 '기적의 시작'은 예정대로 방영됐다. 이튿날 아침 사내 게시판엔 한 직원이 KBS의 익명 커뮤니티 앱에서 “우리는 자정능력을 상실했으니 수신료를 내지 말아서 본때를 보여주세요”라고 쓴 것을 봤다는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논란 끝에 16일 서울 여의도 KBS에선 박민 사장과 김동윤 편성본부장 출근길에 항의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손팻말 시위가 열렸다. KBS본부 조합원들은 이날 오전 6시30분부터 8시까지 “역사의 죄인 박민은 책임져라” “KBS는 국민의 방송이다. 책임지고 사퇴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경영진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2024년 8월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광복절 당일 KBS에서 벌어진 일들을 비판하며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는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KBS본부는 “박민, 부사장 류삼우, 전략기획실장 이춘호, 보도본부장 장한식, 제작본부장 이제원 모두 분노한 조합원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자리를 피하기에 바빴다”며 “김동윤 편성본부장은 조합원들의 항의가 두려웠는지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고 했다. 점심 시간에는 김승준 KBS기술인협회장도 시위에 동참해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을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KBS 사측은 앞서 '기적의 시작' 편성 논란에 대해 “독립적인 편성권에 의해 방송 편성을 결정하였고, 광복절을 맞아 다양성 차원에서 해당 다큐 영화를 선정, 방송하게 됐음을 알려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KBS는 또한 15일 '뉴스9' 앵커들의 클로징 멘트, 16일 박민 사장의 임원회의 발언을 담은 보도자료로 광복절에 벌어진 논란을 사과하며 진상조사를 예고했다. '기적의 시작' 관련 비판은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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