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김구·이승만이 보면 뭐라 할까
[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제79주년 광복절 경축행사가 결국 '반목의 행사'로 끝났다. 1949년 9월 21일 헌정국회가 국경일로 지정한 이래 처음이다. 치욕적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김구 선생·이승만 전 대통령이 봤다면 무슨 말을 할까.
정부·여당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광복회와 야당은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각각 광복을 경축했다. 지하철로 불과 36분 거리. 어떻게든 중재했어야 할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역으로 갔다. "유감스럽지만 국민께서 염려하고 광복회가 불참하는 광복절 경축식은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긴 뒤였다. "입법부 수장으로 헌법정신 수호와 여야 간 중재,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역사적 책무 사이에서 깊이 고심했다"고 한다.
각 행사장에서 나온 발언은 더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와 통일을 강조했다. 제목만 가리면 '6.25 전쟁 기념사'라고 봐도 좋을 경축사다. 일본 과거사 문제나 국민 통합 언급은 없었다. 그는 "자유 사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며 "가짜 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라고 했다.
같은 시간 이종찬 광복회장은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면서 "광복회는 결코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별도 행사 추진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버젓이 활개 치며, 역사를 허투루 재단하는 인사들이 역사를 다루고 교육하는 자리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고 했다.
'반쪽' 경축식이라는 여론이 빗발치자 대통령실이 발끈했다. 표현이 잘못됐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오늘 경축식에는 독립유공자 유족 등 국민 2천여명이 참석해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함께 했다.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가 공식 행사"라며 "특정 단체가 참석하지 않았다고 해서 일각에서 주장하는 반쪽 행사라는 표현은 잘못됐다고 본다"고 했다. 행사는 결과물일 뿐 그 원인이 '인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어느모로 보나 궁색한 변명, '눈가리고 아웅'이다.
윤 대통령과 광복회가 맞서는 사이 야권은 윤 대통령을 표적으로 총공세를 폈다. 광복회 행사에 몰려간 민주당은 "제2의 내선일체" "국민을 분열시키고 역사 의식을 (올바르게) 갖지 못 한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라고 비판했다. 조국혁신당은 논평을 내고 "밀정과 같은 뉴라이트 인사들의 중용으로 윤석열정권은 이미 보수세력 내부에서도 고립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톤은 조금씩 다르지만, 탄핵론을 꺼내든 것이다.
조국 혁신당 대표는 같은 날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을 향해 "조선총독부 제10대 총독이냐"고 막말을 해댔다. 전날 공세가 부족했다고 봤는지, 이튿날 민주당이 이걸 또 받았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겸 당대표 직무대행은 최고회의에서 "조선총독부가 용산 대통령실로 부활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다. 본인은 부정하지만 뉴라이트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그는 자신에 대한 비판이 빗발치자 기자회견을 자처해, 자신은 뉴라이트계가 아니라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일제시대 우리나라 국민 국적은 일본"이라고 했다. 이에 항거하기 위한 것이 독립운동이었단다. 그러나 김 관장 논리대로라면 일제가 우리 국민과 국토를 상대로 자행한 강제징용이나 경제수탈, 문화말살 정책, 토지수탈까지 정당화 될 수 있다. 이러니 논란이 더 커진 것이다.
윤 대통령은 김 관장 임명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여러 말이 있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에 이바지한다'는 게 독립기념관 설립 목적이고 보면, 광복회는 물론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이 나서서 반대하는 지금의 현실을 가볍게 보아 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광복 5년만에 터진 한국전쟁 통에도 과거 위정자들은 피난처에 모여 광복절 행사를 챙겼다. 1951년 제6회 광복절 경축식은 경남도청 내 임시로 꾸린 국회의사당에서, 이듬해 제7회 광복절은 서울 중앙청광장에서 열렸다. 국가 존망 여부가 매순간 달랐고, 이념과 진영 갈등이 극에 달했지만 그래도 그때의 위정자들은 국민을 보고 있었다.
대한민국 광복절의 의미는 단순한 일국의 국경일로 제한될 것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알리는 역사적 마침표였으며, 일본을 비롯한 세계 제국주의 붕괴의 증거였다. 한국의 해방은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 국가들의 희망이 됐고, 그들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도록 이끄는 방향타가 됐다. 결국 대한민국 광복절은 전 세계가 집중한 역사적 사건인 것이다. 오늘의 이 사달을 세계가, 특히 가해자인 일본이 어떻게 평가할 지 모골이 송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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