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대기] 작년엔 타자로, 올핸 투수로…고교야구 ‘유리 천장’ 깬 손가은
1999년 안향미 이후 첫 여고생 마운드
4타자 상대 4사구 1개에 3피안타 4실점
직구 구속 93~94㎞에 커브 구사
손가은(18·화성동탄BC)이 53년 봉황대기 역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지난해 타자로 전국대회 신고식을 치르더니 올해는 당당히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여고생이 봉황대기 마운드에 오른 것은 사상 처음이다. 비록 안타를 치지 못하고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했지만 10대 청춘의 야구, 그 자체가 낭만적이었다.
손가은은 16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52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신일고전에 선발 등판했다. 네 타자를 상대해 몸에 맞는 볼 1개와 안타 3개를 맞고 조기 강판했다. 전국대회에서 여고생이 투수로 나간 건 1999년 덕수정보고(현 덕수고) 안향미 이후 25년 만이다. 안향미도 선발 마운드에 올랐으나 선두 타자에게 몸에 맞는 볼을 내주고 바로 내려갔다.
올해 고교야구 주말리그 경기에 네 차례 나가 승리 없이 평균자책점 2.25를 찍었던 손가은 역시 전국대회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첫 타자 김태윤을 몸에 맞는 볼로 내보낸 뒤 2번 김승우에게 1타점 우월 2루타를 맞았다. 3번 임두랑에게 1타점 좌전 적시타를 허용했다.
4번 김담우를 상대할 때는 땅볼 타구를 유도했지만 유격수가 2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는 사이 공이 외야로 빠져 1타점 3루타가 됐다. 13개를 던진 손가은은 5번 박성우 타석 때 이정우에게 공을 넘기고 투구를 마쳤다. 경기는 신일고가 11-0(5회 콜드) 완승을 거두면서 손가은이 패전을 떠안았다.
이날 손가은의 직구 구속은 시속 93~94㎞가 찍혔고, 변화구는 커브를 구사했다. 손가은의 투구를 지켜본 프로 구단 스카우트는 "세트 포지션과 베이스 커버, 견제 능력을 볼 때 많은 준비를 하고 나온 것 같다"며 탄탄한 기본기를 칭찬했다.
나루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손가은은 이날 자신의 마지막 전국대회를 마친 뒤 "세 달 전부터 선발 등판을 준비했다"며 "생각보다 많이 떨리지 않았지만 (타자에게) 많이 맞고 못 던져서 아쉽다"고 소감을 밝혔다. 모자에 '즐기자'고 새긴 것처럼 즐겼는지 묻는 질문엔 "투구 수 40개로 2이닝 정도 생각했는데 너무 빨리 내려갔다"며 "솔직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손가은은 초등학교 5학년 체육 시간에 티볼을 접하면서 야구에 흥미를 가졌다. 야구와 경기 규칙이 유사한 티볼은 투수가 공을 던지는 대신 티(tee) 위에 올려진 공을 타격한다. 이후 화성시 동탄 리틀 주니어 야구단에서 본격적으로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고교 입학 후 대다수 여자 야구 선수들이 그렇듯 여성 사회인 야구팀 양구 블랙펄스로 향했다. 프로팀과 실업팀이 없는 여자 야구는 사회인 팀을 제외하면 여자 선수들이 경기를 뛸 팀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손가은에게 화성동탄BC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이 팀은 여러 학교 학생들이 취미로 야구를 하는 클럽이다. 손가은은 지난해 봉황대기에 타자로 등장했고 올해 황금사자기에 타자, 봉황대기에 투수로 뛰었다. 투수와 타자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던 봉황대기 대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손가은은 "나한테 기회를 주고, 다른 (여자) 후배들한테도 귀감이 될 수 있는 무대"라고 설명했다. 정들었던 팀 동료들과 이별을 앞두고 있는 것에 대해선 "이제 같이 야구를 못 하니까 아쉬움이 더 남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손가은의 최종 꿈은 일본 실업 야구팀 진출이다. 그는 "우선 한국에 있다가 기회가 되면 일본에 가고 싶다"며 "야구를 할 만큼 했으면 그다음 목표는 지도자"라고 힘줘 말했다.
강릉고, 세광고 등 32강 합류
한편, 이날 목동구장에서는 강릉고가 서울컨벤션고를 4-3으로 꺾고 32강에 진출했다. 선린인터넷고는 서울동산고를 7-3으로 따돌렸다.
신월구장에선 지난해 준우승팀 세광고가 우신고를 5-3, 대전제일고가 신흥고를 3-1로, 경북고가 8-1(7회 콜드)로 광남고BC를 각각 제압했다. 구의구장에선 성남고가 비봉고를 6-2, 장충고가 공주고를 7-5로, 마산용마고가 서울디자인고를 10-2(7회 콜드)로 이겼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최이재 인턴 기자 chldlwo090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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