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랴빈의 재해석…20대 피아니스트들 새 앨범 [인터뷰]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8. 1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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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부조니 콩쿠르 우승자 박재홍과
DG가 선택한 독일 신성 율리우스 아잘
스크랴빈 곡으로 개성적 큐레이션 선보여
연주자의 책임과 의무 강조하며 각각 발매
“유산 갈고 닦아야” “동시에 앞 내다봐야”
피아니스트 박재홍. 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스크랴빈을 이렇게 조합했다고?’

한국과 독일의 20대 젊은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이 나란히 내놓은 앨범 속 러시아 작곡가 스크랴빈의 재해석이 신선하다. 2021년 부소니 콩쿠르 우승에 빛나는 피아니스트 박재홍(25)의 ‘스크랴빈·라흐마니노프’와 도이치 그라모폰이 발탁한 독일 피아니스트 율리우스 아잘(27)의 ‘스크랴빈·스카를라티’다. 흠잡을 데 없는 깊이감과 연주력은 물론 반전과 재치가 있는 큐레이션으로 듣는 재미를 더한다.

두 사람 다 스크랴빈 전주곡 Op. 11을 담았지만 공통점은 그뿐, 앨범 구성은 각자의 개성으로 전혀 다른 색깔을 띈다. 이 전주곡은 스크랴빈이 1988~1895년에 쓴 초기작으로, 쇼팽의 전주곡에 영향을 받아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든 24개의 소품으로 이뤄져 있다.

두 피아니스트는 마침 거장 안드라스 쉬프 경을 사사하는 공통분모도 갖게 됐다. 박재홍이 올해 11월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겨 바렌보임 사이드 아카데미에서 수학하게 되면서다.

박재홍 신보 ‘스크랴빈·라흐마니노프’
동년배 러시아 출신이지만 구조적 대비
스크랴빈 전주곡과 라흐 소나타 1번 조합
박재홍의 데카코리아 레이블 ‘스크랴빈·라흐마니노프’ 표지.
지난 13일 클래식 레이블 데카코리아를 통해 신보를 낸 박재홍은 매일경제와 만나 “처음 스크랴빈을 알게 해준 곡”이라며 “칠 때마다 해석이 바뀐다. 24개 곡들 중 어떤 곡은 우중충하고 어떤 곡은 밝은 대비가 있다”고 했다. 사실 음반 녹음을 위해 먼저 선택한 건 두 번째 트랙의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이었다. 그는 “항상 ‘메인 디쉬’를 고른 후 어울리는 것을 찾는 편”이라며 “라흐마니노프가 무겁고 길다 보니(약 40분), 그에 비해 곡의 길이가 짧으면서도 유기체처럼 이어지는 곡을 큐레이팅했다. 두 작곡가가 같은 뿌리에서 다른 결로 뻗어나간 점도 재밌었다”고 소개했다. 스크랴빈과 라흐마니노프는 1살 차이로 같은 음악원에서 동문수학한 친구이자 경쟁자였다.

박재홍은 “두 작곡가 모두 정말 사랑하는데, 너무 유명한 곡들만 주목받는 게 서운하더라”며 “작곡가의 유산 중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을 갈고 닦아서 그 곡 또한 사랑받게 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연주자의 의무”라고 했다. 음반을 재생하면 가장 먼저 흐르는 스크랴빈 전주곡 1번은 연주 시간이 1분에 불과한 짧은 소품이지만, 박재홍은 녹음 당일 이 한 곡만 200번 넘게 3시간 동안 치고 또 쳤다. 15번, 24번도 여러 번 녹음했다. “즉흥적 요소가 가미될 수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칠 때마다 달라지다 보니 가장 좋은 것을 고르기가 어려웠어요. 그렇다고 획일화해서 치는 건 와닿지 않을 것 같아 시간을 오래 들였죠.”

독일 피아니스트 율리우스 아잘은
이탈리아 스카를라티와 교차해 배치
100년의 시공간 차이 넘어선 실험
율리우스 아잘의 도이치 그라머폰 레이블 ‘스크랴빈·스카를라티’ 표지.
아잘의 경우 19세기 후기 낭만파 스크랴빈과 17~18세기 후기 바로크 이탈리아 작곡가 스카를라티를 엮어 좀더 실험적이고 이례적이다. 지난 9일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초청 리사이틀로 처음 내한해 일부 프로그램을 실황 연주로 들려주기도 한 그는 매일경제에 “음반 표지의 흑백 사선 무늬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상반된 두 작곡가가 결국엔 큰 그림을 형성하고 하나가 된다는 의도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크랴빈 피아노 소나타 1번 Op. 6 중 4악장 장송행진곡 부분을 음반 가장 처음과 마지막 트랙에 수미상관으로 배치했다. 첫 트랙 후 스카를라티의 건반 소나타 바단조 K. 466이 흐르고, 스크랴빈 24개 전주곡 중 20번, 다시 스카를라티 건반 소나타, 그 후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1번 전곡이 나오는 식이다. 중간에 자작곡 ‘전환’도 배치했다.

아잘은 “이 음반은 흐름이 핵심이었다”며 “영감은 자연스럽게 떠올랐지만 작업 후 돌아보니 영화 ‘인셉션’의 영향을 무의식적으로 받은 것 같다”고도 했다. 생생한 꿈과 그 다양한 층위가 동시에 표현되는 지점 말이다. 그는 “좋은 영화가 집에 돌아가는 관객에게 질문과 실마리를 던지듯이, 음악과 공연으로 사람들에게 명확한 엔딩이 아닌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율리우스 아잘. 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기존의 문법과 다른 독특하고 즉흥적인 작업이지만, 아잘은 고전 클래식에 대한 존중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음악을 통해 내 정체성을 진실되게 표현하고자 한다”면서도 “단순히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문제는 아니다.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작곡가의 의도”라고 강조했다.

아잘은 많은 피아니스트가 콩쿠르 출전 등 경쟁을 통해 이름을 알리는 것과 달리, 2022년 프로코피예프 앨범 등 신선한 시도를 통해 지난해 세계적 레이블 DG와 독점 계약을 맺었다. “피아니스트에게 전통과 혁신, 본능과 사고 등 두 가치는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학구적으로 과거의 영향을 받으면서 동시에 앞을 내다보죠. 그럴 책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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