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커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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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신 날엔 명치께가 콕콕 쑤신다.
나는 케이크를 먹을 땐 티라미수를 골랐고,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맛집은 못 가도 특색 있다는 카페를 찾아 나만의 커피 취향을 넓혔다.
기후위기로 커피 농장의 생산량이 급감한 근미래의 어느 날 카페인 금단 증상으로 환청을 듣는 누군가의 이야기.
다음 날 나는 병원에 가서 보름치 약을 타온 뒤 뜨끈한 찜질팩을 배 위에 올려놓고서 나와 커피의 관계를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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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쓰림 알면서 각성작용 의존
급기야 병원가서 위병 진단
더 잘하려 무리했던 내가 문제
내려놓는 여유 깨닫는 계기
커피를 마신 날엔 명치께가 콕콕 쑤신다. 마시지 않으면 카페인 금단 증상으로 머리가 깨질 듯 지끈거린다. 이쪽도 저쪽도 고통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돌이켜보면 나는 커피의 힘으로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나갔다. 처음 커피에 맛을 들인 건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시험 기간이면 마트에서 캔커피를 잔뜩 사서 밤새 커피를 홀짝였다. 그렇다고 각성 작용에 힘입어 공부만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커피와 함께 깨어 있으며 공부하는 '기분'을 냈달까.
이삼십대엔 한창 유행하던 핸드드립 커피를 즐겼다. 신맛과 과일 향이 조화롭게 블렌딩 된 원두, 묵직한 스모키 향이 일품인 원두, 산뜻한 크림을 얹은 비엔나커피, 어느 맑은 봄날 제주도 서귀포의 한 카페에서 마신 그야말로 환상적인 라테까지. 나는 케이크를 먹을 땐 티라미수를 골랐고,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맛집은 못 가도 특색 있다는 카페를 찾아 나만의 커피 취향을 넓혔다. 글을 쓸 때도 꼭 에스프레소 기계로 커피를 내린 다음 매캐한 커피 향을 마치 무대 위 등장 효과처럼 주변에 한껏 내뿜으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데 왜 맛있는 건 몸에 좋지 않을까. 좋아하던 맥주와 와인을 숙취 때문에 떠나보낸 뒤에 커피만이 내 애착 음료였건만, 이제는 그 위안과도 헤어져야 할 처지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그간 나는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듯 내 몸에 카페인을 공급하며 점점 더 커피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감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었을 땐 해외의 원두 공급에 차질이 생겨 프랜차이즈 카페에도 판매용 원두가 매진이었다. 나는 불안에 떨며 커피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 짧은 소설을 썼다. 기후위기로 커피 농장의 생산량이 급감한 근미래의 어느 날 카페인 금단 증상으로 환청을 듣는 누군가의 이야기.
체력이 약해져 만성 위경련으로 끙끙 앓으면서도 나는 커피는 죄가 없다며 나의 음료 친구를 변호했다.
"신경성이야. 스트레스 때문에 그래." 내시경 검사를 받으면 다행히 위에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어서 나는 커피의 양을 조절하는 것으로 내 통증과 타협했다. 이전에 까다롭게 굴던 커피 취향은 접어두고, 미량의 커피에 아몬드 우유를 콸콸 섞어서 흡사 커피 숭늉인 듯한 음료를 하루에 딱 한 잔만 마셨다. 그런데도 무리하거나 신경을 곤두세운 날이면 어김없이 위통에 시달렸고, 진경제를 하도 먹어서 이제는 어느 약이 내게 효과가 좋은지, 그 약은 어느 약국에서 싸게 파는지를 훤히 꿰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다 며칠 전 새벽,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응급 신호가 들이닥쳤다. 그날은 약을 먹어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고, 급기야 한밤중에 나는 공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서 '끄아아, 끄아아' 신음을 내뱉었다. 그것이 나를 떠나가는 커피의 마지막 인사였을까. 다음 날 나는 병원에 가서 보름치 약을 타온 뒤 뜨끈한 찜질팩을 배 위에 올려놓고서 나와 커피의 관계를 되돌아봤다. 툭하면 복부를 강타하는 속 쓰림을 달고 살면서도 도무지 작별하기 힘들었던 나와 커피. 아니, 커피로 도망치려 했던 나의 불안과 부담감.
커피가 무슨 잘못이 있겠나. 일할 때마다 각성 작용에 기대어 나 자신을 들들 볶으며 더 잘 해내려던 내 욕심이 문제지. 내게 필요한 것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하는 카페인도, 의약품도 아닌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고 멈출 수 있는 절충선이 아니었을까. 무리하게 끌어올리고, 다시 억지로 가라앉히는 부자연스러운 긴장과 이완을 벗어나 마음을 내려놓는 쉼과 여유. 그렇게 시간이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 지나고 나면 내 배앓이도 차츰 회복될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커피와 재회해 귀하게 한 모금씩 머금으며 고유의 풍미를 즐길 수 있을까.
[김멜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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