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훌륭한 문짝이라도, 문짝만으론 집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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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소홀히 대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이엔 이런 격언이 돈다.
"문장의 삼적(三敵)을 주의하라."
대화에서든 글에서든 빈번히 사용되는데, 따지고 보면 삼적을 배제해도 문장은 구성된다.
삼적이 한 문장에 모두 등장하는 끔찍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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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소홀히 대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이엔 이런 격언이 돈다.
"문장의 삼적(三敵)을 주의하라."
2023년 타계할 때까지 평생에 걸쳐 60년간 세계문학 걸작 150권을 번역했던 '1세대 번역가' 안정효 선생의 2006년 저서 '글쓰기 만보(漫步)'에 나오는 문장이다.
작문과 집필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세 가지 적은, 안 선생이 보기에 '있'과 '것'과 '수'였다. 대화에서든 글에서든 빈번히 사용되는데, 따지고 보면 삼적을 배제해도 문장은 구성된다. 예를 들어보자.
'누전을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를 보자. 삼적이 한 문장에 모두 등장하는 끔찍한 문장이다. '것'을 제거하기란 쉽다. '누전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어서 '수'와 '있'을 하나씩 뽑아내려면 두뇌의 회전이 좀 느려진다. '누전을 일으킬 것입니다'로 바꾸려니 다시 '것'이 등장하고 '누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역시 '있'이 재등장해서다.
삼적을 멸하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글밭을 엎어야 한다. 이런 문장이 가능하다. '누전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안 선생의 두 번째 문제. '몸에 좋은 것이 시장에서 잘 팔린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다'를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개 사람들은 이런 경우 '것'을 '일'로 고치려고 안간힘을 쓴다. 예를 들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정도로 단어를 전구처럼 갈아 끼운다. 안 선생은 "잎사귀만 부지런히 닦아서는 아름다운 나무가 되지 못한다. 나무를 가꾸려면 곁가지를 잘라내고 뿌리에 비료도 주고 물도 뿌려야 한다"며 이런 식의 단어 바꾸기에 고개를 젓는다.
문장엔 정답이 없으므로 하나의 예시이지만 안 선생이 고친 문장은 이렇다. '몸에 좋다 하면 무엇이나 다 잘 팔린다.'
접속사의 빈번한 사용도 글읽기를 덧나게 한다. 접속사는 '글더듬이'라고 그는 본다. 접속적 표현이 사라지면 글은 긴박하고 촘촘해진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작가는 큰 건축물을 짓는 목수, 즉 대목(大木)이다. 한 권의 책은 한 채의 집, 작가는 그 집을 짓는 대목이다. 글쓰기는 집짓기, 번역은 집을 옮겨 짓기와 같다. 아무리 훌륭한 문짝이라도 문짝만으로는 집이 되지 못하며, 집 전체가 아름다워도 기둥이 없으면 집은 무너진다. 몇 장의 벽돌을 빼놓으면 담까지 무너지는데 글의 단어 하나는 담의 벽돌 한 장과 같으니 낱단어 하나도 소홀히 하지 말라고 책은 이야기한다.
글쓰기를 주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안다. 의도적으로 '있'과 '것'과 '수', 나아가 접속사를 원천 배제하는 일은 때로 작위적이고 강박적인 인상을 줄 수가 있다. 하지만 다르게 쓸 수 있음에도 그렇게 쓰는 것과 그렇게 쓸 수밖에 없어서 다르게 쓰지 못하는 것은 구분이 필요하다.
고민 위에서 문장은 성립하며, 고민이 깊은 글은 더 많은 독자를 만난다. 저 고민은 더 많은 독자와의 악수를 위한 준비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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