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제동에 …'도심 흉물' 정당현수막 재공습 위기

설치개수 제한·장소 지정 등
인천 등 4곳 규제 마련했지만
대법 "상위법령 위반" 무효
시민들 "막말 가까운 현수막
쳐다보기도 싫다" 부글부글
지자체들 "법령 개정 시급"

2023년 인천시 관계자가 옥외광고물 조례를 위반한 현수막을 강제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정당 현수막 난립 방지를 위해 설치 개수를 제한하고 지정 게시대에만 걸 수 있도록 한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무효로 판단하면서 무분별한 현수막 설치 경쟁이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옥외광고물법과 시행령을 보완해 국민 불편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지자체 조례가 정한 지정 게시대 게시 의무가 사라지고 현수막 내용에도 제한이 없어 현수막 공해와 정치 혐오가 재연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16일 전국 지자체에 따르면 인천시, 울산시, 전라남도, 제주도가 정당 현수막 규제 조례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지자체는 현수막 공해를 막겠다며 지정 게시대에만 정당 현수막을 게시하고 설치 개수까지 제한하는 조례를 시행 중이다.

4개 지자체가 급히 조례 개정에 나선 건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지난달 대법원은 행정안전부가 4개 지방의회를 상대로 낸 조례안 의결 무효 확인 소송에서 "지자체가 법령의 위임 없이 조례로 규율할 수 있는 사항으로 보기 어렵다"며 행안부 손을 들어줬다.

상위법령이 정한 정당 현수막 표시·설치 규정보다 조례 규정이 엄격해 상위법인 옥외광고물 법령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정당 현수막을 지정 게시대에만 걸고 상위법령에서 허용하는 정당 현수막의 개수를 초과해 제재하거나, 현수막에 혐오·비방 등의 내용을 담지 못하도록 한 것은 상위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행안부가 소송을 제기한 4개 지자체 외에 서울시, 광주시, 대구시, 부산시도 정당 현수막 조례를 도입했지만 추가 개정 등으로 상위법 저촉을 피해 조례 개정 대상은 아닌 것으로 행안부는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 후 행안부는 해당 지자체의 조례가 무효가 되더라도 옥외광고물법과 시행령을 지난해 말과 올해 1월 개정해 정당 현수막 난립을 해결하기에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개정 법령은 종전에 제한을 두지 않았던 현수막 설치 개수를 읍·면·동별 2개 이하로 정하고, 어린이보호구역·소방시설 주변 주정차 금지 표시 구간 등 보행자·교통안전 저해 장소에 현수막 설치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보완됐다. 현수막 규격도 10㎡ 이내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보호구역이나 소방 관련 시설 등 안전 관련 구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장소에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있고 현수막 내용에 대한 규제도 따로 없어 도시 미관 저해, 정치 혐오 유발을 차단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 4월 10일 22대 총선이 끝난 후에도 전국 주요 교차로 등에는 정쟁성 현수막이 다수 내걸렸다.

울산시민 서 모씨(49)는 "올해부터 지자체가 혐오·비방이 적힌 정당 현수막과 비지정 게시대에 걸린 현수막을 강제로 철거해 거리가 깨끗해지나 싶었는데, 해당 조례가 무효가 되면서 다시 난립 조짐을 보인다"며 "특히 현수막 내용이 막말에 가까워 쳐다보기도 싫다. 정당 현수막 규제 법률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경실련은 "대법원은 정당 현수막 규율을 통해 정당 활동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더라도, 그 제한은 원칙적으로 국민 대표자인 입법자가 스스로 형식적 법률로써 규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판단했다"면서 "이는 국회가 정당 현수막 난립 문제를 국민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결단하면 된다는 의미여서 정부와 정치권은 옥외광고물법 개정 수준과 지자체 개정 조례의 간극을 좁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시도 "옥외광고물법 개정으로 정당이 읍·면·동별 2개 이내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게 되면서 현수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행안부에 법령 개정을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