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에 심야배달·냉감패드 '불티'···수면유도제 부당광고 '기승' [역대최장 잠 못드는 밤]
편의점 '하이볼' 매출 281% 뛰고
야식류 대신 빙수·과일 배달 늘어
홈쇼핑선 냉감침구류 판매 90%↑
"경제·산업 생태계 변화 조사 필요"
직장인 이 모(28) 씨는 요즘 매일 새벽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다. 24시간 선풍기를 가동하고 냉감 패드도 새로 장만했지만 20일 넘게 지속된 열대야를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씨는 “전기료 부담 탓에 에어컨 꺼짐 예약을 해왔지만 수면의 질이 너무 떨어져서 앞으로는 계속 켜둘까 싶다”고 토로했다. 생체리듬이 틀어지며 야식을 먹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이 씨는 “어제도 밤 11시에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면서 “체력도 떨어지고 몸 여기저기서 이상 신호가 나타나 여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올해 여름은 이 씨뿐 아니라 모두에게 유독 버겁고 기나길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며 서울과 부산에서는 ‘역대 최장 열대야’ 기록이 경신됐다. 전국 열대야 일수가 이미 평년의 3배 수준에 육박하지만 다음 주에도 무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나날이 신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밤낮 가리지 않는 더위의 여파로 수면유도제 관련 부당 광고가 급증하고 가축이 무더기로 폐사하는 등 각종 사회문제도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모양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이날 아침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며 지난달 21일 이후 26일 연속 열대야를 기록했다. 이는 ‘21세기 최악의 더위’로 꼽힌 2018년(기존 1위)과 동률이다. 다만 기상 기록은 순위를 매길 때 최근 기록을 상위에 놓는 것이 원칙이라 올여름이 1907년 기상관측 이래 ‘역대 최장 열대야’로 기록됐다.
부산에서도 22일째 열대야가 계속돼 당초 1위 기록(2018년 21일)을 하루 차이로 앞질러 121년 만에 최장 열대야 일수를 기록했다. 이 밖에 인천(24일)과 제주(32일)에서도 이날 각각 역대 2위·5위 열대야 지속 일수를 기록했다. 기상청은 이날 중기예보에서 다음 주까지도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최저기온이 25도를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조만간 부산·서울이 ‘압도적인’ 단독 1위에 오르고 그 외 지역 곳곳에서도 ‘역대 최장 열대야’ 기록을 경신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연일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지며 불면증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직장인 최 모(25) 씨는 “최근 외국인 친구를 한국에 초대했는데 입국하자마자 열대야에 시달려 수면제를 처방받았다”면서 “결국 친구가 무더위를 버티지 못하고 출국일을 앞당겼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사회가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면서 열대야에 따른 수면 방해 문제를 지적하고 장기적으로는 우울증·불안장애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수면장애를 겪는 이들이 늘면서 일반 식품을 수면유도제나 ‘잠 잘 오는 약’ 등으로 광고한 사례도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달 초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일반 식품이 불면 치료 효과가 있다면서 광고·판매한 게시물 200건을 조사한 결과 부당 광고 56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시장에서는 열대야와 관련한 각종 상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서울에서 열대야가 시작된 지난달 21일 이후 하이볼과 얼음컵 매출은 전년 대비 약 281.1%, 12.9%씩 폭증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 관계자 역시 “한여름 밤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주류들이 많이 팔리고 있다”면서 “무알콜 맥주, 하이볼, 숙취해소제에 대한 밤 시간대 매출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고 갈증 해소를 돕는 이온음료 등 스포츠음료 매출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배달의민족’ 관계자 역시 “통상 밤 10시 이후 심야 시간대에는 곱창·닭발·꼬치요리 등 안주류 주문량이 증가하는데 최근 무더위가 이어지며 요거트아이스크림·빙수·손질과일 등의 메뉴 주문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냉감 소재 침구류를 찾는 사람들도 훌쩍 늘었다. 홈쇼핑 SK스토아에 따르면 이달 1~11일 ‘냉감 패드’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90% 신장했다. 롯데마트 역시 지난달 21일부터 여름 침구, 냉감 의류 등 매출이 전년 대비 약 30%씩 뛰었다.
한편 폭염으로 소비자들의 발길이 뚝 끊기거나 수입에 직격타를 맞은 곳도 있다. 축산 농가에서는 올여름 들어 연이은 폭염으로 인해 폐사한 가축이 78만 마리에 달한다. 행정안전부 ‘국민 안전관리 일일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11일부터 전날까지 집계된 가축 폐사는 77만 9000여 마리로 지난해 동기(31만 9040마리)의 2.5배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실내 시설이 아닌 전통시장에서도 손님이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다. 소상공인 및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체감경기지수(BSI)는 올해 5월 57.5에서 6월 46.3, 지난달 42.4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박 교수는 “기후변화에 따라 일부 산업군의 생계가 무너지거나 먹거리 소비가 제한되는 등 경제·건강·의식주 등에서 전반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단순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가 차원에서 어떠한 위협이 나타나는지 조사하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장형임 기자 jang@sedaily.com김남명 기자 name@sedaily.com박민주 기자 mj@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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