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면] 운에 대하여
때론 운이 모든 걸 결정하지만
행운은 불운과 동전의 양면
운에 집착하면 생활·정신 피폐
살면서 작은 불운을 잘 넘기고
손해 봐도 조금 실망하면서
실력으로 그럭저럭 꾸려가면
작은 미덕들 쌓이며 더 나은 삶
세상일은 노력한다고 결정되지 않는다. 나와 남의 상호작용의 결과다. 상호작용이란 협업이기도 하고 경쟁이기도 하며, 배경이 되는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변화를 모두 포함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이라는 건 이 모든 변수를 뚫고 목표 지점까지 가기 위한 세부 조정의 프로세스다. 모든 행위자는 그 불안하게 움직이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승부를 겨룬다. 무대 위에서는 칼로 등을 찌르는 비열한 반칙까지 포함해서 드라마가 펼쳐진다. 배신과 편법은 상수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예측했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운칠기삼, 운이 7할이고 재주가 3할이라는 말처럼 운이 모든 걸 결정할 때가 많다. 운이 살짝 작용하면 노력도 할 말이 있다. 하지만 운이 세게 작용하면 모든 노력이 무색해진다. 그것이 행운이든 불운이든. 크든 작든 이 운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운을 경험해본 건 30년 전인 1990년대 초반이다. 친구와 함께 새벽 밤거리를 걸어 귀가하다가 불량배들에게 당했다. 열 명 정도가 둘러쌌는데 돈을 빼앗으려고 우리 주머니를 뒤졌다. 당시 주머니엔 '단돈'이라는 말도 무색한 50원짜리 동전 하나가 전부였다. 우리는 먼지 나게 맞았다. 한참을 맞다 보니 반항심이 생겨 달려들다가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당했다. 그대로 보도블록 경계석으로 떨어진 채 정신을 잃었다. 요령껏 웅크리고 맞던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불량배들은 정신을 잃은 나를 보고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했다. 그런데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순찰차가 이 상황을 목격했다. 경찰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더니 때린 놈들은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저쪽을 가리키자 순찰차가 가더니 금세 불량배들을 잡아왔다. 함께 경찰서로 연행돼 조서를 꾸몄다. 합의를 해주긴 했지만 이가 빠져 후유증은 오래갔다.
이 사건엔 행운과 불운이 겹쳐 있다. 그 새벽에 택시비가 없어서 걸어가다가 암초에 걸린 것은 불운이다. 하지만 캄캄한 새벽 밤거리에서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순찰차가 나타나 범인을 체포한 것은 행운이다.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순찰차가 10분만 빨리 현장으로 왔다면 아예 다치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렇게 보면 이건 운이 나빴던 걸까. 행운인지 불운인지 따지는 것도 참 쉽지 않다.
불경기일수록 사람들은 행운을 바란다. 이 팍팍한 상황을 한 번에 해결해줄 화끈한 걸 원하게 된다. 운의 한자 '運'(운)을 보면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나를 데리고 나가줄 운이다. 모든 걸 뛰어넘을 수 있는 이 '움직일 운'의 가장 현실적인 표현은 바로 돈이다. 인간의 헛된 망상은 대부분 돈과 관련돼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공상을 하다가 꿈에서 깨면 자괴감이 들고 더 녹초가 되지만, 잠깐만 정신을 놓으면 또 비슷한 공상을 하고 있다. 하도 그러다 보니 '인간의 생각은 90%가 다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다. 문제는 공상의 규모가 점점 커진다는 데 있다. 꿈에서라도 크게 한번 놀아보자 싶어 마음껏 판돈을 올리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간절히 원한다고 찾아와주면 그게 운이라 할 수 있을까. 운에 대한 갈망은 생활과 정신을 갉아먹고 의욕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늘 다짐한다. 운이라는 것은 양방향이며 큰 행운 뒤에는 큰 불운이 도사리고 있다고. 차라리 운이 비켜 가는 게 좋은 거라고. 실력으로 그럭저럭 꾸려 가는 게 훌륭한 인생이라고. 그러나 운을 피해 갈 수 있는 그런 운 좋은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방어적이 되는 게 낫다. 즉, 작은 불운들을 잘 넘기는 거다. 작게 손해 보고 작게 실망하다 보면, 작게 이익 보고 작게 즐거운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운을 '지폐'로 보기보다는 '동전'으로 보고 저금통에 모아 둔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마인드맵으로 '유도리'가 있게 살아간다면 작은 미덕들을 만들어 나가는 삶으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이 그런 미덕 위에 올라선다면 운이라는 건 그저 대수롭지 않은 풍경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운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큰 불운이 나를 덮치는 일까지 어찌할 수는 없다. 그런 궁극적인 어쩔 수 없음이 인생일 것이다. 그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운명(運命)이니까.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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