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사고, 파리에 두고 올 것들[오늘을 생각한다]
2024. 8. 16. 16:02
2024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호성적만큼이나 화제가 된 것은 젊은 선수들의 사고방식이다. “괜찮아. 다 나보다 못 쏴.”(김예지), “나도 부족하지만 남도 별거 아니야.”(반효진),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고 잘할 수 있었다.”(오상욱) ‘○○적 사고’로 명명된 선수들의 어록은 세대를 아우르는 밈이 되어 한국인들을 열광시켰다. ‘○○적 사고’의 원형을 만든 건 아이돌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이다. 앞사람이 빵을 다 사가는 바람에 갓 나온 빵을 사게 됐다고 기뻐하는 장원영의 모습은 ‘원영적 사고’라는 초긍정의 밈을 만들어냈다.
‘○○적 사고’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세상을 자기한테 맞추는 능력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의지로서 상황을 낙관하는 믿음을 갖는 능력, 즉 자기기만 능력이다. ‘○○적 사고’의 주인공들의 마음 한구석에도 비관적 사고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마음의 국회에서는 언제나 다양한 사고가 경합을 펼친다. 위 선수들의 특별한 능력은 솟아오르는 비관적 사고를 제압하고 낙관을 지배적 사고로 채택하는 능력이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러한 정신의 드라마를 쓰는 능력이 무의식이 아는 것을 억누르는 자아의 노력으로부터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무의식이 아는 것, 엄습해오는 불안을 억누르는 노력이다.
“자기기만의 위력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둘러봐야 할 것은 모두가 ‘○○적 사고’로 무장하길 요구하는 세계 그 자체이다. 자기기만은 가혹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쿠션이다. 모두가 자기기만의 방탄복을 둘러야 하는 세계는 좋은 세계일까.”
심리학자 스타레크와 키팅은 수영선수들을 상대로 한 실험에서 자기기만 능력과 성취의 상관관계를 증명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긍정적 사고로 자기를 속이는 경향이 높은 수영선수들이 큰 시합에서 일관되게 더 좋은 기록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연구에서 스포츠 이외의 분야에서도 자기기만 능력과 성취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기기만의 위력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둘러봐야 할 것은 모두가 ‘○○적 사고’로 무장하길 요구하는 세계 그 자체이다. 자기기만은 가혹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쿠션이다. 모두가 자기기만의 방탄복을 둘러야 하는 세계는 좋은 세계일까.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세계와 아이돌그룹 멤버 장원영의 세계의 공통점은 개인의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가혹한 경쟁의 무대라는 점이다. 이런 처지에 놓인 개인이 본인의 상황을 비관한다면 무한한 노력이 불가능하다. 어떤 식으로든 상황을 낙관할 때 의심 없는 무제한의 노력이 가능하다.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은 본능적으로 극한의 자기기만이라는 외피를 두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최고의 선수들이 펼쳐낸 정신의 드라마는 감동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로 보게 되는 드라마는 사후에 인정받은 승자의 정신세계다. 이러한 생존 편향은 승자의 드라마를 실재보다 과장되게 묘사하며 패자의 노력을 덧없는 것으로 만든다. 2등 선수나 예선탈락 선수의 의지가 1등 선수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근거는 오직 1등 선수의 정신 속에만 있다. ‘○○적 사고’에 대한 열광은 좀처럼 식지 않는 한국인의 자기계발 열풍과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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