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파리올림픽[꼬다리]
“나는 월드컵, 올림픽 때만 되면 애국자가 돼.” 2024 파리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지인과 이런 대화를 했다. 올림픽이 시작되자 역시나 ‘과몰입’했다. 양궁을 시작으로 메달 행진이 이어지면서 밤늦은 시간까지 TV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특히 ‘총·칼·활’ 종목에서 맹활약하는 한국 선수단의 모습에 평소라면 손사래 쳤을 ‘하느님이 bow하사(下賜) 우리나라만 쎄(세다)’라는 유행어도 사뭇 마음에 들었다.
올림픽을 즐기는 이들의 태도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순위나 메달의 색보다 선수 개개인의 서사와 경기 과정의 긴장감을 즐기는 분위기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전보다는 높아졌다. 선수 개개인의 마음가짐이 조명받은 것도 달라진 세태를 반영했다. 올림픽 기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초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진 걸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의 이름에서 따온 ‘원영적 사고’에 선수 이름을 빗댄 ‘○○적 사고’가 번졌다. ‘나도 부족하지만 남도 별거 없다(효진적 사고)’, ‘난 된다. 난 될 수밖에 없다. 난 반드시 해낸다(애지적 사고)’,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고 그렇게 잘할 수 있었다(상욱적 사고)’….
2002 한일 월드컵의 ‘꿈은 이루어진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가 집단적 희망가에 가까웠다면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사람들이 열광한 건 ‘나(선수)’였다. 혹자는 MZ세대의 나르시시즘 혹은 개인주의 성향이 투영됐다는 지적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볼 필요는 없는 듯하다. ‘메달을 땄다고 젖어 있지 마라. 해 뜨면 다시 마른다’(우진적 사고), ‘빵점 한 번 쐈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예지적 사고) 등 과잉경쟁 시대에 승패 앞에 휘둘리지 않고 전진하는 이들이 모습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됐다.
이번 올림픽이 ‘성평등’을 테마로 삼은 점도 좋았다. 프랑스는 개막식에서 프랑스 역사를 이끈 여성운동가 10인을 소개하며 페미니즘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남녀 선수는 동수로 출전했고, 폐회식에서 올림픽 최초로 여자 마라톤이 마지막 시상대를 장식하도록 했다. 1896년 아테네 대회에서부터 120여 년간 폐회식을 남자 마라톤 메달 시상식이 장식해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성차별적인 전통의 맥을 끊어준 프랑스가 고마웠다.
다만 ‘한국 패치’가 덧씌워진 파리올림픽의 뒷맛이 마냥 개운치는 않다. SBS와 KBS는 개막식을 중계하며 페미니즘을 각각 ‘박애(자매애)’, ‘프랑스의 여성들’로 바꿔 소개했다. 사회발전에 기여한 여성들의 업적을 소개하는 섹션의 취지를 담기엔 협소한 단어들이었다. 성차별적 인터뷰와 보도도 여전했다. 양궁 임시현 선수의 턱에 있는 활 자국을 지적하며 “시술할 생각 없냐”고 말한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여성 선수들을 향한 ‘엄마’, ‘여제’ 같은 게으른 수식도 반복됐다. 여성 복서 이마네 칼리프(알제리), 린 위팅(대만)에 대한 소수자 혐오적 보도도 이어졌다.
개막식 현지의 장내 아나운서가 한국 선수단을 ‘북한’으로 호명하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대한민국은, 언제쯤 차별과 혐오에도 민감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덕분에 올림픽 과몰입 탈출이 수월했다고 위안 삼을 뿐이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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