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달러와 미국의 지역경제[서중해의 경제망원경](33)

2024. 8. 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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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 D. 밴스 상원의원(오하이오)이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네바다주 리노에서 유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3년 3월 8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정례회의에서 공화당 J. D. 밴스 상원의원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오하이오주를 대표하는 초선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15일 이번 대통령선거의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그를 지명했다. 밴스 상원의원의 질문은 통상적인 현안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여서 짧은 시간의 문답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것이었다. 동료 공화당 의원들도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질문 내용은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러스트벨트 지역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제적 이유를 보여준다. 조금 길지만 밴스 상원의원의 질문을 보자.

“애팔래치아 역사와 자원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지난 80년 가까이 국제경제에서 가장 큰 특권 중 하나인 강한 달러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로서 역할을 해왔습니다. (···) 이는 분명히 미국인의 구매력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우리는 더 저렴한 수입품을 즐기고, 미국인들은 해외여행을 할 때 저렴한 비용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생산자들에게는 대가가 따릅니다. 어떤 면에서는 기축통화 지위가 미국 소비자에게는 막대한 보조금이지만 미국 생산자에게는 막대한 세금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경제를 보면 금융 엔지니어와 다양한 컨설턴트는 많지만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 기축통화 지위와 통화에 대한 통제력 부족이 아마도 그것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이에 대한 의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준비 통화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강달러, 소비자는 보조금 생산자는 세금

앞선 인용문의 애팔래치아는 밴스 상원의원이 태어나고 자란 오하이오를 포함한 러스트벨트 지역을 의미한다. 질문의 요지는 기축통화로서 달러와 지역경제의 성쇠다. 질문에는 사실관계에 대한 오류가 있다. 오류는 달러가 항상 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교역 상대국의 물가를 반영한 환율, 즉 실질 실효환율을 보면 지난 30년간 처음 10년(1994~2002) 동안에는 달러가 강세였다. 그 이후 2008년까지는 약세를, 그리고 최근 10년은 강세를 이어오고 있다. 사실관계에서 약간의 오류가 있긴 하지만, 밴스 상원의원의 발언은 미국경제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을 잘 보여준다. 위의 인용문이 시사하는 바를 국내적 측면과 국제적 측면으로 나눠서 검토해 보자.

국내적 측면에서 주목할 부분은 “소비자에게는 보조금이지만 생산자에게는 세금”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밴스 상원의원의 출신 지역인 오하이오주와 같이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했던 지역의 현실을 대변한다. 제조업의 생산과 소비에서 미국 제품 대신 더 저렴한 중국산을 수입하게 되면 해당 지역의 제조업은 타격을 입는다. 강한 달러는 소비자들이 더 값싸게 외국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해 소비자에게는 일종의 보조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생산자는 외국에서 들어온 더 싼 제품과 경쟁해야 하기에 생산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논리는 해당 지역의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이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기술혁신을 선도하는 캘리포니아의 경우는 강한 달러가 세계적인 기술 기업들의 성장과 활동을 저해하지 않는다. 이들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들이 선망하고 구매한다. 오히려 강한 달러는 이들 기업과 이들 지역에 더 많은 부를 가져다준다. 한 국가경제 안에서 지역은 각 지역의 입지 우위에 따라 특화산업을 갖게 된다. 지역이 어떤 산업에 특화하고 있는가가 지역의 소득수준을 결정한다.

밴스 상원의원처럼 지역의 성쇠를 달러 가치에 결부시키면 지역 쇠퇴의 근본적인 원인을 호도하게 된다. 지역경제의 쇠퇴에는 주력 산업의 진화과정에서의 정체, 낙후된 인프라와 지역의 교육 시스템 문제, 특히 지식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대학이 제대로 역할을 못 하는 경우, 인구 고령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또 지역경제 성장에는 주력 산업의 혁신과 경제 인프라 개선, 대학의 선도적 역할, 적절한 정책, 인구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환율의 변동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에 호황과 불황, 즉 변동을 초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기초체력과 경쟁력이 환율을 결정한다. 한 국가 내에서 지역경제의 성쇠는 이런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다. 지역이 어떤 산업을 성장엔진으로 가지는가가 지역의 소득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어떤 산업 특화했는지가 지역 소득 결정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의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평균 6만6813달러다. 세계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가 있는 뉴욕주의 일인당 GDP는 전체 평균보다 36% 많은 9만730달러다. 정보통신 기술혁신의 원천지인 캘리포니아는 평균보다 24% 많은 8만2975달러다. 러스트벨트 지역의 하나인 오하이오주는 전체 평균보다 12% 적은 5만9241달러다. 뉴욕주의 일인당 GDP는 오하이오주보다 1.5배 많다. 미국의 지역 간 소득 격차는 산업구성의 차이로 상당 부분 설명된다. 환율은 부차적이다. 자원 부국이 자원 수출로 경제 호황을 누리지만 환율이 고평가돼 제조업이 쇠퇴하고 경기 침체를 겪는 현상을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라고 한다. 밴스 상원의원은 질문에서 이 현상을 ‘자원의 저주’로 표현했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두 개념은 엄밀하게 구분된다.

밴스 상원의원은 쇠락한 공업지대의 백인 하층민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회고록으로 2016년 출판한 <힐빌리의 노래>는 이들의 삶을 그렸다.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밴스 상원의원의 정치적 행보는 이들 지역주민의 이해를 대변한다. 경제구조의 고도화 과정에서 탈락한 지역민들은 종종 실패 구실을 타자에게로 전가한다. 이민자들에게 원인을 돌리는 것이다.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여긴다. 인종 갈등의 근저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놓여 있다.

밴스 상원의원의 질문에 파월 의장은 정면 대응을 피한다. 원칙적인 답변을 내놓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달러 위상에 대한 확신을 표명했다. 이들의 짧은 질의응답은 세계 금융 시스템의 본질을 배경으로 한다. 달러 패권은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이 사안은 다음 칼럼에서 다룰 것이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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