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21 분담금 깎아줘” 황당한 인니… 韓 “들어주기로” [박수찬의 軍]
KF-21 공동개발 분담금을 둘러싼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갈등이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방위사업청은 16일 제163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인도네시아 분담금을 6000억원으로 조정하고 가치이전 조정 및 부족재원 확보를 포함한 후속조치계획을 심의·의결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분담금이 크게 낮아지면서 공동개발의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 이렇게 됐나
인도네시아와의 KF-21 공동개발 분담 방식이 ‘덜 주고 덜 받기’가 된 것은 예견된 문제였다.
지난 수년간 곳곳에서 ‘경보’가 울렸지만, 정부는 인도네시아의 태도 변화를 끌어낼 모멘텀을 찾지 못했다. 그 결과는 국민의 혈세로 분담금 부족분을 메운다는 관료주의적 결정이었다.
비용절감 효과를 감안해도 5000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 이에 필요한 재원 마련 측면에서 방위사업청은 방위력개선사업 중 우선순위가 낮은 것들을 살피면서 예산을 이·전용할 여지가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는 1조6000억원을 2026년까지 부담하고 시제기 1대와 기술을 이전받고 전투기 48대를 현지 생산하는 조건으로 공동개발에 참여했다.
1200억여원만 더 내고 끝낸다는 의미다. 분담금 1조원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셈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그 시작은 인도네시아의 재정 문제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코로나19 시절을 제외하면 크게 악화하지는 않았으나, 국방예산이 문제였다.
인도네시아는 과거부터 국방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예산 비율은 2000~2010년 0.7%, 2010~2021년 0.8%에 그쳤다. 동남아에서 인도네시아보다 비율이 낮은 나라는 라오스뿐이었다.
인도네시아군이 군사력과 국방연구개발 능력을 강화하려고 해도 예산 제약이 매우 크다. 올해 초 카타르에서 중고 미라지 2000 전투기를 들여오려다 자금 부족으로 포기한 사례는 인도네시아의 국방예산 실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해준다.
예산 사정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KF-21 공동개발에 참여한 인도네시아로선 가성비를 따져볼 수밖에 없다. 특히 체계개발 착수를 전후로 관련 기술을 온전하게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이는 인도네시아 국방비에서 KF-21 분담금 납부의 우선순위가 다른 사업에 밀리게 되는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KF-21 분담금을 미납하면서 프랑스에서 라팔 전투기를 구매하는 인도네시아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프랑스는 라팔 구매국에 상당한 규모의 대출을 제공한다. 이집트가 라팔을 처음 구매했을 때, 도입비의 80% 이상은 프랑스의 대출로 채워졌다. 한국도 폴란드에 K9 자주포, K2 전차, 천무 다연장로켓 등을 판매하면서 금융기관의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 첨단 무기를 도입하면 구매국으로부터 정책 금융이나 기타 금융을 지원받을 수 있다. 들여오는 즉시 전천후 작전 투입이 가능하다.
반면 KF-21 분담금은 연구개발이므로 금융기관 대출이 안된다. 전액 정부 예산으로 집행해야 한다. 2026년에 KF-21 개발이 끝나지만, 이는 공대공 능력을 갖춘 블록1이다.
F-35A와 KF-16, F-15K 전투기를 대거 보유한 한국은 KF-21의 완성을 기다릴 여유가 있다.
반면 예산 압박과 중국의 위협 증대, 주변국 군비 증강에 직면한 인도네시아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광대한 영공을 지키면서 중국과 주변국 견제까지 하려면, 미국이나 유럽에서 직도입하는 것이 재정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더 쉬운 선택이다.
한국 정부도 인도네시아의 이같은 특성을 파악하고 분담금 문제에 대처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블록1·2로 구분된 단계적 개발 대신 전천후 작전능력을 단번에 갖추는 식으로 개발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거나, 인도네시아의 재정 부담을 낮추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는 것이다.
KF-21 공동개발을 둘러싸고 인도네시아는 한국이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을 계속 만들어왔다.
분담금 미납으로 인해 누적된 한국 내의 부정적 시선은 지난 1월 인도네시아 기술진이 KF-21 설계 기술 자료가 담긴 USB를 몰래 빼내려다 적발되면서 더욱 악화했다. 분담금 조정 요구는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일각에선 한국 내 정서를 자극하는 인도네시아와의 공동개발을 정리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KF-21 공동개발을 멈출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공군이 KF-21 120대를 도입할 예정이라지만, 현재 확정된 것은 20대다. 나머지는 정치·경제적 변수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 대비하려면 수출을 준비해야 한다. 전투기 개발 및 생산의 손익분기점은 200~250대. 손익분기점을 달성하려면 수출이 필수다. 이를 위해선 납품 실적을 갖춰야 한다.
문제는 전투기 시장에서 KF-212이 납품 실적을 갖출 만한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KF-21이 주목받을 만한 국가는 기존에 KT-1이나 T-50 계열을 구매한 국가다. 프랑스가 냉전 시절 미라지 전투기를 판매한 지역에 라팔 전투기를 수출, 미국과 러시아·중국의 시장 진입을 막으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과 유사한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한국에 남은 곳은 인도네시아 정도다. 인도네시아는 KT-1 훈련기를 최초로 구매해 한국 방위산업 수출의 새로운 전기를 제공했고, T-50 훈련기도 도입했다. KF-21 공동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분담금도 냈다.
인도네시아에서 단순 현지 조립 생산만 진행해도 KF-21 납품 실적을 확보해서 추가 수출에 나설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생산량도 늘어나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있다.
인도네시아와는 경제적으로 협력할 것이 많다는 것도 KF-21 공동개발 유지에 영향을 미친다.
수도 이전에 따른 막대한 규모의 건설 프로젝트, 전기차 배터리 제작에 필수적인 니켈 확보 등이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가 KF-21 공동개발을 청산하지 않는 것도 한국과의 경제협력 중요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권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인도네시아와의 외교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리스크는 KF-21 개발과정에서 상당한 상처를 남겼다. 분담금 미납과 기술 유출, 분담금 조정 요구가 이어지면서 무기 공동개발에 대한 인식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거듭한다고 해도 인도네시아를 배제하기는 어렵다.
서로 안보고 살 거라면 ‘손절’해도 되지만 양국은 정치, 경제 등에서 협력을 지속해야 하는 사이다. 작게는 KF-21의 미래를 위해, 크게는 국익을 위해서라도 KF-21 공동개발이라는 프레임은 유지할 수밖에 없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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