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이 뺏어간 목소리, 뇌전극과 AI로 되찾았다

이종현 기자 2024. 8. 1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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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축성 측색 경화증(루게릭병)에 걸려 말하는 능력을 잃어가던 환자가 뇌에 이식한 전극과 컴퓨터 도움으로 다시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하는 능력을 회복했다.

전극이 뇌 활동을 감지하면 컴퓨터가 해독해 평소 목소리로 바꿔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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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UC데이비스, NEJM에 연구 결과 발표
루게릭병으로 안면 근육 마비 환자
신경신호 해석해 실시간 대화 가능
미국의 UC데이비스 연구진이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로 루게릭병 환자인 46세의 케이시 해럴(가운데)이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도왔다./UC데이비스

온몸이 마비되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루게릭병)에 걸려 말하는 능력을 잃어가던 환자가 뇌에 이식한 전극과 컴퓨터 도움으로 다시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하는 능력을 회복했다. 전극이 뇌 활동을 감지하면 컴퓨터가 해독해 평소 목소리로 바꿔준 것이다.

미국의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 연구진은 지난 14일(현지 시각) “블랙록 뉴로테크가 개발한 신경 센서와 인공지능(AI)을 사용해 46세 루게릭병 환자 케이시 해럴(Casey Harrell)의 말하기 능력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실렸다.

환경 운동가인 해럴씨는 4년 전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온몸 근육이 천천히 마비되는 희귀 질환으로 이 병에 걸린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의 이름을 따서 루게릭병이라고 불린다. 2018년 세상을 떠난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앓은 병으로 잘 알려졌다. 해럴씨는 루게릭병으로 안면 근육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점차 소리를 내고 말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UC데이비스 연구진은 지난해 7월 해럴씨의 대뇌 피질에 전극을 이식하는 수술을 했다. 전극에는 64개의 미세 돌기가 달려 있어서 해럴씨가 말을 하려고 입이나 입술, 턱, 혀를 움직이려고 할 때 발생하는 신경 전기신호를 감지했다. 안면 근육을 쓸 수 없는 탓에 뇌가 신호를 보내도 실제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신경세포에서 언제 어떤 전기신호가 나오는지는 측정할 수 있었다.

UC데이비스의 신경과학자인 세르게이 스타비스키 교수는 “해럴 씨의 약해진 안면 근육이 아니라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처음 지시하는 뇌 운동 피질 부위에 의존해 그의 질병을 극복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뇌-기계 인터페이스./pixabay

연구진은 이후 8개월에 걸쳐 해럴씨의 일상적인 대화를 분석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뇌 신경세포에서 어떤 전기신호가 나오는지 확인해 데이터를 모았다. 그 결과 해럴씨가 사용하는 12만 5000개의 어휘를 90% 이상 정확도로 기계가 인식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 발화에 성공한 단어는 6000여개에 달했고, 정확도는 97.5%로 높아졌다.

이번 연구는 뇌가 몸에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고 해독한 다음, 기계가 그에 맞게 작동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방식이다. 이전에 마비 환자가 로봇팔을 움직여 물병을 입에 가져올 수 있는 것도 BMI 덕분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세운 뉴럴링크는 마비환자의 뇌에 칩을 이식해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제어하도록 했다.

하지만 기존 BMI 기술의 정확도가 75% 수준에 그쳤다. 이번 연구 결과는 그보다 큰 발전이었다. 연구진은 사람의 음성을 디지털 명령으로 바꿔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정확도가 95%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여기에 더해 해럴씨가 루게릭병에 걸리기 전의 목소리 파일을 분석해 AI에 입혔다. 장치가 기계음으로 해럴씨의 생각을 전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해럴씨의 목소리를 내도록 한 것이다. 해럴씨는 이 장치를 이용해 NEJM 팟캐스트와 인터뷰도 진행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실시간 대화에 참여 수 있어 사람들과 더 가까워졌다”며 “보통 사람이 말하는 속도의 절반 정도 속도로 말하고 있지만,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기에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은 삶의 생명줄”이라고 강조했다.

과학계는 BMI 기술의 발전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는다고 평가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의 에드워드 창 교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상과학 소설처럼 보였던 장치가 이제는 매우 빠르게 개선되고 최적화되고 있다”며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UC 데이비스의 연구 성과

NEJM(2024), DOI :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231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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