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아는기자들] 쓰리빌리언, 금창원 창업자와 시작부터 상장까지 함께한 여정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 대표 2024. 8. 1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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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투자(나는 그때 투자하기로 했다)에선 현업 투자자가 왜 이 스타트업에 투자했는지를 공유합니다.

“아는 형이 유전체 관련 스타트업 창업했다고 하는데, 같이 놀러 갈래요?”

2013년 어느 날, 친한 대학원 후배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다. 나는 가끔 그 후배가 내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생각하곤 한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인연이 이 한마디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생물정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의과대학 연구교수를 거쳐, 대기업 연구소에서 신사업을 위한 팀을 이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스타트업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흥미로운 유전체 분야 스타트업이 있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제퍼런스’라는 회사였다. 유전체(Genome)와 레퍼런스(Reference)를 합한, ‘유전체 분야의 기준이 되겠다’는 실로 야심 찬 이름의 회사였다. 역삼 뒷골목 으슥한 곳에 위치한 제퍼런스 사무실은 거창한 회사 이름과는 달리 무척 조촐했다. 한 칸짜리 작은 사무실에 세 명의 팀원이 전부였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기 제퍼런스 사무실의 모습. /최윤섭 대표 제공

그런 느낌을 받았던 큰 이유는 바로 대표님 때문이었다. 대학원 후배가 이야기했던 그 ‘아는 형’이었다. 검은색 뿔테 안경에 호리호리한 체구의 키가 큰, 완고한 연구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분이었다. 카이스트에서 생물정보학으로 석사를 하시고, 미국 USC에서 박사과정을 밟으시던 도중에 유전체 분야에 큰 기회가 오는 것을 느끼시고는, 창업 전선에 뛰어드셨다고 했다. 유전체 시장의 미래에 대해 확신에 차서 말씀하시는 대표님이 인상 깊었다. 대표님의 성함은 금창원이었다.

제퍼런스는 지금 생각해도 여러모로 흥미로운 회사였다. 처음 방문했을 당시 멤버가 공동창업자 세 명밖에 없었음에도 ‘컬쳐북’을 보여주셨다. 위대한 회사는 조직 문화부터 다르기 때문에, 회사가 커질 것을 대비해서 미리 핵심 가치를 공동창업자들이 논의하여 명문화해놓았다고 하셨다. 또한 자주 테크 세미나를 개최했다. 열 명이 들어가기도 비좁아 보이는 작은 사무실에서 사람들을 모아서 테크 세미나를 열고, 공동창업자들이 직접 발표했다. 네트워킹 파티를 겸한 자리였는데, 이 자리에서 내게 지금까지도 소중한 인연이 되는 분들을 만나기도 했다.

◇회사를 접고 절치부심의 시간에서 재창업까지

하지만 제퍼런스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창업 후 3년 반 이상 유전체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던 제퍼런스는 사업에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요즘 말로는 소위 PMF(Product Market Fit)을 찾지 못하고) 회사를 접기로 했다. 그때가 불과 2014년이었다. 유전체 관련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한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었으니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외부 투자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제퍼런스의 폐업 절차에 큰 문제는 없었다고 대표님은 훗날 회고하시기도 했다.

이후 금창원 대표님은 창업가로서의 날개를 잠깐 접고, 유전체 서열 분석 분야의 세계적인 회사이자 상장사이기도 한 마크로젠에 팀장으로 입사한다. 이후 1년 7개월 동안 금창원 ‘팀장님’은 마크로젠 임상유전학팀을 이끌며 다양한 임상 유전체 관련 제품을 개발하고 사업화를 주도하셨다.

이 기간이 금창원 대표님에게는 절치부심의 기간이었을 것이다. 회사 경험이 없었던 연구자 출신 초보 창업가에게 제도권 중견 기업에서 리더십 경험을 쌓는 것은 경영자로서 큰 배움의 기회였을 것이고, 또 제퍼런스의 실패에 대해서 시간을 두고 여러모로 복기할 기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다양한 신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창업 아이템을 고민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필자는 이 당시에도 금 대표님과도 종종 연락하면서, 구상하고 계시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열정적인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리고 그동안 유전체 시장은 조금씩 더 무르익어 갔다.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창업자가 유전체 시장에서 본격적인 사업의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는 때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 기간에는 필자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다. 대기업 팀장에서, 다시 대학병원 연구교수로 옮겼다가, 드디어 독립을 한 것이었다.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분야를 초창기부터 한국에 소개하고, 책을 내고 (나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강의를 하고, 자문을 하면서 업계에 내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고, 관련 스타트업에 조금씩 엔젤투자를 하다 보니 투자 기회들이 더 많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아예 투자회사를 창업하기로 한 것이다. 법인명은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로 정했고, (법인명이 너무 긴 탓에) 평소에는 줄여서 DHP로 부르기로 했다.

필자가 DHP를 창업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2016년 10월. 마침내 금창원 대표님은 두 번째 창업을 결심한다. 마크로젠에서 유전체 사업을 스핀오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유전체 분석을 통해서 희귀 질환을 진단하는 컨셉의 회사였다. 수년 동안 금창원 대표님의 행보를 지켜봐 왔던 필자는 사업 아이템을 자세히 들어보지도 않고 (마음속으로는)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아마 금창원 대표님이 치킨집을 한다고 해도 투자한다고 했을 것 같다. 그렇게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이 신생 스타트업은 DHP의 첫번째 투자 포트폴리오로 결정되었다.

이 신생 회사의 이름은 그 이후에야 정해졌다. 금대표님께서 회사 이름 후보 여러 개를 관계자들에게 구글 폼으로 돌려서 투표를 했다. 필자도 투표를 하긴 했으나, 사실 후보 중에 ‘이거다!’ 싶은 이름이 하나도 없었다. 며칠 후에 회사 이름을 결정했다고 연락이 왔다. 후보에는 없던 이름이었다. “쓰리빌리언”. 인간 DNA의 전체 염기쌍의 수가 약 30억 개이기 때문에 “30억 (3billion)” 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름을 듣자마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하기도 쉽고, 부르기도 쉬었다. 외국인에게까지도 말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스타트업 씬,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나 의료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쓰리빌리언’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추가적인 설명이 별로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워낙 잘 알려진 회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씬에 계시지 않은 분이라면 이 회사의 성과에 대해서 지난 7월 말에 코스닥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했다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희귀질환 시장이 작다고? 세계 15명 중 1명이 희귀질환

쓰리빌리언에 대해서는 최근에 (특히 상장 예심 통과 이후에) 많은 기사와 인터뷰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 간단히만 다루겠다. 요약하자면, 쓰리빌리언은 인공지능으로 유전체 정보를 분석하여 7,000종 이상의 희귀 질환을 진단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NGS(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가 발전하던 초창기에는 유전체 서열을 어떻게 하면 더 빠르고 저렴하게 분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유전 정보를 생산하는 기기를 만드는 일루미나 등의 기업이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싸고 빠르게 생산한 유전체 정보를 무엇에 쓸 것인가이다. 금창원 대표님은 그 해답을 ‘희귀 질환 진단’에서 찾았다.

희귀 질환은 2,000명의 사람 중에 1명 이하의 확률로 발생하는 질병으로 정의된다. 그러면 환자의 숫자가 너무 작지 않냐는 (즉, 시장의 크기가 너무 작지 않냐고)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쓰리빌리언 초창기에 많은 VC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하지만 희귀 질환은 10,000여 종 이상이 존재한다. 일종의 롱테일 시장인 셈이다. 이를 모두 합하면, 전 세계 15명 중의 1명이 희귀 질환 환자이므로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이다. (참고로, 2019년 기준 당뇨병 환자가 전 세계 11명 중 1명 꼴이다)

더 나아가, 희귀 질환 환자는 질병의 특성상 적절한 진단을 받기가 너무도 어렵다. 가능한 질병이 매우 다양하므로, 일일이 검사를 모두 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환자는 소위 ‘진단 방랑’에 오르게 된다. 병명도 모르는 질병을 진단받기 위해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것이다. 증상 발병 이후에 진단을 받기까지 희귀질환 환자들은 평균 6년 동안, 17개의 병원을 거치면서, 평균 2~3억원이라는 비용을 쓴다. 그야말로 고객의 소위 ‘페인 포인트(pain point)’가 엄청난 것이다.

특히 희귀 질환의 80%가 유전 질환이다. 그렇다면 전장 유전체 (whole genome) 분석, 즉 인간의 유전 정보를 모두 읽어내는 분석을 하면, 그 환자가 어떤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문제가 그렇게 간단했다면, 고도의 인공지능 기술도, 쓰리빌리언 같은 회사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희귀 질환 환자의 유전체를 분석하면 해석이 어려운, 알지 못하는 유전 변이가 너무 많이 나온다. 통상 10만 개 이상의 변이가 발생되기 때문에, 연구진이 이를 모두 하나씩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질병이 특정되지 않으므로 변이 해석과 함께 환자의 증상과 질병의 상관성을 검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쓰리빌리언이 개발한 인공지능 기반의 희귀 질환 진단 모델이 활용된다. 쓰리빌리언은 2021년 3Cnet이라는 유전 변이의 병원성을 해석하는 모델을 발표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2024년에는 3ASC라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 변이를 발굴하는 인공지능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서 인간의 개입 없이, 10만 개의 유전 변이를 5분 이내에 해석할 수 있고, 99.4%의 정확도로 병원성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상위 5개 변이 중에 원인 유전 변이가 포함될 확률이 98%에 달한다. 즉, 의료진이 10만 개의 유전 변이가 아니라, 5개만 살펴봐도 98%의 확률로 희귀 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DHP 제공

◇AI 기반 희귀질환 진단 기술, 세계 최고 수준

쓰리빌리언의 희귀 질환 진단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2년에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후원을 받아 개최되는, 인공지능 희귀질환 진단 경진대회 CAGI6에서 쓰리빌리언이 우승을 차지했다. 글로벌에서 참여한 총 50개 팀과 경쟁한 결과였다. 특히, 대회 주관 기관에서 추후 논문 발표를 위해 정리한 내용을 보면,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미스센스 (Alphamissense)’ 와 비슷하거나 더 좋은 성능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2023년에는 글로벌 제약사 로슈와 글로벌 희귀질환 단체가 개최한 인공지능 희귀 질환 경진대회 Xcelerate RARE에서도 글로벌 24개 팀과 경쟁하여 쓰리빌리언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단순히 좋은 기술력 뿐만이 아니라, 쓰리빌리언은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사업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근 몇년 동안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20년에는 2,500만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매년 증가하여, 2023년에는 27억원으로 100배 이상 성장했다. 2024년 상반기도 2023년 대비 매출이 3배 상승해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더구나 전체 매출 가운데 70% 정도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현재 60여 개국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내로 예정된 코스닥 시장 상장은 쓰리빌리언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상장예심이 통과된 이후, 비상장 시장의 주주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주주서한에서 금창원 대표님은 비상장사로서 쓰리빌리언은 Phase 1을 마무리하고, 상장사로서 Phase 2의 더 큰 성장의 도전을 시작한다고 언급하셨다. 진단 시장의 특성상 매출은 꾸준하게 증가할 것이며, 또한 희귀 질환 진단에 대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희귀 질환 치료를 위한 타겟 및 신약 후보 물질 발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갈 것이다.

한 명의 투자자로서도 쓰리빌리언의 상장은 너무도 감회가 새롭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지난 2013년부터 금창원 대표님과 쓰리빌리언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다. 역삼의 구석진 뒷골목 제퍼런스 사무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쓰리빌리언이 처음 자리 잡았던 선릉의 디캠프 사무실. 그리고 시리즈A 투자 유치 때 회사가 큰 위기를 맞으면서 공동 창업자 3명 중의 한 명이 이탈하여, 금창원 대표님과 김세환 이사님 두 분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사당의 오렌지팜 사무실. 문자 그대로 초상집 같은 분위기 속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던 기억도 난다.

그 회사가 이제는 누적 400억이 넘는 투자를 유치하고, 8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60개국의 400개 이상의 의료기관에 서비스하는, 코스닥 시장 상장을 목전에 둔 회사로 성장했다. 쓰리빌리언이 성장해 온 여정은, 필자가 투자자로서 성장해온 여정이기도 했다. 그런 여정을 함께 해올 수 있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쓰리빌리언이 상장 이후에도 Phase 2를 성공적으로 열어갈 수 있기를, 그래서 더 많은 희귀 질환 환자들에게 새 삶을 선물하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는다.

쓰리빌리언의 2020년 주주총회를 마치고 (앞줄 중간이 금창원 대표, 뒷줄 오른쪽이 필자). /DH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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