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패션 강자로...대리점 1만개 목표”
영업사원돼 전국 누비는 2세 경영인
스포츠 상품 사업 안착, 글로벌 속도
“40년 흥망성쇠 지켜봐 더욱 절실...
‘형지의 목숨줄’ 대리점 잘돼야 산다”
빚쟁이가 두려워 몸을 숨겨봤던 2세 경영인은 많지 않다. 쓰러진 회사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오롯이 지켜본 2세 경영인도 드물다. 유년 시절에 겪은 이런 경험은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형지그룹의 경영 전면에 나선 최준호 부회장 얘기다. 최병오 회장의 장남으로, 현재 패션그룹형지(이하 형지)의 총괄사장을 비롯해 형지엘리트 사장·까스텔바작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라오스 출장을 다녀온 직후라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인천 송도 본사에서 시작해 달리는 차와 경기 안산 대리점으로 이어진 인터뷰 내내 그는 열정적이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12일 오후 경기도 안산의 한 크로커다일 매장. 우렁찬 목소리가 매장 안팎에 울려 퍼졌다. 주인공은 최 부회장이다. 손님에게 다가가 “찾는 게 있냐”고 물었다. 나갈 때는 문 앞까지 따라가 “또 오세요”라며 허리를 굽혔다. 대리점주에게 애로사항을 묻는 것도 잊지 않는다. 본사에서 파견된 영락없는 영업사원이다.
최 부회장은 “대리점주는 형지의 목숨줄로, 대리점주에게 잘해야 형지가 산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한다”며 “브랜드만 생각하는 대리점주들이 회사의 명운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국에는 2000여 개의 형지 대리점이 있다. 매년 크로커다일레이디, 샤트렌, 올리비아하슬러 등 브랜드 제품 2000만장이 팔린다.
최 부회장은 일주일에 2~3번씩 시간이 날 때마다 매장을 찾는다. 5월에는 ‘크로커다일(악어) 인형탈’을 쓰고 손님을 맞았다. 7월에는 수해 피해 매장으로 달려갔다.
대리점에 대한 그의 생각은 ‘오프라인 매장’에 대한 뚝심으로 이어진다. 온·오프라인에 대한 시장의 분석과 전망이 엇갈리지만, 형지는 우직하게 한길만 간다. 대리점 확대가 핵심이다. 그에게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보완일 뿐이다.
최 부회장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우리의 핵심 타깃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의 경제력도 막강하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더 무궁무진하다”면서 “매장도 더 많이, 크게, 공격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3년 내 3000개, 10년 내 1만개 매장을 여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중년 여성복 시장에서 형지의 위상은 높다. 점유율만 따지만 35%에 달한다. 코로나19로 매출이 주춤했지만, 이후 증가세를 회복했다. 실제로 2020년 3억2500만원이었던 점포당 평균 매출은 지난해 4억4100만원으로 35% 신장했다. 점포당 영업이익률도 17~25% 선을 유지하고 있다.
최 부회장의 ‘현장 중시 경영’은 아버지가 물려준 자산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주말 새벽 5시만 되면 아버지가 깨웠다. 아버지 차를 타고 새벽부터 전국 대리점을 돌았다. 폐가 될 수도 있어 손님이 없는 시간에 매장을 찾았다”면서 “아버지는 자필로 편지를 쓰고 20~30만원씩을 봉투에 넣어 매장 문 밑에 두고 왔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고 회상했다.
최 부회장이 만든 자산도 축적되고 있다. 신사업을 통해 젊은 색을 덧칠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유니폼 등 형지엘리트가 만드는 스포츠 상품이 대표적이다. 최 부회장은 SSG랜더스, 한화이글스 등 프로야구단에 굿즈를 공급했다. 올해부터는 롯데자이언츠 선수단 유니폼 등을 지원했다. 작년에는 해외 명문 구단인 FC 바르셀로나와 파트너십도 체결했다. 또 국내 프로축구 K리그로도 영역을 넓혔다.
스포츠 상품화 사업은 매년 성장을 거듭했다. 진출 4년 만에 신사업에서 주력 사업 궤도로 들어섰다. 실제 형지엘리트의 제23기 3분기(2023년 7월1일~24년 3월31일 6월 결산 법인) 누적 기준 스포츠 사업 매출은 111억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126% 증가한 수치다.
스포츠 상품 사업의 성공은 최 부회장의 ‘팬덤 공략’이 주효했다. 그리고 성공의 바탕에는 최 부회장의 ‘덕질’이 있었다. 그는 “국내 야구 ○○팀을 좋아한다. 퇴근이 늦어지면 9회말이라도 가서 경기를 봤다. 특히 야구선수 ○○○의 팬”이라고 소개하며 “중고나라, 야용사(야구용품싸게사기) 등 사이트를 뒤지며 해당 선수와 관련된 제품을 샀다. 알림 설정을 해놓고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뛰어나가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팬덤 자체가 시장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최 부회장이 이끄는 글로벌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작년에는 중국의 최대 의류수출기업인 디샹그룹과 의류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 순방에 동행해 인도네시아 유통협회와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당시 최 부회장은 순방에 동행한 유일한 30대 경영인으로 이목을 끌었다. 그는 “인터뷰 전날에도 라오스 등 동남아 출장을 다녀왔다”고 했다.
최 부회장은 “아세안과 중국이 현재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시장”이라며 “특히 인도네시아는 3억 인구를 바탕으로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자카르타의 경우 예전에 중국 시장이 주목받을 때 하루가 다르게 변했던 상하이의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하루하루가 ‘격전의 날’이다. 형지엘리트의 올해 상반기 실적이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위기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패션그룹형지 관계자는 “경영수업을 받고 성장하는 여타 재벌 2세와 확실히 다르다”며 “어렸을 때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부도 위기를 함께 겪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고생한 기억들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빚쟁이가 집에 쫓아와 괴롭혔다. 전화가 무서웠다. 친구와 가족끼리는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전화 신호를 약속한 기억도 있다. 그렇게 형지의 흥망성쇠를 하나부터 열까지 지켜봤다. 40년 가까이 되는 형지의 하이라이트를 전부 기억한다. 위기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절실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시간을 쪼개 사는 이유다.”최 부회장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한 말이다. 인천=박병국 기자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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