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보다 더 비싼 金빙수의 '불편한 역설' [분석+]
빙수 가격 올해도 인상해
매년 있는 연례행사 격이야
점심 한끼보다 비싸진 빙수
원재료 가격 인상 탓하지만
가격 내려간 원재료 많은데
가격 오르기만 하는 건 모순
합리적·효율적 소비 필요해
빙수 가격의 오름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업체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이제 빙수 가격 인상은 연례행사나 다름없다. 업체들은 "원재료 가격 인상 때문"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격이 올라도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많다는 것도 짚어볼 점이다. '과시적 소비'가 金빙수 시대를 열어젖혔다는 거다.
처서處暑가 즈음이지만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빙수' 한 그릇으로 더위를 떨치고 싶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한때 '서민간식'으로 불렸던 빙수가 '금金빙수'가 돼버려서다. 이른바 '빙수 인플레이션'을 주도한 건 특급 호텔들이다.
'고가' 논란에도 10만원대 빙수를 판매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호텔들은 올해도 빙수 가격을 줄줄이 인상했다. 시그니엘서울(롯데호텔앤리조트)의 '시그니처 제주 애플망고 빙수'는 13만원으로 지난해(12만7000원)보다 2.4% 올랐다. 특급호텔 빙수 가운데 최고가다.
포시즌스호텔의 '애플망고 빙수'는 12만6000원으로 두번째로 비쌌다. 지난 3년간 매년 가격을 인상해온 신라호텔(호텔신라) 역시 올해 '빙수 10만원'의 벽을 깼다. 2021년 6만4000원이던 신라호텔의 애플망고빙수는 이듬해 8만3000원으로 인상했다. 지난해에는 18.0% 오른 9만8000원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현재는 10만2000원에 판매 중이다.
혹자는 "특급 호텔이니 비싼 것 아니겠나" "그런 비싼 빙수를 먹을 수 있는 소비자는 한정적이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특급 호텔이 빙수 가격의 '상한선'을 올려놓으면서 중저가 브랜드들도 줄줄이 가격을 인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빙수=고급 디저트'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실제로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매년 빙수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빙수 전문 프랜차이즈 브랜드 '설빙(설빙코리아)'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격을 인상했다. 여름 시즌 메뉴인 '메론 설빙' 4종의 가격을 1000원씩 올린 거다.
이로써 '샤인머스캣메론설빙' 가격은 1만4900원에서 1만5900원으로 6.7%, '리얼통통메론설빙' 가격은 1만5500원에서 1만6500원으로 6.4% 올랐다. '요거통통메론설빙' 가격은 1만5900원에서 1만6900원으로 6.2% 올랐고, '딸기치즈메론설빙'은 1만6900원에서 1만7500원으로 3.5% 값이 뛰었다.[※참고: 설빙은 지난해에도 빙수 7종 가격을 평균 8.0% 인상한 바 있다.]
커피 전문점 '폴바셋(엠즈씨드)'도 2년 연속 빙수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해 '팥빙수' 가격을 7900원에서 8900원으로 1000원(12.7%) 올린 데 이어 올해 또다시 900원 인상했다. 2년 새 가격이 24.1%나 올랐다. 올해 출시한 신메뉴 '머스크 멜론 빙수'는 1만1800원으로 지난해 판매했던 '블루베리 빙수(8900원)'와 비교하면 32.6%(2900원) 더 비싸다.
롯데GRS가 운영하는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는 지난해 6500원이던 '팥빙수' 가격을 7000원으로 7.7% 끌어올렸다. 올해 론칭한 신제품인 '복숭아빙수'는 1만4000원으로 지난해 판매했던 '애플망고빙수(1만2000원)'와 비교해 가격이 2000원 비싸다.
또다른 커피 전문점 '할리스(케이지할리스에프앤비)'와 '투썸플레이스'도 빙수 가격 인상에 동참했다. 할리스는 지난해 1만3800원에 판매했던 '눈꽃 팥빙수'를 1만4800원으로 7.2% 인상했다. '애플망고 치즈케이크 빙수' 가격은 6.8%(1만4800원→1만5800원) 올렸다. 투썸플레이스는 '우리 팥빙수' '애플망고 빙수' 가격을 각각 9.1%(1만1000원→1만2000원), 3.7%(1만3500원→1만4000원) 인상했다.
베이커리 전문점 뚜레쥬르(CJ푸드빌)도 올해 빙수 가격을 최대 6.7% 인상했다. '국산팥 듬뿍 인절미 빙수'는 8900원에서 9500원으로, '애플망고빙수'는 9700원에서 1만원으로 각각 6.7%, 3.1% 올렸다. 빙수 한 그릇 가격이 직장인 점심식사 가격을 가뿐히 뛰어넘는 시대가 도래한 거다.
실제로 구인구직 사이트 잡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인의 점심 비용은 평균 7761원이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빙수 한그릇 가격이 1만원을 훌쩍 넘으니 "밥보다 비싼 빙수"란 말은 더이상 과하지 않다.
중요한 건 빙수 가격이 오른 이유가 타당하냐는 거다. 빙수 판매 업체들은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불가피한 가격 인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말을 믿을 수 있을지는 따져봐야 한다.
업체들의 말처럼 주요 원재료인 흰 우유와 팥 가격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원유 가격은 꾸준히 상승세를 탔다. 2022년 1L당 996원이던 원유 기본가격은 지난해 10월 1084원으로 8.8% 올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팥 가격은 꽤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 12일 기준 팥(국산ㆍ40㎏) 도매가격은 50만6200원으로 전년 동기(42만6160원) 대비 18.8% 올랐다.
하지만 가격이 내린 원재료도 적지 않다. 빙수에 들어가는 대표 과일인 망고나 멜론 가격은 하락했다. 지난해 8월(이하 2일 기준) 6만3120원이던 망고(5㎏ㆍ4중도매 기준)는 4만9975원으로 20.8% 떨어졌다.
멜론(8㎏ㆍ중도매 기준) 가격 역시 1년 새(2023년 8월 7일 대비 2024년 8월 7일) 11.4%(3만683원→2만7200원) 하락했다. 더욱이 팥이나 망고 등 주요 원재료 가격은 수급에 따라 해마다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빙수 가격이 매년 오르기만 한다는 점은 짚어봐야 한다. 이 때문인지 한편에선 소비자들의 행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격을 올려도 흔쾌히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도 문제라는 거다.
이영애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값비싼 호텔빙수가 인기를 끄는 건 한국 소비자들의 '과시적 소비' 성향 때문이다"면서 "'인플루언서가 먹었으니까 나도 한번쯤'이라는 심리로 가격보단 감정에 의한 소비를 하는 이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당연히 이런 소비 행태는 기업들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2년 연속 가격을 인상한 설빙은 지난해 매출액이 262억원으로 2021년(183억원) 대비 42.7%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70억원에서 109억원으로 56.8%나 늘었다.
이영애 교수는 "가격이 얼마가 오르든 꾸준히 빙수를 사먹는 고객들이 있는 한 기업들이 가격을 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소비자가 좀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소비를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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