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야유를 듣던 여성의 정체…1억 2천만 명을 대표해 증명해낸 '희망의 서사' [스프]

김혜영 기자 2024. 8. 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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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피커] 난민 최초 메달리스트 신디 은감바 선수

관중의 커다란 야유를 듣던 그녀의 정체 

프랑스 현지시각 지난 4일 오후 4시, 대한민국 국가대표 임애지 선수의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결승전이 시작되기 30분 전이었다. 다른 경기가 한창인 무대를 향해 객석에서 갑자기 "우~" 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자국 선수의 홈그라운드 경기를 지켜보던 프랑스 관중이, 상대편인 난민대표팀 신디 은감바 선수에게 보내는 야유였다. 여자 복싱 75㎏급 8강전에서 프랑스 다비나 미셸 선수를 압도하던 신디 은감바 선수에게, 일종의 질투 섞인 불만을 표출한 것이었다. 

그렇게 큰 야유가 쏟아지는 상황이라면 잠깐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질 법도 한데,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녀의 움직임은 더욱 민첩해지고 날렵해졌다. 경기 종료 후 결과는 5대 0, 그녀의 압승이었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역대 난민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메달리스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준결승전에서 파나마 선수 상대로 싸우는 신디 은감바 선수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객석 사이로, 오륜기를 든 난민대표팀 관계자들이 “신디! 신디!”를 연호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가 소감을 묻자, 자신을 난민대표팀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라고 소개한 알폰소 레돈도 씨는 "그녀가 방금 경기에서 승리해서 너무 기쁩니다. 그녀가 메달을 확보했다는 뜻이니까요. 그녀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최초의 난민 선수가 될 것"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난민대표팀 관계자도 울음을 참으며 한동안 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디 은감바 선수는 경기 직후 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만나 "전 세계 모든 난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계속 열심히 노력하고, 또 계속 자신을 믿으세요.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러면서 "저도 다음 라운드에서 제가 할 일을 마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난민 최초 메달리스트'가 됐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미 그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난민 최초 메달리스트'가 되기까지

난민팀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딴 여자 복싱 75㎏급 동메달리스트가 된 신디 은감바 선수는 카메룬 출신이다. 그녀는 11살이던 2009년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건너갔지만 시민권을 받지 못해 한동안 런던의 수용 시설에서 지내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동성애자라서 카메룬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카메룬에선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기 때문에 송환당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 학교 친구들의 괴롭힘마저 견뎌내야 했다. 수줍음이 많고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힘든 삶 속에서 그녀를 구원해 준 건 복싱이었다. 그녀는 체육관을 운영하던 데이브 랭혼 코치를 직접 찾아가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신디 은감바 선수는 가장 먼저 남성 위주의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내내 여성 복서에 대한 편견에 직면했다. 그녀는 처음엔 아무도 자신이 스파링을 견뎌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3년 뒤부터 그게 가능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 냈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그리고 복싱 시작 6년이 지난 시점에, 그녀는 3개의 다른 체급에서 3개의 정상 타이틀을 거머쥔, 영국의 '챔피언'이 되었다.  

이처럼 그녀가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영국 대표팀의 일원이 될 수는 없었다. 시민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2021년 난민 신청을 통해 난민임을 인정받은 후에야 난민대표팀 소속으로서 올림픽에 나설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전쟁과 살인을 피해 난민이 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겪었는지 조금 알게 됐습니다. 전 세계에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그 기회를 얻은 소수 중 한 명일 뿐이며, 어떤 사람들은 결코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신디 은감바 선수의 난민대표팀 매니저인 곤잘로 바리오 씨를 지난 8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신디 은감바 선수가 올림픽에 참여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곤잘로 바리오ㅣ난민대표팀 매니저  

“다른 난민들과 매우 비슷합니다.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면 아는 사람도 없고 운동클럽도 찾아야 하고 코치도 찾아야 하고 재정적 지원도 이전과 거의 대부분 같지 않고 가족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하고 자신을 성장시켜야 하죠. 그런데 신디는 그걸 해냈습니다. 영국 복싱계에서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들이 그녀를 응원했고, 지금은 메달을 따고 있습니다.

사실 정말 더 복잡한 것은 시작 자체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국가 스포츠 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대부분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평생 같은 코치, 같은 트레이너, 같은 영양사와 함께합니다.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가거나 난민이 되면 이 모든 것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복잡하고, 성인이 되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시스템 안에서 자란 사람과 비교했을 때 매우 어려운 일이 됩니다.  

이렇게 모든 상황과 매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첫 출전한 대회에서 신디가 메달을 따낸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녀가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금메달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미 그녀는 금메달에 매우 근접해 있었습니다. 4년의 훈련과 4년의 경기, 그리고 영국 복싱과 영국 NLC의 훌륭한 지원만 있다면 앞으로 충분히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늘구멍' 같은 선발 기회

앞서 곤잘로 바리오 씨가 언급했듯이, 난민으로서 올림픽과 같은 국제 경기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우선 난민 선수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유엔 난민 기구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각 선수의 스포츠 역량과 젠더, 지역, 각 선수의 개인적 상황 등을 검토해 소수 정예의 선수를 선발한다. 참고로, 난민 선수로 선발된 인원은 올림픽 참여 준비와 기타 제반 비용에 대한 자금을 지원받게 되는데, 난민 선수 장학 프로그램은 올림픽 난민 재단(Olympic Refugee Foundation)이 관리하고, 기금은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글로벌 이니셔티브인 올림픽 연대(Olympic Solidarity)가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수단이 이렇게 특별 기금과 장학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선발 과정은 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바늘구멍 같은 기회마저도 10년 전에는 전혀 꿈도 꿀 수 없던 일이었다. 올림픽이 지난 2016년 이전까지만 해도 '국가' 대표들만이 경쟁하는 '국가 대항전'이었기 때문이다. 난민 선수들에게 출전이 허용된 것은 2016 리우 올림픽이 최초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IPC)가 유엔난민기구, 올림픽 난민 재단 등과 협력해, 전 세계 약 1억 2천만 명의 강제실향민을 대표하는 '올림픽 난민팀Refugee Olympic Team'을 결성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였다. 난민 문제가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함과 동시에 전 세계 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려는 취지였다. 당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우리는 리우 2016 올림픽에 난민 올림픽 난민팀을 초청함으로써, 세계의 모든 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에 따라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10명의 선수가, 리우 패럴림픽에는 2명의 선수가 사상 최초의 난민팀으로 출전했다. 올림픽에선 수영 2명, 유도 2명, 마라톤 1명, 육상 5명이 출전했는데, 메달 성과는 없었지만 주목받은 선수들은 여럿 있었다. 폐막식 기수였던 포폴 미셍가 유도 선수는 첫 경기에서 승리해 90kg 이하 체급 16강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는 29명, 패럴림픽에는 6명이 출전했다. 올림픽 종목은 육상, 배드민턴, 복싱, 카누, 사이클, 유도, 가라테, 사격, 수영, 태권도, 역도, 레슬링 등 12개 종목으로 지난 리우 올림픽보다 늘어났다. 11개국 출신 선수들 29명이 참여했는데, 그중에 관심을 받았던 인물은 리우에 이어 도쿄 대회에도 참가한 유스라 마르다니 선수였다. 그녀는 2015년 내전을 피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넜던 10대 소녀다. 시리아를 떠날 당시 고장 난 고무보트를 끌고 언니와 함께 3시간 30분이 넘도록 바다를 헤엄쳐 그리스로 탈출한 이야기는 '더 스위머즈(The Swimmers)'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녀를 비롯한 다른 난민대표팀 선수들도 도쿄 올림픽 당시 메달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 나섰지만, 결국 모두 포디움에 올라서지는 못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는 난민팀 선수가 37명으로, 패럴림픽 선수는 8명으로 늘었다. 올림픽에선 아프가니스탄, 쿠바, 이란, 베네수엘라 등 11개국 출신들이 태권도, 육상, 유도, 역도, 사격, 사이클링, 수영, 레슬링, 배드민턴, 복싱, 브레이킹, 카누 등 12개 종목에 도전했다. 난민대표팀의 메달리스트는 신디 은감바 선수가 유일하다. 하지만, 남자 5000m 육상에서 도미니크 로발루 선수가 4위를 기록하는 등 놀라운 기량을 발휘한 선수들도 주목을 받았다. '브레이킹 비걸' 종목에 출전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 마니자 탈라시는 공연 도중 등 뒤에 'Free Afghan Women(아프간 여성에 자유를)'이라는 메시지를 펼쳐 보였다가 실격당하기도 했다. 대회조직위원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명시된 ‘정치적 의사 표현 금지’를 위반했다고 해석한 건데, 탈라시는 탈락 사유와 관계없이 자신의 행동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스스로 증명해 낸 '희망의 서사'

마지막 준결승전에서 파나마 선수 상대로 싸우는 신디 은감바 선수
1억 2천만 명을 대표해 경기장에 선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것은 보통의 책임감으로는 견뎌낼 수 없는 무게일 것이다. 삶의 터전을 떠나 말 그대로 '바닥'에서 시작해 세계 최정상을 노리는 것도 보통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난민을 대표하는 이들의 노력은 승패와 기록을 떠나 스스로 큰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8일 동메달로 경기를 마감한 신디 은감바 선수 역시 '난민 최초 메달리스트'라는 기록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는 더 높은 포디움에 서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아마 이와 비슷한 감정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준결승전 직후 믹스드존에 있던 취재진을 지나치는 신디 은감바 선수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혜영 기자 kh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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