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 임신 중지 V-log’ 살인일까 [The 5]
‘우리가 시간이 없지 관심이 없냐!’ 현생에 치여 바쁜, 뉴스 볼 시간도 없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뉴스가 알려주지 않은 뉴스, 보면 볼수록 궁금한 뉴스를 5개 질문에 담았습니다. The 5가 묻고 기자가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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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임신 36주에 임신중지하는 과정을 브이로그(Vlog·영상 기록)로 제작해 유튜브에 올린 ㄱ씨와 임신중지 수술을 한 ㄴ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에게는 2021년 효력을 잃은 ‘낙태죄’ 대신 살인죄가 적용됐습니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36주면 자궁 밖에서 생존이 가능한 정도로 다른 낙태와 다르다”며 엄정 수사를 예고하기도 했는데요. 낙태죄가 폐지됐는데 임신 후기(28~40주)의 임신중지는 처벌받아야 할까요? 경찰은 ㄱ씨와 ㄴ씨의 살인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까요? 젠더팀 오세진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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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 유튜버와 의사의 살인 혐의가 인정될까요?
오세진 기자: 보건복지부는 ‘2021년 판례’를 참고해 수사 의뢰를 했다고 해요. 임신 34주 여성에게 임신중지 수술을 시행한 의사에게 살인 혐의가 인정된 사례예요. 이 의사는 재판 당시 ‘태아가 모체에서 나왔을 때 사망한 상태였다’고 주장했지만, 마취과 의사와 간호조무사는 ‘모체 밖으로 나온 아이가 살아있었다’고 진술했어요. 제왕절개 수술 직전 시행한 검사에서 산모와 태아 모두 정상 소견이었던 점도 확인됐고요. 복지부는 이번 사건도 ㄴ씨가 ㄱ씨의 임신중지 수술을 의뢰를 수락해 태아를 모체 밖으로 배출, 살인 후 900만원을 받았단 점을 들어 처벌을 요구하고 있어요.
이 사건에서도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오기 전에 사망했는지, 모체 밖으로 나온 아이가 살아있었는데 의사가 사망에 이르게 했는지가 관건이에요. 전자라면 살인이라고 볼 수 없고, 후자라면 살인으로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병원 수술실엔 CCTV가 없었다고 해요. 경찰이 다른 증거를 찾아야 하는 거죠. 다만 임신중지할 병원을 알아보고 수술받은 ㄱ씨에게 살인예비·음모죄를 적용할 수 있단 법조계 의견이 있긴 해요.
[The 2] ‘36주 임신중지’라서 논란이 더 컸어요. 바로 출산했어도 사람이 됐을 태아잖아요. 임신 주수에 따라 임신을 다르게 봐야 할까요?
오세진 기자: 태아의 생명권을 지키는 게 공익(사회 전체의 이익)이기 때문에 임신중지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어요.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의 저자 박이대승 정치철학자는 이렇게 반박해요. 임신중지권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핵심 요소이자 헌법상 기본 권리잖아요.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개인의 존엄성을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건 공익이 아니라고 말이죠.
[The 3]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 이들은 36주 임신중지에 대해 뭐라고 해요?
오세진 기자: 임신은 초기(월경 시작일~13주)·중기(14주~27주)·후기(28~40주)로 나뉘는데요. 여성계는 임신중지에 임신 주수 제한을 두지 말자고 주장해요. 이번 사건을 특정해 이야기 한 건 아니고요. 주수를 제한하면 건강상 이유로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 거나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주변에 없어서, 직장에서 휴가를 낼 수 없어서 임신중지를 제때 못하는 여성은 더 취약한 상태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인 2020년 11월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국회에 제출된 적이 있어요. ‘임신 22주 이전’이라는 헌재의 임신중지 조건을 두고 “여전히 여성의 몸에 대한 주권을 침해하려 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요. 10만명 넘는 사람이 청원에 동의했어요.
[The 4] 유튜버처럼 후기에 임신중지하는 여성이 많아요?
오세진 기자: 복지부가 2021년 15~49살 여성 8500명을 대상으로 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보면 평균 임신중지 수술 시기는 6.74주예요. 대부분 초기에 임신중지를 한단 뜻이죠. 임신 주수가 늘어날수록 임신중지나 출산으로 인한 위험이 커지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일부 여성은 왜 후기에 임신중지를 할까요? 미국 비영리 연구단체 ‘구트마허 연구소’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임신 24주 이후 임신중지 수술을 받은 이들이 꼽은 문제가 ①비싼 수술비 ②임신중지가 가능한 전문의·의료기관 부재 ③의사의 수술 거부였는데요. 한국에도 낮은 의료 접근성 문제가 있어요.
[The 5] 낙태죄가 폐지된 지가 언젠데, 여성은 왜 아직도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임신중지를 못 할까요?
오세진 기자: 낙태죄 폐지 이후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을 위한 법안이 만들어지지 않아서예요. 국회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모자보건법을 개정해야 하는데요. 어디까지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어디서부터 처벌할지가 핵심 쟁점이에요. 21대 국회에서 낙태죄 처벌 규정을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3개)과 6주∼14주 이후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법안(3개)이 발의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한 번도 심사하지 않았어요. 임신중지에 필요한 의료비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하거나 임신중지약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도 마찬가지고요. 결국 다 폐기됐어요.
임신중지에 필요한 정보를 요구할 권리, 안전한 임신중지 수술을 받을 권리, 임신중지 전후에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모두 ‘재생산권’에 포함되는데요. 이를 보장해야 할 국회와 정부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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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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