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라트비아·불가리아의 다양성… ‘동유럽’으로 퉁치지 말라[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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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북아메리카를 통칭하는 말이 '서양(西洋)'이다.
서구라는 말이 배제하는 건 '동유럽'이다.
서유럽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자본주의 국가군을, 동유럽은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사회주의 국가군을 통칭한다.
문제는 동유럽이란 구분 안에는 전쟁과 가난, 혼란과 후진성 등의 어둡고 부정적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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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미카노프스키 지음│허승철 옮김│책과함께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통칭하는 말이 ‘서양(西洋)’이다. ‘서구(西歐)’라고도 쓴다. 서구는 ‘서유럽’의 음역어지만 관용적으로 북아메리카까지를 포괄한다. 서구라는 말이 배제하는 건 ‘동유럽’이다. 동서남북이란 방향은 가치 중립적이지만, 유럽을 구분할 때의 동, 서는 사뭇 의미가 다르다.
서유럽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자본주의 국가군을, 동유럽은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사회주의 국가군을 통칭한다. 문제는 동유럽이란 구분 안에는 전쟁과 가난, 혼란과 후진성 등의 어둡고 부정적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종교부터 역사나 전통까지 다양한 특징을 지닌 나라들이 ‘동유럽’이란 이름으로 한데 묶여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통칭(通稱)’에 스며 있는 편견이다.
이 책의 저자 제이콥 미카노프스키는 미국인이지만,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동유럽의 폴란드 출신이다. 미국 버클리대에서 동유럽 역사를 연구했다. 책은 동유럽 국가의 역사를 묶어서 다룬다. 복잡다단한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다루는 만큼, 독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은 ‘차분한 집중’이다. 호기심과 함께 동유럽 국가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자못 비장하게 썼다. “동유럽에서 오는 사람은 없다.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불가리아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만 있다. 아니면 그들은 사라예보, 우치, 마리우폴 같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간 국내에는 잘 소개되지 않았던 동유럽 전체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다. 20여 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 권에 담아내는 게 가능한 일일까. 저자가 택한 방법은 순서를 바꾸는 것. 결정적 사건이나 풍속도를 먼저 꺼내고, 그걸 통해 변화를 얘기한다. 이야기를 앞세워 독자를 책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9세기 말부터 1차대전 발발 전까지 유럽국가가 번성했던 때를 일컫는 ‘아름다운 시절(벨 에포크)’. 그 시절 동유럽의 모든 신문에 매일 실리던 광고가 있었다. 목판화로 그린 긴 머리 여성이 등장하는 ‘안나 츠실라그’ 광고다. 안나 츠실라그는 머리카락에 바르는 헤어크림. 머리숱이 많아지고 머릿결을 윤기 나게 하는 ‘마법의 약’이라는 게 광고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광고는 모두 거짓이었고, ‘고객의 감사편지’도 모두 죽은 사람이 보낸 가짜였다. 안나 츠실라그는 그냥 ‘캐모마일로 만든 차(茶)’였던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단순한 해프닝인데, 가짜 약 광고는 아돌프 히틀러 이야기로 건너간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학교기숙사에 머물던 가난한 예술전공 학생 히틀러. 그는 안나 츠실라그의 반복된 광고가 암호 같은 복음이나 기도의 힘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히틀러가 헤어크림으로 ‘프로파간다(선전·선동)’의 위력에 눈을 뜨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가 동유럽 국가들의 ‘벨 에포크의 종식’을 얘기하면서 슬쩍 꺼내놓은 스토리가 흥미진진하다. 499쪽, 3만3000원.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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